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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뿌리깊은나무 가리온이 정기준으로 밝혀진 충격 반전. 그러나 이도가 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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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만큼의 재주를 뽐내다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집안까지 몰락당한 한 남자의 원한은 처절했습니다. 백부(정도전)의 뜻을 받들여 재상이 나라의 뿌리가 된다는 밀본의 3대 수장이 된 정기준은 대은은 어시은(깊게 은둔하는 것은 시끌벅적한 시장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는 것)을 몸소 행하였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으로 살게 된거죠. 반촌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도담댁(송옥숙 분)과 윤평(이수혁 분) 등을 제외하고는 그가 정기준인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다만 반촌에서 유일하게 도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가리온(윤제문 분)으로만 알고 있었죠. 

역시 조선을 세운 정도전의 생질답게 이도를 무너뜨리기 위한 정기준의 음모는 치밀했습니다. 아버지 정도광이 이방원의 명을 받은 조말생(이재용 분)세력에게 목숨을 잃은 이후 정기준은 그 뒤로 가리온으로 변장하여 해부학, 의학 등 여러가지 기술을 섭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도의 측근 세력인 이세영 대감을 도우면서 세종의 눈에 들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반촌에서 고기를 담당하는 백정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어난 집현전에서 일어나는 살해사건의 은밀한 부검을 맡게됩니다. 

 


결국 세종(한석규 분)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두 남자를 자신의 치마 폭으로 끌어들이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애초부터 집현전 살해사건의 수사를 맡게된 강채윤(장혁 분)이 똘복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부검을 맡으면서 궁궐에 들락나락거리는 가리온마저도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정기준이었으니까요.  이렇게 가다가는 셜록홈즈가 울고갈 강채윤에 의해서 가리온으로 숨긴 밀본 수장 정기준은 잡을 수 있어도, 나중에 강채윤에게 칼맞아 죽을 위기입니다. 

 


자신이 밀본의 수장 정기준이 밝혀진 순간 밀본 지서에 담긴 정기준의 초상대로 얼굴이 굳어진 가리온과 다르게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면서 가리온에게 다가가는 이도를 보니, 아직까지 이도는 가리온이 정기준인 것까지는 짐작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누군가에 의해서 가리온이 정기준이에요라는 식스센스급 충격 반전을 듣게되면 "강채윤이 똘복이다"라는 것보다 더 큰 배신감에 휩싸이겠지요. 가리온이야말로 강채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오랫동안 암암리에 믿고 의지해온 인물이니까 말이죠. 

거기에다가 정기준과 강채윤은 세종 이도를 노린다는 점에서 목표 지점이 같습니다. 물론 조선 선비들에게 남몰래 추앙받는 귀하신 사대부 정기준과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똘복이 이도를 공격하는 바는 현저히 다릅니다. 백부와 자신의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스스로 천한 신분으로 변한 정기준과 아버지를 죽은 웬수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신분을 세탁한 강채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기준은 똘복이에게 밀본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지서를 받아내야하고, 똘복이는 아버지의 유서가 절실합니다. 조선의 선비를 일으켜세울 은밀한 지서와 아버지의 유서. 분명 제3자가 볼 때 무게감은 다르지만 정기준과 똘복이에게는 이도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기도 한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은 그 어느 누구보다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은 이도에 의해서 강채윤은 가리온을 의심하고, 가리온은 또 강채윤을 예의주시하게 되는 적과 적의 관게로 되어버리고 맙니다. 

애초부터 세종은 강채윤이 똘복이라는 것을 알기전 까지에도 강채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도가 강채윤을 공식적인 수사관으로 임명한 것은 그에게 실질적인 수사까지 맡긴게 아니라 자신을 숨긴 적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뿐이죠. 그 뒤 강채윤이 똘복이고, 똘복이가 자신을 죽이고픈 집념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됨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목을 내치기보다 똘복이 하고 싶은 대로 자기 갈 길을 가라고 똘복의 수사 야욕에 활활 불을 지펴주기도 하였죠. 

정기준을 대하는 세종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 정기준에게 뼈아픈 모욕을 당하고도 정기준을 자기 사람으로 두고 싶어했던 이도입니다. 지금은 그 정기준으로부터 자신이 아끼는 학사가 3명이나 죽었으니 정기준을 향한 미움이 더 커졌겠지만, 자신의 최대 강적 정기준을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듯 합니다. 아마 세종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강채윤 혹은 정기준으로부터 자기가 만든 한글의 우수성을 평가받고 싶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반면 정기준은 복수를 위해 쓰디 쓴 돼지의 쓸개를 빨면서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고난을 극복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백성들의 진짜 애환을 이해하고자하고 심지어 자신까지 끌어들이려고 했던 이도의 넒은 마음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듯 합니다. 오로지 백부의 뜻을 받아 어떠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던 정기준입니다. 물론 그의 백부 삼봉 정도전 선생은 요동 정복을 위해 중국 명나라와 맞서다가 미움받았다고하나 중화사상에 충실하기 보다 사대부의 나라를 만드는 집념에만 몰두한 정기준 선생이 향후 사대부의 권위까지 흔들 수 있는 새로운 문자 창제에 두팔 벌려 환영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애초부터 가리온이 참 수상해보이긴 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영화, 드라마에서 인상깊은 역할을 선보인 윤제문인터라 뭔가 비중있는 인물로 그려질 것 같았고 조말생의 밀본 수사일지에 담긴 정기준의 초상화부터, 이도와 엇비슷한 나이대까지 고려하면 확실히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암시하는 부분이 많이 나오긴 하였습니다. 그러나 워낙 소탈하고 믿음직스럽게 가리온으로 분장한 윤제문의 치밀한 연기력 때문에 '가리온'이 '정기준'이 아니었으면 하는 일말의 믿음이 결국 윤제문이 정기준이였구나하는 크나큰 허탈감과 배신감을 안겨준 듯 합니다.


 


우리 시청자들이 가리온에게 느끼는 배신감도 만만치 않은데 과연 이도가 사실을 안 순간 느끼는 분노는 어느 정도일까요. 하지만 뛰는 강채윤과 정기준 위에 날아다니는 이도가 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멍때리면서 강채윤 혹은 정기준에게 당하고 있을 한반도 역사상 최대 천재 군주 이도가 아니겠지요. 어쩌면 이도가 정기준과 사대부들의 크나큰 방해를 물리치고 결국 한글(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역사상 최고 군주로 길이길이 남은 것은 자신의 목을 노리는 강채윤, 정기준을 동시에 궐 안에 끌어모아 서로를 견제하게 하여 각각을 무력화시키고야 마는, 세종의 넒은 포용력에서 나온 최대의 무리수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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