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여자> 김인영 작가 집필, 엄태웅이 주연을 맡는다는 점에서 <적도의 남자>를 나름 기대해왔지만, <더킹 투허츠>, <옥탑방 왕세자>를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거머쥘 줄은 몰랐습니다.
잘 만든 드라마이긴 하지만 워낙 내용이나 분위기가 묵직하고 어둡기에 소위 '대박' 시청률을 기록하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경쟁작 주연이 현재 최고 인기 스타 이승기, 그리고 상당한 팬을 거느린 박유천이기에 아무래도 스타 파워가 밀리는 <적도의 남자>가 여러모로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긴 했지요.
솔직히 현재 수, 목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모두 그만그만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기에 섣불리 누가 더 인기있고 1위다라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3개 드라마 모두 장르가 다르고, 각개 다른 재미가 있기에 취향따라 즐기면 그만입니다. 게다가 세 드라마 주연 모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해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나이, 경력 모두 앞선 엄태웅이 매회 선보이는 연기는 단순히 "잘한다"를 넘어 거의 '신들린' 급의 내공을 뿜어냅니다. 예전보다 <부활>, <마왕>을 통해서 강렬하고 선굵은 연기로 '엄포스'라는 찬사를 받은 배우이긴 하지만, 예전보다 더 업그레이되고 섬세화된 감정 연기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선덕여왕> 때와는 달리, 아역(?) 이현우에게 성공적으로 바톤을 넘겨받은 엄태웅이 주어진 과제는 다름아닌 시각장애인 연기였습니다. 친구 장일(이준혁 분)에 의해 몇 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은 이후 실명까지 하게된 원한 서린 선우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그는 연신 자신의 동공을 돌리는 투혼을 발휘합니다. 거기에다가 지난 10회 방영된 시력 회복 수술 장면에서는 지금 막 시력 수술을 받은 사람같은 디테일한 동공 연기를 보여줍니다.
짙은 선글라스로 그의 눈을 가릴 수도 있었고, 아예 눈을 질끈 감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직하게도, 기어이 정공법을 선택합니다. 가뜩이나 눈 돌리는 것에도 엄청난 피로감이 들텐데도, 그 와중에도 상대 배우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함은 물론, 내면 연기 심지어 이보영과의 로맨스까지 척척 해내고야 맙니다.
그 이후 선우의 아버지를 자청하는 문태주(정호빈 분)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시력을 되찾은 선우. 그런데 적도에 가서 우여곡절을 겪고 성공을 거머쥐고 돌아온 선우의 눈빛은 생생하게 살아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칼날 눈빛'이라고 칭할 정도로 눈 하나만으로 '김선우'와 동시에 '데이빗 킴'이기도 한 그의 카리스마를 뿜어내거든요.
특히나 지난 18일에 방영된 9회에서 13년 만에 재회한 장일 부자 앞에서는 아직까지도 눈이 먼 척 연기하다가, 장일이 황급히 커피숍을 떠나자 언제 그랬나는듯이 동공 초점이 바로 맞춰지고, 장일을 노려보는 눈빛은 다시 돌아온 엄포스만의 카리스마를 볼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를 마구마구 안겨주었지요.
하지만 시종일관 눈에서 강렬한 불꽃만 튀어낸다면 그 또한 문제이지요. <적도의 남자> 선우는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장일 부자와 진노식에게 원한 서린 슬픈 눈과, 동시에 지원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애틋한 눈을 동시에 그려내야하니까요. 그런데 억울하게 죽은 양부를 생각할 때도, 이보영 앞에서 애써 모르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 "날 좀 알아봐줘."라고 절규할 때도 여전히 이글이글 거린다면 도저히 그 당시의 선우가 느끼는 감정에 이입될 수 없겠죠.
<적도의 남자> 앞서 말한대로 결코 쉬운 드라마가 아닙니다. 차라리 주인공 선우만 불쌍하고, 나머지 선우와 대립되는 인물들은 보통 막장 드라마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혹은 악인으로만 표현하면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 드라마는 선우의 복수의 대상인 장일, 진노식에게마저 연민을 느끼게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의 옷을 입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중요하게만 다가옵니다.
다행히 <적도의 남자>는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흠잡을 데 없이, 마치 그 캐릭터의 실제 인물인양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어요. 이준혁의 광기스러우면서도 고독이 가득찬 소시오패스 연기 덕에 더더욱 작가가 요하는 이장일 캐릭터를 살릴 수 있었고, 그런 장일에게 집착하는 수미의 심경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또한 <태양의 여자>를 통해 아직까지도 드라마 역사 속 전설로 받아들여지는 대역전극 신화를 이끌어낸 김인영 작가의 안정된 필력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연출이 어렵고도 복잡하기만 얽히고 설킨 인물간의 원한과 집착을 설득력있고 스릴있게 다뤘다는 것이 <적도의 남자> 인기 요인으로 꼽히기도 하구요.
그러나 뭐니해도 <적도의 남자>가 여타 경쟁작을 제치고 수많은 화제를 이끌고 더 많은 시청자를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모은 것은 단연 '눈'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희노애락을 넘어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 엄태웅 덕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는 '동공연기'를 넘어 '칼날연기'를 넘어 다시 한번 엄포스 신화 재창조에 나선 엄태웅. '칼날 눈빛'도 일품이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가장 큰 장점을 언급하자면 장면 내내 보는 이가 빨려갈 정도로 깊이있는 눈을 꼽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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