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공 연기에 이어, 칼날 눈빛으로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엄태웅 외에도 드라마 <적도의 남자>가 가진 큰 장점이 있다면, 매번 예측을 빗나가는 반전이 아닐까 싶네요. 그것도 드라마가 흘려가는대로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기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계획된 짜임새있는 전개로 말이죠.
지난 9회에서 여전히 눈이 먼 척하면서 이장일 부자(이준혁, 이원종)에게 찾아왔던 김선우(엄태웅 분). 하지만 10회 마지막 장면에서 김선우가 아닌 데이빗 김으로 이장일 검사 앞에 나타난 그는 왜 그 당시에는 장일을 속였는지에 관해 몇 가지 의문점이 들기도 했어요. 아무리 김선우가 데이빗 킴으로 위장한다 하더라도 철두철미한 검사 장일의 눈을 피하기란 여러모로 허술한 점이 많아 보이거든요.
그러나 역시나 이장일은 금세 데이빗 킴의 존재를 파악했고, 자신을 보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하는 장일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지은 데이빗 킴은 기다렸다는듯이 자신의 존재를 쿨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장일이 진행하는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도 주기도 하구요.
왜 그 때는 눈이 안보이는 척 연기했나는 장일의 질문에 선우는 놀래켜주려고 그랬다고 넉살좋게 둘려대기 시작합니다. 눈이 다시 떴든, 그렇지 않았던 선우가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장일은 충분히 놀랐으니까요.
애써 그 때 그 사건은 모르쇠로 응수하면서,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아버지 사건을 환기시키는 김선우와, 그런 그를 보면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장일. 하지만 장일은 아직 선우가 아버지 죽음과 둘러싼 확실한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판단. 애써 아버지 용배을 안심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진노식(김영철 분) 회장에게는 선우가 돌아온 것을 말하지 말라 신신당부를 했죠.
허나 김선우는 진노식 의붓딸이자 대학 동기 박윤주(김혜은 분)을 이용하여, 진노식과의 만남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한 때 장일을 대동하고 진 회장을 찾아가 아버지 경필을 아나고 물어본 김선우임을 밝혀버립니다. 당연히 진노식 회장도 김선우 존재에 짐짓 놀라게 되었고, 바로 이장일에게 연락을 취하게 되지요.
애써 선우 아버지 죽음과 관련하여 진노식 회장과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분리시키려고하는 검사 장일. 반면 용배가 선우 아버지를 산으로 끌고 갔을 때 여전히 선우 아버지는 살아있었다는 것을 똑똑히 상기시키고 끝까지 너와 나는 한 배에 탄 몸임을 강조하는 진노식. 그래요 진노식 회장은 어떻게든 자신이 이 세상에서 받아야하는 벌을 누군가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 용배를 이용했던 것이고 역시나 김선우를 벼랑 끝으로 밀어트린 악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장일을 끝까지 걸고 넘어지겠죠.
그러나 선우는 이장일이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일단 진노식 회장을 먼저 끌어들이기로 결심합니다. 장일은 친구이기에 때문에 너그럽게 용서해주기 위함은 결코 아닙니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모든 골리앗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데이빗(다윗)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진노식과 이용배를 감옥에 갇히게 하는 것 그 이상의 파멸이니까요.
천천히 그리고 하나하나씩 자신의 골리앗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할 목표를 가지고 그들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한 데이빗. 그리고 다시 한번 장일을 내세워 애써 데이빗의 짱돌을 막아보고자하는 물타기의 귀재 진노식. 서로 속내를 숨기고 각자를 향해 성큼성큼 반격을 준비하는 이 두 사람 참 무섭긴 하지요. 결국 이 두 사람의 싸움이 될 것이고, 혹시나 부자지간으로 밝혀질지도 모르는 오리무중 관계가 결국은 대적할 수 밖에 없는 선우와 진노식 모두를 비극과 파멸의 끝으로 몰아넣겠죠.
그러나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이장일과 진노식에게 접근하면서 복수의 서막을 연 김선우보다 더 기가막힌 것은, 오매불망 장일에게 집착하는 수미(임정은 분)의 존재입니다. <적도의 남자> 홈페이지 등장인물 소개를 보면, 그녀는 선우 친구이기도 하지만, 우연히 장일과 선우와의 비밀을 알고서도 장일을 향한 강한 집착으로 선우를 배신한다는 설정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선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눈이 먼 그를 물신양면 도와줬기에 특별한 배신도 없었고, 뒤늦게 선우의 점자를 보고 그제서야 장일이 선우를 죽이려고 했던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수미는 이미 선우를 철저히 배신하고 있었습니다. 선우의 점자를 보기 이전부터 수미는 그 때 그 사건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장일이 선우의 뒤통수를 친 찰나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그림 한 장면도 남겨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일이 선우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터벅터벅 다리를 건너는 뒷모습을 너무나도 세밀하게 그림 한 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수미는 왜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선우 그리고 장일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인가요. 장일은 혹시나 선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죽일 수도 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선우에게는 왜 아무런 귀띔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앞을 보지도 못하고,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선우에게 혼란만 줄까봐 배려하는 차원에서? 아니면 선우가 지금 하고 있는 수법처럼 더 파이를 키워서 나중에 더 크게 잡아먹으려고.
그런데 수미는 장일이 선우를 죽이려고한 광기와 악마의 피를 모두다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선우가 장일에 의해 벼랑 끝으로 떨어진 것을 알면서도, 태연히 선우네 집으로 선우를 찾으려 갔고, 장일이 서울로 토낀 것을 확인하고 바로 선우를 따라 나갈 정도 였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을 철저하게 비웃으면서 경멸하는 장일을 보고 "너 후회하게 될 것." 이라면서 강한 일침을 놓았죠.
그 땐 단순히 짝사랑하는 남자 이장일에게 버림받은 수미의 강한 집착에서 비롯된 오기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때부터 수미는 이장일이 뼈저리게 후회할 결정적 한방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장일에게 다가가고, 선우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왔습니다.
복수를 위해 13년동안 참아온 선우와 달리, 모든 것을 알면서도 침묵한 수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장일의 여자가 되는 것 뿐입니다. 어린 시절 얼치기 박수무당으로 선우 외엔 친구 없이 외톨이로 지내온 그녀에게 유일하게 살갑게 접근하고 또 그녀의 신분을 알고 야멸차게 거절당하면서도 계속 그의 사랑을 갈망케하는 극한 애증의 존재가 바로 이장일이니까요.
계속 이장일에게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수미를 보고, 혹시나 수미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설마 그 자리에 수미가 목격자로 있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로서 수미 아버지 최광춘(이재용 분)은 장일 아버지 살해사건 목격자로, 그 딸인 수미는 김선우 살인 미수 사건 목격자로 남아, 더더욱 진노식과 이장일 부자를 극한의 공포로 몰고가는데 일조를 하겠군요.
불완전한 가정에 자라 정서적으로 온전히 못해, 자신을 극도로 피하는 누군가에게 심하게 집착하는 수미의 딱한 상황이 이해되면서도 안쓰럽기도 합니다. 허나 이장일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그에게 집착하는 그녀가 정말로 무섭군요. 결국 그녀가 진노식과 김선우, 그리고 이장일과의 관계를 더욱 파국으로 몰아넣는데 큰 역할을 할 진정한 악녀가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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