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후궁 조여정 노출에 숨겨진 여성들의 섬뜩한 권력다툼

반응형



확실히 영화 <후궁: 제왕의 첩>(이하 <후궁>)은 소문대로 상당히 야한 영화였습니다. 아마 <후궁> 흥행에는 분명 개봉 몇 달 전부터 여주인공 조여정의 노출과 베드신에 초점을 맞춘 홍보 공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여정의 노출, 수위 높은 정사신은 단지 영화를 위한 미끼였습니다. 다른 19금 영화와 비교해도 강렬한 정사신이기에 참으로 인상깊긴 하지만 제가 <후궁>을 그럭저럭 좋게본 것은 단순히 화끈한 정사신 때문은 아니었거든요. 


영화 개봉 전 자꾸만 조여정의 노출만 강조했을 때, <후궁>이란 영화가 참으로 걱정되긴 했습니다. 드라마도 그렇지만 영화 같은 경우에는 특히더 '요란한 홍보 공세'를 의심해봐야합니다. 혹시나 이 영화에는 조여정의 수위 높은 노출에 정사신만 볼 만한가 싶은 우려도 제기되더군요. 그럴 바엔 19금 용어로 집에서 컴퓨터로 편안히 감상하지 뭐하려 영화관에 5천원~9천원 내고 극장에서 보겠습니까. 





하지만 직접 본 <후궁>은 결코 조여정의 노출, 과도한 정사신만 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노출을 상쇄할 정도로 특출난 작품성과 스토리를 자랑하는 영화라고는 보기 힘드나, 그래도 나름 극장에서 제값주고 봐도 괜찮은 영화같아요. 이병헌, 고 이은주 주연 <번지 점프를 하다>를 시작으로 <혈의 누> 김대승 감독이 추구하는 화려한 비주얼만 중점으로 놓고 봐도 볼 만하고, 영화에서 시종일관 화연(조여정 분)과 대립각을 세우는 대비 박지영을 비롯 조여정 아버지로 출연하는 안석환, 그리고 내시로 분한 이경영의 묵직한 카리스마 연기도 괜찮았거든요


<후궁 제왕의 첩>이란 강렬한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후궁>은 궁 안에서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김동욱이 분한 성원대군이나 정찬이 특별 출연한 조여정 남편은 대비 혹은 화연의 꼭두각시들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조선에서 왕이 될 수 있는 남자 허수아비를 앞세워 여자들이 대신 조정하는 것이죠. 비단 <후궁>에서 뿐만 아니라 성리학의 심화로 여성 권위가 땅으로 떨어진 조선시대에도 여자인 대비들이 종종 '수렴청정' 명분으로 정치에 개입한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아마 <후궁>에서의 대비는 자신의 의붓아들인 선왕을 독살하고 자신의 친아들 성원대군을 왕위에 앉혀 자신들의 외척들과 함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렸다는 점에 조선 중기 중종의 계비이자 문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오버랩되네요. 





그런데 자신을 경멸하고 예전부터 사랑했지만 지금은 이복형의 부인이 되어 탐할 수 없는 화연에게 흠뻑 빠져있는 아들을 설득하고자 만날 "우리 모자 불에 타 죽을뻔 했잖니." 하면서 선왕 외척들에게 시달리던 과거를 읊조리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처음부터 무너뜨려야하는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던 대비와는 달리,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는 이는 다름아닌 선왕 계비이자 성원대군이 홀로 짝사랑하는 화연입니다. 





영화 초반에 화연은 사랑하는 권유(김민준 분)이 아닌 왕의 여자가 된다는 운명에 반발, 권유와 함께 도망치는 사랑이 최우선인 순수한 여인입니다. 하지만 곧 아버지 신참판(안석환 분)에 발각되어 화연은 권유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궁에 들어가고 권유는 남근을 잃어버리는 거세형을 당하게 됩니다. 궁에 들어가 계비가 되어도 화연은 병약한 남편과 기 센 시어머니(?)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다가, 왕이 독살당하자 자기도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화연은 어여쁘고 섹시한 여성이 가진 최고의 무기이자 특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자신을 탐하던 성원대군을 은근슬쩍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계속 자신을 갖고 싶어서 안달난 성원대군 앞에 화연은 "진짜 왕이 되면 그 때 날 찾아오세요." 하면서 선전 포고를 내립니다. 현재 화연밖에 보이지 않는 성원대군은 화연에 뜻에 따라 진짜 왕이 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렇게 손에 피한방울 안묻히고 자신의 최대 정적을 제거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여자가 바로 화연이지요. 





여기서 천상 여자에서 수컷의 본능을 역이용하는 요물로 변한 화연의 급진적인 변화를 보조해주는 특이한 캐릭터가 있는데, 화연이 궁에 들어오기전부터 그녀의 몸종이었던 금옥(조은지 분)이 대표적이지요. 겉으로는 화연의 충성스러운 몸종이나 그녀는 호시탐탐 화연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은 자기로서는 차마 올라갈 수 없는 신분이기에 억지로 자신의 욕망을 참았던 거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꿩 대신 닭이라고 화연대신 자신의 몸을 탐한 성원대군에게 승은을 입은 이후 금옥은 한순간에 왕의 후궁으로 신분이 격상됩니다. 그런데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왕년 화연 몸종인 금옥은 급기야 성원대군이 화연에게 준 화려한 비녀까지 탐하는 뒤통수를 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오르기 전에는 몰랐는데, 오르고 나니 내려가니 싫습니다."





그렇게 더 높은 신분을 바라본 금옥은 결국 자신의 출세를 위해 대비에게까지 화연의 비밀을 발설하는 무리수를 감행하다가 결국 자기 꾀에 속아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 하지요. 한마디로 금옥은 노련한 능구렁이 대비에게 화연을 잡기 위한 토사구팽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이대로 눈뜨고 두번씩이나 대비에게 당할 화연이 아니죠. 


대비와 화연. 성원대군을 가운데 두고 최후의 권력 다툼을 벌인 이 두 여자 중 누가 막판에 웃게됬는지는 영화 스포일러 유출상 비밀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결말보다 놀라운 것은 살아남기 위해 한 때 자신이 목숨걸고 사랑했던 남자도 주인도 버릴 수 있는 인간의 간사한 속성이 아닐까요. 어쩌면 까딱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궁 안에서 가늘고 길게 잘 버틸 수 있는 법은 힘의 이동에 따라 맡은 바 임무만 다하는 내시감 이경영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아무리 처세술을 잘 해도 피비린내나는 권력 싸움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약방내시(박철민 분), 제조상궁도 있지만요. 


현대에도 통용되는 인간의 권력 지향 속성을 가상의 조선 시대 왕조로 풀어놓는 것은 흥미진진하지만, 등장인물 캐릭터나 스토리는 그리 참신한 편은 아닙니다. 이미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 주구장창 풀어놓은 대결구도와 인물 성향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후궁>은 6월의 기대 외화 <프로메테우스>에 맞서 놀랄만한 흥행을 거두고 있고, 특히나 중년 여성 이상하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호불호가 강하게 엇갈리는 <후궁>이긴 하지만, <후궁>을 나름 재미있게 본 관객들은 노출은 영화 <후궁>이 진짜 말하고 싶은 바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자하는 수단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성원대군이 유일하게 자신이 가질 수 없는 화연의 아름다운 몸을 탐하는 것이나 무수리 출신 후궁 금옥이 중전의 자리를 노리는 것, 대비가 성원대군을 앞세워 오래오래 권력을 유지하고자하는 것. 다 가지고 싶을 수록 점점 멀어져가는 욕망의 헛됨 아니겠어요. 





그래서 대비를 이기고 싶었던 화연은 자신의 몸뚱이를 앞세워 성원대군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성원대군은 달콤한 유혹에 빠져 독이 든 술인지 모르고 냉큼 받아들이고. 인간 세상사가 다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어찌되었던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못 올라갈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 말라는 확실한 교훈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왜 생겼는지 여실히 깨달아주는 영화 <후궁: 제왕의 첩>입니다.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고, 저작권은 황기성 사단에 있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하시면 손가락을 꾸욱 눌러주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