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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응답하라 1994. 고아라 정우 향한 투박하면서도 풋풋한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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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서툴고 투박해야하며, 사랑은 해맑고 촌스러워야한다. 그것이 내 스무살 사랑이 설레고 가슴 뛰게 기억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내 나이 스물 나는 지금 서툴고 촌스러운 사랑을 시작한다. -<응답하라 1994> 3화 '신인류의 사랑' 성나정(고아라 분) 대사 중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에서든지 전화를 하고, 인터넷까지 할 수 있는 2013년 시각에서 오직 누군가가 남긴 메시지만 확인할 수 있는 '삐삐'는 답답한 고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사실 글쓴이는 85년생으로 94년 당시 초등학생(그 땐 국민학교)였기 때문에 한 번도 '삐삐'를 사용한 적이 없다. 


때문에 글쓴이는 '삐삐'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다. 당시 '삐삐'를 갖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국민학생인터라 (지금은 초등학생 대부분도 부모님과 원활한 연락을 위해 휴대폰을 사용하지만) 삐삐를 가질 수 없었던 글쓴이는 뒤늦게 회사 업무차 삐삐를 마련한 아빠의 삐삐를 부러운 눈으로 신기하게 바라 보았던 것 같다. 그게 90년대 중후반 비교적 어렸던 글쓴이의 '삐삐'에 대한 유일한 기억인 것 같다. 


때문에 지난 25일 방영한 tvN <응답하라 1994> 3화 '신인류의 사랑'에서 주로 등장한 '삐삐'에 관한 에피소드는 한번도 삐삐를 가져보지 못한 글쓴이 이하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는 소재였다. 

하지만 1994년 '삐삐' 2013년 '스마트폰' 시대마다 사용했던 수단만 다를 뿐, 그것들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같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한들, 결코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우리는 그 관계를 유지하고 개선하고, 때로는 끝내기 위해 통신수단을 사용해왔었고, 앞으로도 스마트폰을 대신할 새로운 무언가가 나온들, 우리 신인류들은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설레고 가슴 뛰게 하는 사랑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농구선수 이상민밖에 몰랐던 성나정이 드디어 진정한 첫 사랑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첫남자는 '쓰레기(정우 분)'. 친오빠라고 오해받을 정도로(?) 쓰레기와 허물없이 지냈던 나정에게 어느 날 문득 쓰레기가 남자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나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구에게나 무심한 쓰레기에게 아직까지 나정은 그저 귀여운 동생인 것 같다. 


이상민에게 홀딱 빠져있어, 쓰레기가 어떤 여자를 만나던 무슨 선물을 받던 관심없던 나정이 드디어 처음으로 쓰레기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을 집중 견제하기 시작한다. 현재 쓰레기에게 접촉하는 여자는 같은 학교 음대생. 나정이가 술집가시라라고 부르는 것을 가정할 때, 그 당시에도 굉장히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성인 둣하다. 





쓰레기에게 "자기야 사랑해"를 강요하는(?) 여자친구의 존재에 눈이 뒤집어진 나정은 쓰레기 앞에서 그녀의 흉을 늘어놓는다. 그녀는 쌍커풀하고, 코도 세우고, 심지어 그녀의 그 곳은 자연산이 아니다.하지만 헤어질 때까지 여자친구의 머리 색깔이 샛노랗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던 쓰레기에게 나정이 늘어놓는 여자친구 험담은 그냥 장난인 것 같다. 하지만 나정이 왈 "장난 아니거든!!!!!"


쓰레기가 속해있는 의대와 같은 날 강촌으로 MT를 떠난 날. 엄마 이일화가 해준 대형 잡채에 즐거운 MT 날 내내 속이 좋지 않았던 나정이는 계속 쓰레기만 찾는다. 그가 의대생이기 때문에 그를 찾는다고 에둘려 댔지만, 사실 나정이는 쓰레기 오빠가 보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쓰레기 오빠의 연락은 오지 않고, 결국 나정은 쓸쓸히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쓰레기 오빠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산책길에 나선 나정은 우연히 강촌 MT촌을 벗어난 쓰레기를 발견한다. 나정이가 남긴 삐삐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못했는지. 아무튼 그는 오늘 화이트 데이라 여자친구 만난다면서 집에 늦을 것 같다고 일화에게 전해달란다. 그리고 나정이 추울 것 같다고 그가 입고 있던 외투도 벗어 나정이에게 입혀준다. 하지만 오직 나정을 동생으로만 대하는 쓰레기의 배려가 진화될 수록, 나정이의 마음만 아프고 힘들 뿐이다. 







MT에서 돌아온 저녁에도...속이 안좋다고 쓰레기가 입혀준 외투를 칭칭 감고 방에 틀여박혀 앉아있던 나정은 갑자기 하숙집으로 돌아온 쓰레기의 이른 귀가에 기분이 묘해진다. 게다가 쓰레기가 여자친구 준다고 하던 사탕 바구니가 고스란히 나정의 몫으로 돌아온다. 바로 쓰레기의 삐삐 메시지를 확인해본 나정.참으로 기쁘게도 쓰레기 여자친구과 헤어졌던다. 나정 그제서야 꽉 멕혔던 속이 뻥 뚤린다. 그렇게 나정은 자신의 방 벽지를 도배한 상민 오빠의 존재를 서서히 지워가며, 그 빈자리를 온전히 쓰레기로 채워가고 있었다...


상대방이 먼저 메시지를 남기고 난 이후에야 확인할 수 있는 '삐삐'를 통해 마음을 주고 받는 1994년 당시 청춘들의 모습. 2013년 청춘들이 봤을 때 생소하고도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쓰레기 오빠의 메시지만 오매불망 기다리다 지쳐 잠든 나정에게 짝사랑의 아련한 감정을 발견하고, 재혼하는 엄마에게 애써 쿨한 척 자신의 복잡 미묘한 마음을 숨기며, 정다운 축하 인사를 건네는 칠봉이(유연석 분)의 대사에 울컥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에 관한 가장 보편적이고도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의대생이긴 하지만, 여타 드라마처럼 재벌 3세도, 실땅님도 아닌 하숙집 오빠를 사랑하는 명문대 여학생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 자극적인 조미료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다소 밍밍하고 평범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막 풋풋한 첫사랑을 시작하는 나정에게서 1994년 혹은 2013년에 살고 있는 우리 누군가는 살면서 한번 이상은 품어보았을 법한 짝사랑, 첫사랑의 아픈 기억을 조금씩 떠올려가며, 잠시나마 설레고 가슴 뛰며 위로받으며 그렇게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PC 통신으로 사랑을 찾고, 삐삐로 마음을 전하는 X세대나 스마트폰, 태블릿PC로 중무장한 2013년이나 '신인류의 사랑'이 가슴뛰고 설레는 이유는 삐삐도 스마트폰도 최첨단의 유행도 아니다. 

1994년과 2013년을 관통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짙은 공감대 형성. 평범하고도, 투박하고, 서툴고 촌스럽지만 순수한 성나정의 쓰레기를 향한 첫 사랑이 2013년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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