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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더 랍스터. 사랑도 통제하는 끔찍한 세상에서 펼쳐지는 잔혹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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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그리스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2009년 열린 제62회 칸 영화제 문제작 <송곳니>(2009)를 만든 감독답게, <더 랍스터> 또한 정신을 아찔하게 하는 잔혹미와 독특한 현실 풍자가 공존하는 기묘한 영화다.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벤 위쇼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작업하였지만, <송곳니>로 시작했던 란티모스의 독특한 세계관은 그대로였다. 





우리에겐 아직 낯선 영화 세계인 그리스는 이미 2000년대 후반 세계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한 새로운 물결의 진원지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송곳니>, <알프스>(2009)로 연이어 칸,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휩쓴 이후로 몇몇의 그리스 신진 감독들이 앞다투어 소개되었으며, 2013년에는 알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 감독의 <은밀한 가족>이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 영화가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 신진 감독들이 칸,베니스,베를린 등 3대 국제영화제에서 굵직한 상을 여러개 받아서가 아니다. 젊은 그리스 감독들이 보여주는 냉철하고도 무자비한 영상세계. 유독 그리스 뉴웨이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흐름이 전세계 비평가들과 씨네필들을 더욱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부인에게 이혼당한 중년 남자 데이비드(콜린 파렐 분)가 짝을 찾기 위해 메이킹 호텔에 투숙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메이킹 호텔’이라는 설정 때문에 혹시나 한 때 인기리에 방영했던 SBS <짝>과 같은 로맨스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물론 <더 랍스터>에도 로맨스가 있긴 하지만, 보통 드라마, 예능에서 보여주는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하고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데이비드가 머무른 호텔은 선남선녀가 마음껏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 아닌, 어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무조건 짝을 찾아야하는 통제와 억압의 공간이다. 물론 지중해 바다를 둘러싼 천해의 자연환경 속에 자리잡은 호텔의 외향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그 곳에서 45일 동안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야한다. 그래서 호텔 투숙객들은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짝을 찾거나 투숙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호텔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영화의 주인공 데이비드 또한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여인과 커플 위장을 감행한다. 하지만 거짓된 관계는 파국으로 치닿게 된다. 


그 이후 숲속으로 도망친 데이비드는 외톨이 리더(레아 세이두 분)이 이끄는 솔로부대와 합류하여 새로운 세계에 입성하게 된다. 그곳은 메이킹 호텔과 정반대로 누군가와 짝을 맺는 것을 철저히 금지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곳에서 데이비드는 운명적 여인(레이첼 와이즈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금기된 사랑을 나눈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어마어마한 처벌뿐이다. 





솔로척결, 커플지옥 그 어느 쪽에서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데이비드의 웃픈 일화를 통해 <더 랍스터>는 ‘사랑’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감정까지 통제하려드는 전체주의 체제를 풍자한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신시키는 메이킹 호텔과 커플이 되면 신체를 훼손하는 처벌을 내리는 외톨이 부대는 어디까지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극적 설정이다. 그러나 마치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보는듯한 기괴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한 개인이 가진 감정과 사상까지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통제하려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악순환의 적체와 폭발,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쉬쉬하며 덮어지기만 기다리는 지배층. 그리고 통제와 규율에 길들어져 버린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 


<은밀한 가족>의 알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 감독과 함께 에게 해에서 날아온 문제적 감독으로 부상 중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최근 재정 위기를 겪은 그리스는 물론, 몇몇 나라에서 감지되는 전체주의의 기운을 꼬집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뿐만 아니라 하나의 장르와 테마로 연결짓기 어렵다는 그리스 뉴웨이브 감독들에게서 발견되는 놀라운 징후다. 





그리고 그리스 뉴웨이브 기수인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그만의 독특하고도 기괴한 시선을 확장시키며,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21세기 어른들을 위한 완벽한 잔혹 우화 한 편을 만들어 내었다. 군데군데 끔찍한 몇몇 장면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우리가 곧 마주할지도 모르는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결코 피해서는 안되는 영화. 어쩌면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예술가가 아니라, 세상을 꿰뚫어보는 예언가인 것 같기도 하다. 10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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