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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재꽃. 한 소녀의 등장이 불러온 파국. 잊지 못할 마무리를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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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2016 개막작으로 선정된 <재꽃>은 <들꽃>(2014), <스틸플라워>(2015)를 이은 박석영 감독의 ‘꽃’ 삼부작입니다. 하지만 전작들을 보지 않아도 <재꽃>을 보는데 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시리즈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 작품 모두 별개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물론 삼부작의 연계고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박석영의 꽃 삼부작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인물은 배우 정하담이 연기하는 하담입니다. 여기에 <재꽃>에서는 하담이의 미니미를 보는 것 같은, 하담이를 쏙 닮은 해별(장해금 분)이 등장합니다. 트렁크 하나 달랑 끌고, 엄마가 아빠라고 알려준 명호(박명훈 분)을 찾아온 해별과 하담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봅니다. 언제나 혼자 였던 하담에게 친구 혹은 가족이 생긴거지요. 


그러나 해별이 찾아와서 마냥 좋은 하담과 달리, 해별의 등장으로 하담의 주변 인물들은 차례차례 파국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하담 또한 그 붕괴의 도미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들꽃>, <스틸플라워>에서도 그랬듯이 박석영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에게 그들이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쉽게 내어주지 않습니다. 하담 혹은 해별이 힘겹게 자기가 머무를 수 있는 영역을 확보했다 싶으면, 여기는 너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면서 매몰차게 쫓아냅니다. 그래서 박석영의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잔인하고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스틸플라워>에서 하담을 몰아세운 것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것일까요. <재꽃>은 그런 하담에게 그녀와 똑 닮은 해별이를 만나게 해주고 언제나 그랬듯이 혼자 스스로 살 길을 개척해야 하는 하담 그리고 해별이를 조금이라도 행복한 모습으로 보내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하담, 해별 외에도 <재꽃>에는 명호, 진경(박현영 분), 철기(김태희 분), 철기 엄마(정은경 분)이 등장합니다. <재꽃>은 하담이와 해별이만이 존재하는 영화가 아니라, 명호, 철기, 진경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극영화에서 자주 보여지는 실수 중 하나가 특정 인물 외의 나머지 인물들이 주변화로 머무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인데, <재꽃>은 워낙 등장 인물들이 적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각 인물들이 영화 속에 박제된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살아 숨쉬는 듯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을 실존 인물처럼 받아들이고 자꾸만 그들의 삶에 끼어뜰고픈 충동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박석영 감독 영화가 가진 장점이기도 합니다. 


인물의 움직임과 공간을 적절하게 활용한 장면들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미지로 세계를 구현하는 예술이자,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매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반면 아쉬운 부분도 분명합니다. 영화 초반부 컷과 컷의 이어짐이 부자연스럽다 못해 뚝뚝 끊어지곤 하는데, 편집상 실수인 것인지 아니면 감독이 의도한 바 인지 의문을 들게 합니다. 영화에 총 세번 배경 음악이 등장하는데 감정 몰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된 듯한 음악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후반부 갑자기 모든 것이 정리되는 듯한 시퀀스도 호불호가 엇갈릴 것 같구요. 


이렇게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재꽃>은 영화가 가진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는 작품입니다. 캐릭터가 가진 힘이라고 할까요? <스틸플라워>의 하담이가 어떻게 지낼지 궁금했는데, 이제는 <재꽃>의 하담이와 해별이의 앞날이 괜스레 걱정됩니다. 이제 박석영 감독의 꽃 삼부작이 마무리된 만큼, 하담이도 해별이도 떠나 보내야겠지만, 자꾸만 그들을 붙잡아 두고 싶네요. 요즘 한국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캐릭터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인물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목하게 하고, 그들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흔치않는 작품입니다. 올해 서독제 상영을 통해 관객들 앞에 선 박석영 감독의 ‘꽃’ 삼부작 완결판 <재꽃>이 언제 정식 개봉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다시 한 번 관객들 앞에 선보일 기회가 있으면 꼭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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