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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보이콧 1963' 차별에 맞선 흑인들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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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2018) 상영작 <보이콧 1963>(2017)은 1963년 10월 3일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흑인 학생들의 인종차별 항의시위(’63 보이콧’)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30분 남짓 러닝타임을 보여주는 영화는 1963년 흑인들의 시위 장면과 2013년 공립학교 폐교를 반대하는 흑인, 히스패닉 학생들의 시위를 절묘하게 교차 시키며 예나 지금이나 백인 중심적, 계급적인 미국의 현실을 꼬집는다. 




미국 내 인종차별이 절정을 이루던 196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유럽출신 백인들과 같은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고 동등한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박탈 당했다. 번듯한 건물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는 백인들과 달리 흑인들은 임시로 만든 컨테이너 박스 학교에서 학생 수 과밀에 시달려야 했다. 인종 분리 정책과 흑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당연시 여겨지던 시대 였고 설상가상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기승에 힘입어 미국 정부의 흑인 탄압은 가속화 된다. 


이에 참다 못한 흑인들과 흑인 해방 운동에 관심있는 백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시카고시 당국의 흑인 차별 정책에 항의하는 특급 이벤트를 기획해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흑인들을 정당한 미국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백인들과 정부에게 보란듯이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의 힘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25만명의 흑인 학생들이 보여준 용감하고 평화로운 저항 행동은 시카고는 물론 미국 북부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흑인들에게 제대로된 학교 건물을 지어주지 않았던 시 당국에 항의 하는 뜻으로 등교를 거부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르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터득한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흑인 학생들에게 보이콧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자 흑인이자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흑인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자유 학교에서 가르친 흑인의 역사와 평등 사상은 훗날 흑인 지역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유색 인종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과학자의 꿈을 접고 비서가 되기로 했던 한 여학생은 보이콧 시위에 참여한 이후 과학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확고히 해 결국 그 뜻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1963년 흑인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시카고시 정부에 맞서 시카고 공립학교 수업을 보이콧한 흑인들의 결의는 영화에 등장한 것처럼 미국 교육구조 자체를 바꾸진 못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에도 대다수 흑인과 이민자들은 60년대처럼 노골적이진 않지만, 백인 중산층들이 평균적으로 받는 교육 환경에 미치지 못하는 공교육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은 50년전 흑인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리로 나와 누구나 평등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외친다. 


누구는 미국의 불평등한 교육 구조를 바꾸지 못한 ’63 보이콧’을 두고 실패한 운동으로 쉽게 단정 지을 수 있겠다. 비록 1963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있었던 흑인들의 공립학교 보이콧은 그들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흑인 학생들의 의식을 깨우는데 일조 한다. 




’63 보이콧’ 시위에 참여한 이후 여성 교육자가 되어 흑인 중심 학교를 설립한 론 크레스 러브는 교육의 목적을 두고 “구직이 목적이 아닌, 사람을 키워나가고 재탄생 시키는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애초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가까웠던 ’63 보이콧’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중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쉽게 관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조급해 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이것이 쉽게 지치지 않고 수십년 이상 보이콧 운동의 명맥을 유지해온 시카고 흑인 교육 운동가들의 전략이자 힘이다. 


<보이콧 1963>은 최근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며 여러 문제에 직면한 현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 불평등한 사회, 의식 구조를 개선하는 운동이라는 맥락 하에서 올해 초 미투 운동(#MeToo) 이후 전세계적으로 거세지는 여성 시위와 견주어 생각해 볼 법도 하다. 




중요한 건 역시 운동의 목표와 방식이다. 기존의 사회 질서를 지탱해 왔던 사회 구조, 사람들의 인식을 하루 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비교적 성공적인 사회 운동으로 평가받는 ’63 보이콧’ 또한 미국의 교육 체계를 바꾸진 못했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교육 운동가와 학생들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교육의 힘과 연대의식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다. 차별과 금기에 맞서 평등과 자유, 인권과 꿈을 노래하는 이들을 응원하는 <보이콧 1963>은 EBS에서 운영하는 다큐멘터리 전용 스트리밍 서비스 ‘D-BOX’를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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