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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모리의 정원'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원에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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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영화의 원조 <남극의 쉐프>(2009) 오키다 슈이치 감독이 2018년 연출한 <모리의 정원>은 일본의 근대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1880~1977)의 평범한 듯 특별했던 1974년 어느 여름날을 상상한다. 

1977년 생을 마칠 때까지 30년 넘게 집 밖을 나가지 않아 동시대 사람들에게 ‘선인’으로 불리기도 했던 모리카즈(모리)의 정원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었다. 낮에는 정원의 작은 생명들을 관찰하고 밤에는 그림 작업을 했다는 화가의 말년을 다룬 <모리의 정원>에는 모리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단 한 컷도 등장 하지 않는다. 모리의 글씨를 받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여관 주인의 요청에 따라 붓을 잡는 모습을 제외하곤, 모리의 하루는 대개 정원에서 이뤄진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정원에서 산책을 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모리(야마자키 츠토무 분)는 그날따라 유독 그를 찾는 손님들 때문에 분주한 하루를 맞게 된다. 모리가 정원의 생명들을 관찰하는 틈틈이 그를 찾는 손님을 맞이하는 동안, 모리의 식사를 챙기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는 이는 모리의 부인 히데코(키키 키린 분)와 그녀의 조카이자 조수 미에다. 

 


예술가이자 사색가인 모리는 낮에는 정원의 생명들을 관찰하고 밤늦게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는다. 한 때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안해본 일이 없고, 자신의 집 정원을 직접 만들고 가꾸었다는 모리가 관찰과 예술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94세 나이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의 뒷바라지를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無一物(무일물, 무이츠모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이보다 구마가이 모리카즈라는 인물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남들이 뭐라고 요청한 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쓴다는 모리는 멀리 신슈에서 찾아온 여관주인에게 또한 예외가 아니다. 모리에게 문화 훈장을 주겠다는 정부의 제안 또한 귀찮다고 단박에 거부하는 모리와 히데코다. 정부의 문화 훈장 전화를 거절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식사를 이어가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모리와 히테코. 부창부수란 바로 이런 것일까. 

 


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속세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30년 넘게 집과 정원에만 머물러 있었던 모리의 삶은 ‘안분지족’ 그 자체다. 아무리 연못까지 갖춘 널찍한 정원을 갖고 있다고 한들 어떻게 수십년 넘게 집에만 머무를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도 들지만,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는 모리 이기에 가능했던 낭만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가 그림만 그려도 먹고 살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기에 오히려 물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의 삶을 이해하고 그녀 또한 70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남편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는 히데코의 내조가 있었기에 모리의 안분지족이 가능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당장 먹고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모리가 가진 소박한 정원 또한 어느 정도 가진 자의 여유로 느껴질 뿐이다. 

 


물론 모리도 자신만의 ‘소우주’를 가지기 까지는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했고 정원을 가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순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공간과 세계를 갖게된 모리의 인생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갖기 위해 분주히 노력했던 모리의 지난 삶과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모리의 정원’. 소박하고 단조롭게 느껴지는 그의 정원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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