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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적도의 남자 임시완. 미워할 수 없는 악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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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음모에 의해 억울한 일로 고초를 치루는 주인공과 끊임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반동인물과의 대립. 드라마라는 장르가 제기된 이후 계속되어 제시되어온 스테디셀러 극적 요소이지요. 하지만 반 세기의 묵직한 역사의 깊이와 더불어 이를 소재로한 워낙 많은 작품들이 생기다보니, 마냥 선악 구도로만 몰고가면 금세 식상하다는 혹평에 시달릴 수 있는 위험한 장르이기도 하구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 요근래 '막장'이라고 불리는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출생의 비밀, 자극적인 살인, 배신 등등등 그야말로 눈쌀만 절로 찌푸릴 요소를 총망라한 <적도의 남자>가 '막장'이 아닌 '웰메이드' 드라마로 불리는 것은,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이해는 가는 짜임새있고 개연성있는 인물 전개와 스토리 덕분이죠. 


그간 나왔던 '복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그랬듯이, <적도의 남자>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한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에 의해 시작된 파열입니다. 원하는 것이라면 사랑하는 약혼녀쯤은 가뿐히 버릴 수 있는,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안면몰수 잔인함의 극치를 가진 진노식 회장(김영철 분)과 그에 의해서 시작된 비극의 암초들. 여기까지는 그간 흔히 보아왔던 절대 악의 전형적인 표본과 한 치도 다를 바가 없어요. 


그러나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서 진노식의 악행에 동조하는 새끼 악마들이에요. 물론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강자에게 붙었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주인공 김선우 아버지를 죽이고 김선우의 머리를 내치고 바다에 떨어트린 것은 이장일 부자이지요. 진노식의 사주를 받아서 김선우 양부를 죽인 것이라, 약간 죄가 감면될 수도 있어도, 결국 김선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이장일 아버지라는 사실은 제 아무리 이장일이 '스타검사'로 출세한다고해도 평생 씻을 수 없는 피묻은 '원죄'이지요. 


제아무리 얼치기 박수무당이라고 할 지라도 눈치로 사람 보는 눈은 예리한 수미 아버지(이재용 분)의 충고처럼 선우(이현우 분)과 장일(임시완 분)은 애초부터 친구로 우정을 쌓지도 않았어야할 악연이에요. 그 누구보다도 해맑고 선한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그 이면에 자신의 가족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도원결의한 친구조차 과감히 죽일 수 있는 양면성. 그래서 절대 악의 얼굴을 갖고 있는 진노식이 일찌감치 악의 기운이 도사리는 장일을 파악하고, 그를 자신의 악의 후계자로 만들어버렸는지도 몰라요. 피 한방울도 섞지 않았지만, 진노식의 야멸찬 야심을 꼭 빼닮은 인물은 이장일이니까요. 





박수무당 딸 수미(박세영 분)이 부경화학 오너 딸인줄 알고 접근했다가 바로 냉정하게 돌아서는 인물. 그 때부터 장일이 자신의 이익 앞에서 그 누구든지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의외로 진짜 부경화학 사장 딸임을 알고 호감을 가진 한지원(경수진 분)은 그녀의 아버지가 진노식에 의해서 몰락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접근하는 놀라운 점을 보여주었어요. 다행히 그녀는 몰락한 집안에도 불구하고 이장일과 같은 명문대에 다니는 여학생이고, 똑똑한 재원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이장일에게 큰 힘이 되줄만한 아리따운 여인이긴 하지요.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배경, 집안부터 따지고드는 이장일이 별볼일 없는 소녀가장이 되어버린 지원 그리고 싸움만 잘하는 선우를 품은 것은 돈과 출세에 대한 욕망보다 더 큰 사랑과 우정을 느꼈기 때문이죠. 


만사 모든 일을 제치고 선우 아버지 살인자 찾는데 끝까지 도움을 주려고 했던 장일. 그러나 그 살인자가 아버지라는 믿고 싶지도 않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숙명이 결국 친구를 배신함은 물론, 진노식의 뒤를 이은 악마로 거듭나게 되었죠. 만약에 장일의 아버지가 진노식의 머슴으로서, 진회장이 시키는 대로 선우의 양부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훗날 선우와 장일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하는 지원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선우와 장일은 그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로 지냈을거에요. 하지만 장일은 선우의 양부를 죽인 살인자의 아들일 뿐이고, 난생처음으로 배경, 집안을 떠나서 사랑만으로 접근한 여인에게도 선우 다음일 수 밖에 없는 남자. 특히나 그 모든 갈등의 시작이 선우와 장일. 그 두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 어른들의 잘못에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보는 이들의 마음을 황량하게 합니다. 





어느순간 연기 유망주로 거듭난 임시완 특유의 해맑은 얼굴이 절친을 배신하는 이장일의 잔혹한 성향을 한층 완화시키는 대신,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받아들이는데 결정적인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장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순진한 척으로 저지르는 악행이 용서받을 수 있는 간단한 인물이 아니에요. 착하고 반듯하게 생긴 얼굴로 어떻게든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 친구의 뒷통수를 아무렇지 않은 척 칠 수도 있는 나쁜 놈 중에도 상나쁜놈이니까요. 




그러나 결국은 친구를 배신한 장일이 당장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우면서도,어떻게든 설득시켜 끝까지 선우와 아버지 모두를 지키려고 발버둥쳤던 장일이 계속 마음에 걸리네요. 


검사가 되어 그 누구보다도 정의롭게 살고 싶었으나, 운명의 장난으로 첫단추부터 잘못 꿰게 되어 평생동안 고통 속에 시달려야하는 훗날을 암시하듯이 목놓아 절규하는 장일, 그리고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이어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물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선우.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두 남자의 짖궃은 악연이 또래 배우 치고 사뭇 진지한 눈빛을 가진 이현우와 임시완. 두 젊은 배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적도의 남자>의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싶네요. 이제 <적도의 남자> 공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태웅과 이준혁에게 넘어가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선우와 장일을 잘 표현해준 이현우, 그리고 이번 작품을 계기로 꽃미남 아이돌에서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난 임시완은 꽤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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