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프린스 장근석과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걸그룹 소녀시대 에이스 윤아와의 만남. 그리고 일본에 본격적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켰던 <겨울연가> 주요 연출진들. 방영 그 이전부터 한국의 연예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큰 관심을 받았던 기대작으로 손꼽았던 <사랑비>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에서의 <사랑비> 시청률은 썩 좋지 않습니다. 트렌디로 대변되는 인스턴트식 사랑이 난무한 2012년에서 70년대식 순수한 감성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지가 <사랑비> 국내 흥행에 큰 관건이긴 했지만, 장근석과 소녀시대 윤아라는 걸출한 스타를 앞세웠다는 점에서 현재 <사랑비>가 기록하고 있는 시청률은 큰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현재 4~5%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사랑비>에 대한 반응은 심히 엇갈립니다. "진부하다." "오랜만에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진부하다는 평들은 대체적으로 기존 멜로드라마에서 한번쯤 나온 '식상한' 설정을 거론합니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다는 것.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보편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상황이니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제 4회분에서 여주인공 김윤희가 결핵 진단을 받고 결국 서인하(장근석 분)과의 애틋한 사랑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장면은 몇몇 젊은 시청자들로부터 "소나기 찍나?"는 볼멘 소리도 섞어 나오기도 하였죠.
7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20~30대 젊은 시청자에게,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라면서 이해와 동감을 받아들이게하는 데 실패한 느낌도 지울 수 없어요. 얼마든지 이메일을 넘어 네이트온, 카카오톡을 통해 멀리 떨어져있는 상대하고도 연락할 수 있는 지금의 청춘들에게 병에 걸려 미국에 떠나기 때문에 너무나도 좋아해서 미칠 지경인 상대에게 애써 싫은 척하면서 떼어낸다는 것은 어린 시절 엄마 어깨너머로 몰래 본 드라마에서 숱하게 많이 본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죠.
그러나 다행 중의 다행이라면, <사랑비>는 젊은 시청자들이 진부하고 답답하게만 느낄 수 있는 쌍팔년대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32년을 훌쩍 지나 오늘날 2012년대의 사랑을 논하는 드라마라는 거에요. 그 당시 유행하던 머리라고 하나 현재로서는 너무나도 낯설고 촌스럽기만한(?) 덥수룩한 장발머리에서 전 아시아를 들썩이게한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근석짱이 등장하는 순간, 드디어 우리들에게 익숙한 감정이 드러날 것 같은 약간의 기대감이 몰려든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서인하가 그랬듯이, 아들내미 서준 역시 김윤희의 딸 정하나를 보고 3초만에 반했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운명이구나."는 일깨워주면서도, 운명을 빙자한 억지론 같은 느낌도 지울 수는 없는 듯 합니다.
뭐 32년 전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 자식대에서야 이뤄지는 스토리. 이 역시나 어디서 많이 본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비>가 더 기대되는 것은 단순히 자식들의 사랑이야기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32년만의 재회한 서인하와 김윤희의 다시 활활 불타오르는 중년의 사랑을 논한다는 거지요. 그 역시나 요즘 막장 드라마의 새로운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SBS <내딸 꽃님이>에서 박상원과 조민수가 어머님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있긴 하지요.
허나 막장이 아닌 순수를 표방하는 <사랑비>는 눈쌀 찌푸리는 요소없이 보기만해도 아름답고 보는 이들의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면서도 사랑을 두고 부모와 자식이 갈등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무리없이 소화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일으킨다는 점이 향후 <사랑비>가 그간 부진을 딛고 요근래 보기 힘든 정통 멜로 드라마로 발돋움할 수 있는 키포인트가 될 부분도 없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중년의 서인하와 김윤희를 연기하는 정진영과 이미숙이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인터라 한층 더 무르익는 중년의 사랑으로 극 자체의 퀄리티를 올릴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도 들기도 하구요.
이제 <사랑비>는 진부와 순수의 지루한 논쟁만 일으켰던 70년대를 넘어 우리가 살고있는 2012년의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뒤늦게 32년 전의 감정을 재확인하고자하는 연인과 서로 첫눈에 반해 막 사랑을 시작하는 자식들의 뒤엉키면서도 안타까움을 부르는 순수한 러브 스토리. 분명 2012년으로 넘어가면 칙칙함을 넘어 극의 속도나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라면서 목에 힘주는 제작진들의 당부처럼 2012년에 내리는 사랑비는 70년대의 <사랑비>와는 달리 중년들뿐만 아니라 2012년을 살아가는 청춘들도 공감이 가는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2년 사랑비도 장근석과 윤아가 가진 발랄함, 정진영과 이미숙이라는 감성 표현이 훌륭한 배우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채 쌍팔년도식 진부함을 답습한다면 그 땐 정말 대책이 없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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