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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아빠 어디가. 아이들의 순수함이 필요한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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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문라이즈 킹덤>을 보면 아이가 어른이고, 어른이 아이인지 도통 구분이 안된다. 할리우드의 전형적 마초 브루스 윌리스, 싸이코패스 악역이 인상적이었던 에드워드 노튼이 어딘가 덜 떨어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것은 둘째치고, 어른이라는 이름하에 온갖 모순덩어리에 갇혀있던 나이많은 아이들에게 큰 깨달음을 일깨워준 것은 나이 어린 어른들이다. 


현재 예상치 못한 호평 행진을 이어가는 MBC <일밤-아빠 어디가>가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구축하는 세계관은 그런 점에서 영화 <문라이즈 킹덤>과 많이 닮았다. <문라이즈 킹덤>에서 그랬듯이, <아빠 어디가>에서 등장하는 어른들은 기존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엄하면서도 자기들의 방식대로 자식들을 밀어붙이는 '가부장적 아버지'가 아닌,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세계관을 지켜주고자했던 카키 스카우트의 대장 랜디 워드(에드워드 노튼 분)과 닮았다.


<문라이즈 킹덤>에서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를 떠났던 남녀 주인공처럼, <아빠 어디가>의 윤민수 아들 후는 송종국 딸 지아를 좋아한다. 아직 일곱살에 불과한 후의 사랑법이 달고 닿은 어른들처럼, "지아씨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식의 음흉한 흑심은 전혀 보이지 않으나, 지난 3일 방영분에서도 아빠 윤민수를 뒤로 하고 지아 아빠 송종국을 지아 아버님이라 부르며 애정어린 응원까지 보내는 후는 지아를 좋아하고 현재 후의 머릿 속에는 온통 지아 생각뿐이다. 





이미 첫 사랑도 있었고, 사랑의 아픔이 몇 번 있었던 어른들이 봤을 때 이제 사랑에 눈 뜨기 시작했다는 후의 지아앓이는 그저 귀여울 뿐이다. 그건 각각 후와 지아의 부모되시는 윤민수, 송종국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후의 관점에서 봤을 때, 후의 지아를 향한 마음은 진심이고, 그러기 때문에 지아를 껴앉는 등 애정표현에도 적극적이다. 아직까지 지아가 후가 지아를 좋아하는만큼, 후를 좋아하는지 그녀의 의중을 파악할 길은 없지만, 만약 나이가 좀 더 든 상황에서 지아가 후가 아닌 민국이나 준, 준수를 더 좋아한다면 그녀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낭패(?)일 순 없다. 하지만 다행이도 지아 또한 후가 싫지 않은 눈치다. 


만약에 후가 어른이 되어서 자신을 좋아하는 지 확실치 않은 지아에게 거듭된 애정 고백을 한다면 그것은 귀여움이 아닌 '민폐 행위'에 가깝다. 만약 지아가 후를 좋아한다면 모를까, 아무리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만, 마음에 두는 상대는 따로 있는데,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도 여자 입장에서는 심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다행이도 아직 일곱살에 불과한 후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쉽게 드러내기 어렵다는 애정 표현에서 자유스럽다. 게다가 후는 이미 수많은 이모, 삼촌들을 단박에 사로잡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거기에다가 요즘 일곱살 답지 않게 예의도 바르고 심성도 곱다. 도대체 누가 이런 후를 거부할 자 누가 있겠는가. 


후가 구김살 없이 귀엽게 잘 자란 아이의 표본이라면, 초등학생인 김성주 아들 민국이는 어른들 기준에 뭐가 더 좋고 나쁜지 기준을 어렴풋이 아는 아이다. 그래서 하필이면 3번 연속으로 다른 동생들보다 안좋은 집에 걸린 민국이는 눈물을 뚝뚝 흘릴 수 밖에 없다. 만약 어린 동생들처럼 민국이도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라면 재래식 화장실있고, 남들보다 더 작은 텐트에 걸려도 바빠서 함께 지내기 어려운 아빠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동생들보다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접한 민국이는 남들과 똑같이 열악한 환경도 아니요, 자기만 더 열악한 환경에서 무려 3번 연속 지내야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실 이런 경우 아홉살인 민국이뿐만 아니라 그보다 나이 더 먹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른들은 연이어 자기에게만 불이익이 떨어져도 속은 활화산이 대폭발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참아야한다. 만약 거기서 민국이처럼 울거나 화를 내면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거다. 어떤 이는 엄청난 분노를 뿜어내어 자신에게만 부당한 조건을 바꾸거나, 혹은 자신이 가진 권위, 돈 등 편법을 써서 남들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게 바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한창 어린 민국이는 그저 눈물로 자신의 속상함을 비출뿐, 다른 동생들과 집을 바꿔달라 떼쓰지 않는다. 하긴 지난 주 꿀단지를 둘러싼 몰래카메라에서도 성동일 아저씨와의 약속을 지킨다면서, 자기가 혼나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꿀단지를 깨트린 아저씨 이름을 대지 않았던 속깊은 민국이 아니던가. 


다른 아빠들에 비해 비교적 엄한 편이었던 아빠와 거리감이 있었던 준은, 이번 <아빠 어디가>로 한층 자상한 아빠로 변신한 아빠와 덩달아 이모들을 살살 녹이는 살인미소도 늘어나는 추세다. 거기에다가 성동일 아들 준은 어른 못지 않게 사려깊고, 배려심 많고, 의젓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준이가 몸만 큰 애어른들보다 훨 낫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가장 개구지고, 가장 아이답다는(?) 이종혁 아들 준수, 여리여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당찬 여장부 모습을 보여주는 송종국 딸 지아도 어떤 면에서는 세상의 찌든 때만 잔뜩 낀 어른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다가 <아빠 어디가> 아이들은,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예를 들어, "요즘 아이들은 버릇없고 자기밖에 몰라."에서 한창 거리감이 멀다. 그러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원하는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어른들 알기를 깎듯이 알고, 공손하고 남을 생각하는 이타심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한동안 일요일 MBC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어른들이 너도나도 TV 앞에 모이기 마련이다. 


어른들이 <아빠 어디가> 포함, SBS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 얼마전 종영한 M.net <보이스 코리아 키즈> 등 각종 아이들이 메인인 프로그램을 찾는 것은, TV 속 아이들을 통해 오래전에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되찾으려는 의도가 크다.  그렇게 tv 속 아이들을 애타게 찾는 어른들은 그러면서, 유명한 부모와 함께 tv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아이들이 부모의 현명한 판단 하에 때가 묻지 않고 아이답게 잘 자라주길 간절히 원한다. 그것은 이미 순수의 세계가 박살나버리는 과정에서 이미 뭐가 좋고 나쁜지를 아는 먼저 산 어른들이 노파심에서 가지는 충고다. 때문에 tv 속 순수한 아이들을 좋아하는 어른들은 단순 tv에 나오는 차원을 넘어 인기 아역스타로 등극하여 엄청난 상업적 행보를 보이는 아이에게 자동적으로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것은 오지랖이 아니라, 비록 나의 순수함은 깨졌지만, 그래도 자라라는 아이들의 순수함은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일종의 '피터팬' 스러운 자세다. 





하지만 반대로....유독 서른즈음에 다되어 어른들이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꽉꽉 채워, 옛날같으면 벌써 애 둘을 낳고도 남았을 나이라서 그런지 예전과 다르게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엄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글쓴이는...그럼 과연 어른다운지 반문해본다. 나는 만약 민국이처럼 3번 연속 남들보다 안좋은 집에 걸렸을 때, 그래도 나의 희생으로 남들이 편안해질 수 있어 다행이야 식으로 웃으며 넘어가는 어른다움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내것이 안된다면 뺏어서라도 가져와 식의 논리가 위너로 등극시키고 남들도 다 해야하는 일 어떻게든 빠지는 것이 능력자로 군림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도대체 누가 어른이고 아이인지 구분도 안되는 시대. 우리 어른들보다 더 순수하면서, 그러면서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각광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아직까지 어른스럽지 못한 나이만 먹은 애어른이라 그런지 요즘 <아빠 어디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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