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의원 서거 2주기를 맞아 TBS와 노회찬 재단이 오는 23일 (목) 저녁 8시 6분부터 100분간 추모 공개방송 <노회찬을 다시 만나다>를 TBS TV와 라디오 유튜브를 통해 생방송한다. 

 

 

이번 <노회찬을 다시 만나다> 추모 방송에서는 노회찬 의원 서거 2주기를 맞아 제작된 추모 헌정 앨범 <새벽 첫차 6411>의 주요 수록곡들을 가수 새실, 조준, 정마리가 라이브공연으로 선사한다. 방송인 김미화 씨와 주진우 기자가 진행을 맡았다. 

노회찬 전 의원 헌정 앨범인 <새벽 첫차 6411>는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만든 작곡가 김현성 씨가 시인 정호승, 김수영, 도종환, 정희성, 임의진 등의 시에 곡을 붙여 제작됐다. ‘반가워요’ ‘새벽 첫차’ 등 고인의 삶을 기린 노래를 포함해 시인 서정주의 시 '소연가'(小戀歌)에 노회찬 전 의원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곡을 붙인 노래 ‘소연가(석남꽃)’도 수록되어 있다. 

한편 이날 추모 공개방송에는 우리 사회 약자와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펼쳐 온 노회찬 전 의원 뜻을 기려 여성 돌봄노동자, 봉제노동자, 청소노동자 등  '6411 노동자' 30명이 초대된다. 

 

TBS 측은 “총 100석 규모의 공개홀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최소한의 인원을 초대해 추모 공개방송을 진행하게 됐다”면서 “사전에 선발된 노회찬 재단 회원 32명의 관객들도 온라인 접속을 통해 생방송으로 실시간 참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노회찬 의원 서거 2주기 추모 공개방송 <노회찬을 다시 만나다>는 23일(목) 저녁 8시 6분부터 100분간, TBS TV와 TBS FM 95.1Mhz, 유튜브 채널 ‘TBS 시민의방송’을 통해 동시 생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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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mokeham.tistory.com BlogIcon 연기햄 2020.07.31 1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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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방영한 SBS <SBS 스페셜-선미네 비디오가게>(이하 <선미네 비디오가게>)의 첫번째 게스트는 여성 방송인으로서 33년을 꿋꿋이 버텨온 박미선 이었다. 

 

 

‘감탄고토’라는 말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쓰고 버리고가 일상인 방송국 세계에서 아득바득 살아남은 여성 방송인.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지 모르겠지만, 박미선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데뷔 때부터 주목받은 박미선은 당대 주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남성 중심적 사회를 향한 일갈을 가했고, "여자가 감히?"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1980년대 말 시대 분위기와 비추어볼 때, 여러모로 돋보일 수밖에 없는 존재 였다. 

 

“그건 말이죠. 여자를 무시하는 데서 시작한 선입견이라고요. 여자라고 왜 순발력이 떨어지고 왜 운동신경이 떨어집니까? 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신인시절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운동신경이 떨어진다.”는 남성 진행자의 성차별적인 발언에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통쾌한 복수를 성공한 박미선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할 말은 꼭 하는 '별난 여자' 였다. 

 

물론 박미선의 방송 인생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별난 여자 박미선에게도 당대 여성에게 줄기차게 강요되어왔던 결혼, 출산, 육아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90년대 초 여성 개그우먼으로 주목받았던 박미선에게 쏟아지는 질문은 향후 방송인으로서 미래, 비전이 아닌 결혼 계획이었고, 동료 개그맨 이봉원과의 결혼 이후 박미선에게 요구된 대답 또한 여성으로서 가정에 충실 하는 삶이었다. 

 


결혼 초기만 해도 기혼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은퇴라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을 급격히 줄었던 박미선은 어느순간 살아남기 위해 어떤 역할이던 가리지 않는 캐릭터가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박미선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어디가도 잘 붙는 '젖은 낙엽'처럼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박미선은 어느덧 굳건히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후배 여성들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는 존재가 되었고, 이제야 비로소 자기가 원하는대로 판을 깔 수 있고 마음껏 놀 수 있는 자신만의 채널 ‘미선 임파서블’을 꾸리며 진정한 전성기를 맞기 시작했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이 아닐까?” 

 

어떻게 버티며 살아갈 것이라는 질문에 이미 그렇게 잘 살아온 선배로서 박미선은 "천천히, 천천히 버틸 것"을 강하게 주문한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 누구보다 가장 노력했던 박미선. 아무리 숱한 위기가 찾아와도 천천히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잘 버틸 박미선처럼,  그녀의 뒤를 잇는 또다른 별난 여자들이 함께 오래오래 버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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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극성맞게 (민주화투쟁에 참여했다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은 있더라고. 위험한데 그렇게 다니는 네가 정상은 아니지 않느냐. 여자가 총 쏘고 시체들 널려있고 난리 통에 나가서 그리고 끝까지 그러고 다녔다는 게…” (5.18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여성 시민군 박미숙 씨) 

 

 

지난 17일 방영한 SBS 스페셜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시민군들의 활약을 조명하는 ’그녀의 이름은’을 방영해 눈길을 끌었다. 

5.18 당시 남성 시민군들과 함께 항쟁의 최전선에서 목숨걸고 싸웠지만, 어느순간 잊혀져 버린 여성 시민군의 이름들. 5.18 당시 만 16살의 나이에 시민군에 참여했던 박미숙 씨는 자신과 함께 붙잡힌 여성 시민군들 대부분이 남성 시민군과 다르게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했다고 토로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여를 만류하던 남성 시민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기탈취 시위대에 가담했던 남민아 씨 또한 투쟁에 참여했던 과거를 숨길 수밖에 없는 아픈 경험을 고백한다. 

 

 

“크게 다친 저를 보자마자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너 시집 못 가겠다.” 딱 그러시는 거예요. 엄마가 미웠어요. 왜 너는 왈패같이 그렇게 사내애처럼 나다니느냐. 나다니다가 네가 잘못해서 맞았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때 엄마 말씀하신 것이 뼈에 박혔어요. 진짜로, 진짜 박혔어요.” 

 

5.18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오랫동안 가려져있었던 여성 시민군들의 역사. 물론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5.18을 폄하, 왜곡하는 움직임이 상당한 만큼,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복원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5.18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쉽게 고백할 수 없었던 분위기와 맞물려 여성은 사회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 안되는 편견에도 맞서야 했던 부담이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더욱 위축 시켰던 것은 아닐까. 

 

 

이 날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들었던 장면은 1989년 5.18 청문회 당시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 청문회의 증인으로 등장한 홍금숙 씨에게 공개적으로 언어 성폭력을 가했던 유수호 당시 민정당 의원의 만행이었다. 

“증인 결혼했습니까? (중략) 앞으로 결혼할 생각은? (중략) 기왕 결혼 하려면 경상도 남자와 좀 결혼을 해서 이 쓰라린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증인이 그런 역사적인 사명. 그런 씨앗을 한 번 심어줄 용의는 없는가?” 

 

놀랍게도 이건 실제 일어난 일이었고, 그렇게 5.18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그녀들의 활동을 제대로 인정하고 존중하지 못했던 현실에 더욱 고립 되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5.18에 참여했던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거론하며 그녀의 이름을 찾아주고자 하는 <SBS 스페셜-그녀의 이름은>이 가진 의의는 상당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각인하고 그녀들을 중심으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평가하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80년 5월 광주에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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