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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가족의 나라. 양영희 감독의 슬픈 가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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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그리고 지난 3월 7일 개봉한 <가족의 나라>까지. 양영희 감독 영화에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에 있기에 쉽게 만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가 있었다. 





양영희 감독은 조총련계 재일교포 출신이다. 조총련 사회에서 간부였고, 북한 체제에 대해 신념이 강했던 양 감독의 아버지는 1971년 세 아들을 모두 북한에 보냈다. 그 당시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은 '지상낙원'으로 소개되었고, 일본에서의 재일교포 차별과 극심한 생활고에 힘들어하던 수많은 교포들은 부푼 희망을 안고 북한행 선박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북한으로 송환된 재일교포들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단 며칠간 자유로이 일본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일본에 남은 가족들이 북한에 보낸 가족들을 보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직접 평양에 가는 것이 전부다. 가끔 북송된 재일 조선인이 통원치료 차원에서 감시원을 대동한 채 어렵게 일본에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영화 <가족의 나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25년만에 북한에서 일본으로 잠시 들어온 남자와 그의 가족 이야기다. 

북한에 세 아들을 보내고, 돌아가실 때까지  북한 체제에 순응했던 부모님과 달리, 조총련계 교육을 받으면서도, 자유로운 일본 문화를 벗하고 자란 양영희 감독은 일찍이 북한 체제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평생을 북조선에 몸바친 부모님의 헌신과 달리, 억압된 공간에 갇혀 쉽게 만날 수도, 자유로이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오빠들의 존재는 조선인도 그렇다고 재일 한국인, 일본인도 아닌 양영희 감독의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여섯살 때 겨우 사춘기 소년들에 불과한 오빠들을 북한에 떠나보내야했던 양영희 감독은 자신이 겪은 특별한 비극을 카메라로 담으며, 지난 1959년부터 20년간 진행되었던 '북송사업'에 대해서 널리 알리고자 한다. 양영희 감독의 첫 번째 극영화 <가족의 나라>의 리애(안도 사쿠라 분)와 25년만에 북한에서 잠시 돌아온 오빠 상호(이우라 아리타 분)과 가족들은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에 등장했던 양 감독 가족의 분신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꼭 닮아 있다. 




부모님과 가족이 믿는 북한 체제에 깊은 회의감이 있으면서도 비교적 객관적으로 아버지의 굳은 정치적 신념과 북한에서 평생 살아야하는 오빠들을 담아낸 전작에 비해, <가족의 나라>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과 오빠를 떨어트려놓은 아픔에 극렬히 분노하는 리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아 있다. 그토록 보고 싶었고  오랜만에 해후한 가족임에도 불구,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북한주민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듯이 유독 <가족의 나라>는 속으로 삭이고 머뭇거리는 장면도 더러 보인다. 




지상의 낙원이라고 해놓고서 영양실조에 뇌종양에 걸려도 제대로된 치료조차 받을 수 없는 오빠. 그럼에도 여전히 북한을 조국이라 부르며, 그 나라에 깊은 충성을 보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 아들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어 가슴만 치는 어머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비극의 굴레 앞에서 리애는 오빠를 감시하러온 감시관(양익준 분)에게 외친다. 

"당신도, 당신의 나라도 싫다."

하지만 감시관이 말하기 전에 리애는 안다. 그 나라에서 사랑하는 자신의 오빠가 평생 살아야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말이다. 귀환하라는 명령 하나에 군말없이 따라야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오빠. 그 누구도 대신도 할 수 없고, 만약에 북한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가정조차도 사치인 현실. 생각 자체를 완전히 정지한 채, 자신에게 정해진 숙명을 덤덤히 걸어가는 오빠는 리애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넌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영화 속 오빠의 바람대로 실제로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한국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여성감독 양영희는, 용감하게 카메라를 들며 자신의 상처많은 가족사를 다시 한번 꺼내든다. 2006년 <디어평양> 개봉 이후, 평양 입국이 금지되어 한동안 오빠들을 볼 수 없게된 양영희 감독은 그럼에도 자신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추어내며 '북송사업'의 후유증과 아픔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자 한다.



 
평양에 있는 오빠들과 자신이 만든 영화를 함께 볼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스스로 공식 문제아를 자임하는 양영희 감독.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에 이어 <가족의 나라>까지. 자신과 가족이 얽힌 슬픈 이야기를 통해 본인은 물론 세월의 소용돌이에 가족과 생이별해야했던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양영희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그랬듯이 묵직한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싶게 한다. 

한 줄 평: 떠나야 하는 자. 보내야하는 자들의 극렬한 슬픔. 극영화에도 재능있는 공식 문제아 양영희 감독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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