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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우는 남자. 원빈 아저씨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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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전야개봉한 <우는 남자>는 이정범 감독의 전작 <아저씨>와 여러모로 기시감이 느껴지는 영화다. 





능력치를 따지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히어로 못지 않은 두 영화의 주인공이 세상과 거리를 두고 폐인처럼 지내게된 것은 일종의 죄책감이다. 그런데 <아저씨>의 차태식(원빈 분)이 가진 죄책감이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통한의 눈물이었다면 <우는 남자>에서 곤(장동건 분)이 실수로 죽인 소녀는 그날 처음 본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그동안 사람 죽이는 일을 밥 먹듯이 해왔음에도 불구, 너무나도 어린 소녀를 죽였던 탓인지 곤은 그 날 이후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조직의 부름에 의해 소녀의 어머니 최모경(김민희 분)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은 곤은 일생일대 최대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저씨>에서 태식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소녀 정소미(김새론 분)은 세상을 등진채 어둠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태식의 유일한 말동무이자 친구였다. 그런데 <우는 남자>에서 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까지 지키고자했던 최모경은 곤이 실수로 죽였던 소녀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제외하곤 그녀를 살려줄 명확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는 남자>는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곤의 상처를 딸을 잃은 최모경의 모성애와 연관시켜, 곤이 최모경을 지키고자하는 나름의 설득력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직업이 킬러인 남자가 자신이 실수로 죽인 소녀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조직, 동료에게까지 총을 겨누는 설정은 조금 억지스럽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런데 곤이 오래전부터 킬러라는 직업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고, 소녀의 죽음이 그가 느낀 길고 긴 염증에 방아쇠를 당긴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곤은 조직 내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차오즈(브라이언 티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좀 쉬고 싶다고. 


어쩌면 곤이 자신의 목숨을 내걸면서까지 모경을 지키고자 한 것은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아저씨>에서 태식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소녀를 위해 잔혹한 범죄 집단과 맞서싸웠지만, <우는 남자>의 곤은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한 때 자신의 친구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더 슬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그저 소녀를 죽인 죄책감과 궁핍한 모성애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도와주는 순진한(?) 곤 이외에 최모경을 위험에서 지켜주는 인물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잔혹한 액션영화를 통해 추악한 자본주의와 인간의 잔인한 면모를 날카롭게 도려내는 이정범의 연출력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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