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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그들이 죽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청춘 영화의 새로운 흐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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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연이어 공개된, 백재호 감독의 <그들은 죽었다>는 자기 연민 혹은 자학에 빠졌던 기존의 청춘 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을 가진 영화였다. (2014/12/04 - [영화전망대] - 그들이 죽었다. 배우 출신 감독이 그리는 새로운 청춘 영화 )


우리가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삶이 힘들어진 것이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결연한 각오가 담겨있기에, 얼핏 보면, 현 지도층들이 극찬할 법한 청년상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죽었다>는 현 사회에서 벌어지는 청년 관련 문제들이 청년 개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환하지 않으며, 무조건 열심히 살자고 주장하는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죽었다>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현실에 예민하고 반응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에 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자하는 영화다. 


<그들이 죽었다>의 주인공 상석(김상석 분)은 무명 배우다. 배우로서 활동하고 싶어도, 캐스팅이 되지 않는 현실을 비관 하던 상석은 그와 비슷한 처지인 재호(백재호 분), 태희(김태희 분)과 함께 자신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연기만 해왔던 그들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막연한 꿈만 있었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뒤따르지 못했다. 





상석, 재호, 태희 모두 배우로서 기반을 잡지 못한 자신들의 문제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영화 제작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계획한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영화 제작을 통해 일종의 탈출구를 마련하겠다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도, 자신들이 직업 배우로 입지를 굳히지 못한 이유를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배우로 성공하고 싶고,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은 꿈은 있었지만, 왜 자신들이 연기를 해야하고, 영화를 만들어야하는 고민은 없었다. 배우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절박함은 있지만, 배우로 선택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문제 진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풀리는 이유를 모르니까, 매일 똑같은 악순환만 반복되는, 그것이 그들을 둘러싼 진짜 문제이다. 





여기까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뇌와 애환을 그려내는 전형적인 청춘영화에 가깝다. 그런데 백재호 감독의 <그들이 죽었다>가 기존의 청춘영화들과 다른 지점을 보이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들이 죽었다>는 열심히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탓하는 영화도 아니요, 그렇다고 오늘날을 살고있는 청춘들이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고통을 정당화시키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노력해도 안되니까, 자포자기식 무기력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죽었다>는 영화 속 상석과 달리 눈 앞에 뻔히 보이는 문제를 피하거나 좌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죽었다>는 자신의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들이 죽었다>가 상석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영화’다. 영화배우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만 있지, 정작 영화인으로서 가져야할 고민은 인지하지 못했던 상석의 반복된 실수를 솔직하게 털어낸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기 중심의 소우주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불행히도, <그들이 죽었다>가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 되었던 2014년보다, 2015년 청춘들이 처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그 사이 ‘헬조선’, ‘수저계급론’ 등의 현 사회를 빗댄 자조적인 유행어들이 우르르 만들어졌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시각 혹은 도피성 판타지만 으로는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이 처한 현 상황을 명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 몸소 실천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죽었다>는 겉핥기 식으로 청년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감독 자신의 문제로 내재화하여 2010년대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실을 그리고자 한다. 어설픈 위로나 채찍질을 행하는 대신, 현재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타인의 문제,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문제로 환원시킨다. 


영화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카메라로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관한 감독 개인의 절절한 고민과 이를 해결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진 인상깊은 데뷔작이다. 12월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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