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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위켄즈. 노래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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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을 겪고, 문득 나를 괴롭히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찾아 헤맨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찾아낸 고통의 원인 중 하나는 ‘분리’였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관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배척해야할 존재이자 계몽의 대상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이 있다면, 눈치껏 피하거나 모른 척 넘어가는데 꼭 어떤 이들은 자신과 다른 그들을 사탄으로 규정하며 그들을 바로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 도가 지나치면 차별이 되고, 폭력으로 비화되어 온갖 고통을 초래한다. 분리 혹은 분별이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깨달은 이후에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피하는 습성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분리의 굴레에서 벗어나니 한결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신의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분리, 분별의 시선의 위험성을 깨달은 뒤 나를 벗어나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눈을 돌려봤다. 예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그동안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수많은 혐오와 차별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그 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 차별과 혐오가 존재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는 했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예사롭지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외국인 노동자 혐오 등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깊게 뿌리박힌 혐오는 단연 ‘동성애 혐오’다. 무조건적으로 성적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과 달리 동성애를 이해한다고는 하더라도 내 가족과 친구는 LGBT(성적소수자)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이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동성애를 바라보는 평균적이고 솔직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 




이동하 감독의 <위켄즈>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버젓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게이 코러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 게이코러스 ‘G_Voive(이하 지보이스)’의 구성원들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 게이들로 구성된 지보이스는 각자 직업도 다르고 성격도, 취향도 천차만별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1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합창단을 이끌어온 만큼, 구성원들 사이에 크고 작은 이견도 있었고, 그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보이스는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고, 지금은 LGBT를 넘어 인권운동계의 아이돌로 불리며 그들의 노래가 필요한 연대의 현장에서 맹활약 중이다. 


지보이스에서 활동하는 몇몇 단원들의 사적 이야기와 그들이 펼치는 노래와 공연이 절묘하게 섞이는 영화는 흡사 한 편의 뮤지컬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곳곳에 흥겨운 멜로디가 섞이다보니 <위켄즈>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정서는 밝고 경쾌하다. 지보이스 멤버들의 일상과 사랑이야기를 시작으로 서서히 이야기의 범주를 넓혀가는 전개 방식도 흥미롭다. 세상 모든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지보이스 멤버들은 이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만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비난과 멸시를 감내하거나, 그런 시선이 두려워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면서 살아온 그들이지만, 지난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당시 있었던 동성애 혐오론자의 인분투척 사건은 지보이스 단원들에게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이겨내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히어로들처럼 단원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혐오를 훌훌 털어버리고 지보이스 활동을 이어나간다. 자신과 같은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과의 친목 도모 혹은 게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지보이스에 가입했던 멤버들이 LGBT 행사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문화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농성 현장,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 문화제 등 사회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지보이스는 게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면서 동시에 성소수자들을 위한 연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인권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지보이스는 멤버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LGBT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에도 공감하기 시작한다. 함께 해서 더욱 강해진 사람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공격에 시달려왔던 지보이스 단원들이 성소수자 인권 확대 운동 외에도 또다른 혐오와 차별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유독 벅찬 감동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전히 동성애를 막연히 혐오하고 차별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만큼, 지보이스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픔을 노래로 함께 위로하고자하는 지보이스는 언제나 꿋꿋이 자신들의 길을 갈 것이다. 차별과 혐오에 용기있는 노래로 맞서는 지보이스의 행보를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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