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베를린 은곰상 '운디네'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감상 포인트는?

반응형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일수록 이야기의 바탕을 이루는 모티프와 배경지식에 대한 이해가 필수일 때가 많다. 올해 11월에 개봉한 캐나다 이민자의 현실을 그린 영화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와 소포클레스의 비극으로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의 딸 ‘안티고네’ 이야기를 모티프로 해서 만들어졌고, 내년 1월 개봉을 앞둔 북유럽 로맨스 영화 <블라인드>도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런 영화 속 모티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영화를 표면적으로만 감상하기 쉽다. 더구나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운디네>의 크리스티안 페촐트(펫졸드) 감독은 문학, 예술, 사회, 역사, 정치의 영역을 넘나들며 영화를 매우 다층적으로 구성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여자 연기상에 빛나는 걸작 <운디네>의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알아두면 좋을 핵심 포인트를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

 

#인어공주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면? 영화의 모티프가 된 ‘운디네’ 이야기

<운디네>는 운명이라 여겼던 남자로부터 실연당한 여인 운디네(파울라 비어 분) 앞에 다른 남자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 분)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사랑과 운명에 관한 드라마로 독일 ‘운디네’ 설화에 기반하고 있다. 운디네는 본디 물의 정령으로 인간 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면 영혼을 얻어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배신하면 그를 죽이고 다시 물로 돌아가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지녔다. 

 

 

운디네 설화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기에 여러 문학과 예술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푸케의 중편 소설 “운디네”가 있다. 특히 독일 전후 작가로 유명한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운디네가 간다”(<삼십세>에 수록, 문예출판사)는 영화 <운디네>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운디네>를 연출한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바흐만 작품에서 남성 판타지인 운디네 설화를 남자주인공이 아닌 운디네가 직접 이야기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바흐만의 소설 속에서 배신은 남자들이 저지른다. 여성의 관점에서 이 저주를 끊는 것이 올바른 내러티브 방식이라 보았다”라며 여성의 관점을 강조했다. 영화 <운디네>에서 운디네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죽이고 물로 돌아오라는 운명의 부름을 받는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 앞에 새로운 사랑이 나타난다. 과연 그녀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것이 <운디네>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베를린. 동화의 세계를 파괴하는 ‘초’현대의 물결

운디네 설화와 함께 알아두면 좋을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1989년까지 동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의 역사이다. 베를린의 도시 개발 역사는 영화 속 박물관 투어 가이드로 일하는 운디네의 입을 통해 여러 번 언급된다. 

 

 

페촐트 감독은 통일 이후 무분별한 도시 개발을 비판하며 베를린을 “자신의 역사를 계속 지워나가는 도시”로 규정한 바 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장벽은 빠르게 뜯겨져 나갔고 그 자리에 거대한 기차역과 번쩍이는 쇼핑몰이 “흉물스럽게” 들어섰다. 베를린의 과거는 신화와 동화가 살아 숨쉬는 세계였지만 지금의 베를린은 과거를 무자비하게 지워버리는 공간으로 쉽게 옛 사랑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현대적 욕망과도 오버랩 된다. 따라서 동화의 세계에서 온 운디네가 현대의 베를린에서 버림받는 것은 숙명과도 같다. 그녀는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가? 이것이 <운디네>의 영화적 긴장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아름답고 슬픈 로맨스이면서 동시에 동화적 상상력으로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영화 <운디네>는 12월 24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