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다. 배우였던 남자는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첫 장편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고, (공식적으로) 처음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섹션 초청되었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 이듬해 12월 10일 극장 개봉에도 성공을 거둔다. 독립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VIP 시사회를 가지기도 했지만, 애초 그 남자의 영화에 할당된 상영관은 지극히 적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찾았고, 자신의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과 일일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관객을 만나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던 그의 발걸음은 영화가 공식적으로 종영한 지난 1일에서야 끝을 맺었다. 관객 수 총 2,364명. 아쉬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야 마음 놓고 자신의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그 남자, 감독 백재호. 그의 첫 영화인 <그들이 죽었다> 그리고 상영 이후 영화를 둘러싼 뒷 이야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기자: <그들이 죽었다> 하면, 이 영화가 세상의 빛을 보게하는데 큰 도움을 준 부산국제영화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특히나, 처음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 수많은 영화인들의 꿈인 부산국제영화제, 그것도 ‘뉴커런츠’ 섹션에 초청 되었잖아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백재호 감독(이하 백 감독): 저도 <그들이 죽었다>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그것도 ‘뉴커런츠’에 초청받은 게 신기하고 믿기지 않아서, 영화제에서 영화 상영 전, 남동철 프로그래머와 식사를 할 때,남 프로그래머에게 다짜고짜 물어봤어요. “왜 내 작품을 뽑았나구요?” 그랬더니, 남 프로그래머가 저한테 이러더군요. 예상 가능한 범주를 빗나가는 전개가 좋았다구요. 이 말은 지난 1일 있었던 <그들이 죽었다> 마지막 GV(관객과의 대화)에도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들이 죽었다>가 영화제 초청받을 것이라고 아예 생각조차 안했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를 출품 했을 때도, 그 때 (부산국제영화제)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는데, 빈 사무실의 책상 위에 영화가 담긴 DVD를 올려 놓으면서도, ‘설마 이 영화가 부산에 가겠어.’ 이 생각 뿐이었어요. 만약 진짜 부산에 초청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면, 극 중 상석이 혼자 부산국제영화제 가서 들린 모텔에서 티켓 다방 여성을 앞에 두고 “내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해.”라는 식의 허세 부리는 장면이 들어가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뉴커런츠’에 초청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한 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혹시 누군가가 장난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기자: 그래도 상상으로만 그친 영화와는 달리, 진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감독 포함 주연배우 모두 극 중 상석의 소원인 레드 카펫도 밟고, 개봉도 하고, 관객들도 영화 보러 오고.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전 <그들이 죽었다>가 관객 만 명(독립 영화에서 관객 만 명은 흥행의 상징적인 숫자로 통용된다)을 넘을 줄 알았어요.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에 초청되었고,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VIP 시사회도 했었고, 관객과의 대화도 많이 했고, SNS 상에서 보여지는 영화의 호응도도 좋았거든요. 하지만 해외 유명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않거나, 그렇다고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지 않은 독립 영화가 넘어야할 현실의 벽은 높더군요. 


백 감독: 우선, 제가 만나본 관객들이 보여준 <그들이 죽었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어요. 좋게 보시는 분은 좋게 보시고, 반면 포스터만 보고, 발랄한 청춘영화를 기대하고 보신 분들은 적잖이 당황하시고. 일단 저는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김상석,김태희)과 함께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래도 다른 영화 대신 <그들이 죽었다>를 보러 와주신 관객들 한 분 한 분이 고마웠어요. 그래서 전 제 영화에 대한 쓴소리, 제가 미처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어요. 영화는 특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예술 이니까요. 





기자: 그런데, <그들이 죽었다>에 배정된 상영관(전국 18개 상영관, 12/10일 기준) 수도 참 아쉬웠어요. <그들이 죽었다>가 개봉한 작년 12월 10일에는 지금처럼 하나의 특정 영화가 전체 개봉 스크린의 70% 가까이 점유하는 일은 없었지만, <스타워즈:깨어난 포스>,  <히말라야>, <내부자들>, <대호>등 쟁쟁한 영화들이 많았죠.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했구요. 그래서 왜, 하필이면 10일에 개봉날짜를 잡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극 중 지구가 멸망한다는 12월 21일에 맞추기 위해, 일부로 개봉날짜를 그렇게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여러모로 안타까웠어요. 만약 초반 상영관을 많이 잡을 수 있었다면, 이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이 좀 더 많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구요. 


백 감독: 12월 21일 맞추기 위해, 일부로 12월 10일에 개봉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원래는 11월 말에 개봉날짜를 잡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주는 매년 서울독립영화제가 열리죠. 그래서 그 날짜를 피하다보니, 12월 10일로 개봉일을 정한 거예요. 


기자: 개봉 첫 주에는 CGV 아트하우스 전용관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었으나, 상영시간 배정이, 진짜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거나, 평소 독립영화를 챙겨보는 관객이 아니라면, 쉽게 볼 수 없는 시간대에 배치된 것 같았어요.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에서도 <그들이 죽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독립 영화들도 상영해야하다보니,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예정된 상영 시간에 미리 맞춰놔야 하구요. 그런데 이건 <그들이 죽었다>만 겪었던 문제가 아니예요. 지금까지 상영 했던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몸소 겪어야했던 현실이기도 했구요. 


백 감독: 전 멀티플렉스의 독립,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이 오히려 일반 관객들이 독립, 예술영화에 진입하는 데 있어, 또다른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기업이 투자한 상업 영화에 밀려 상영관 잡기 어려운 다양성 영화들에게 그래도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준다는 취지 자체는 좋아요. <그들이 죽었다>도 일정 부분 혜택을 보았 구요. 하지만 다양성 영화로 분류된 영화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일반 스크린에 걸리지 않아요. 


단적인 예로, CGV 아트하우스 전용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의 예고편은 오직 CGV 아트하우스 전용관 스크린에서만 볼 수 있어요. 만약 <검사외전>을 보기 위해 일반 상영관에 들어간 관객들은, 평소 다양성 영화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 <캐롤>, <자객 섭은낭> 같은 영화들이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원래부터 그 상영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만 찾아오고, 그래서 외부에서 봤을 때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비춰지고, 점점 그렇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기자: 우울한 이야기이지만, 지난해 11월 ‘씨네코드 선재’가 문을 닫은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29일 끝으로,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잠시 휴관 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죠. 


백 감독: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의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독립,예술영화 관객 층의 일부가 기존의 극장 관람이 아닌, 다운로드, iptv 등으로 영화관람 형태를 바꾸었다는 것, 그리고 최근 본격적으로 독립영화예술시장에 진출한 멀티 플렉스 와의 경쟁에서 밀린게 가장 크겠지만,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진하는 ‘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 사업’과 관련있어요.(지난해 11월 백재호 감독 포함 독립영화감독 120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지원 사업을 거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고발한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구요.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를 상영한다면 안된다는 시선이 존재하는 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기자: 그래서 대안 배급, 공동체 상영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움직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백 감독: 예전에 서울에 위치한 A극장에서 대안 상영 형식을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어요. 물론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대안적인 상영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필요하다고 봐요.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어떻게든 독립 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그 자체가 중요 하니까요. 





기자: 그나저나 관객과의 대화를 참 많이 하셨어요. 


백 감독: 훗날, '그 때 관객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눴어야했는데' 라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매일 <그들이 죽었다>가 상영하는 극장에 갔어요.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이었죠. 그런데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이화가 감독인 저보다 극장에서 <그들이 죽었다>를 더 많이 본 것 같아요. 바쁜 시간을 쪼개서 매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거든요. 


기자: 사비를 들어 감독님 중,고등학교 후배들에게 <그들이 죽었다>를 보여줬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백 감독: 최근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운영위원이 되었는데, 제가 추진하고 싶은 사업 중 하나가 청소년들에게 독립영화를 보여주는 것이예요. 사실 저도 대학교 때, 우연히 길을 가다가 발견한 극장에서 처음으로 독립, 예술영화를 알게 되었고,  영화를 전공하거나, 그 쪽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기회를 접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제 학교 후배들에게 이런 영화도 있구나하고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실행에 옮겼어요. 물론 그 친구들 대부분이 앞으로도 꾸준히 독립영화를 찾아서 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그 중에서 정말 몇 명은 독립 영화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일단은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과정도 쉽지 않으니 까요.  


기자: 그래서 평소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영화제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백 감독: <그들이 죽었다>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제는 소수 특정 대학 출신의 영화만 초청되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겪은 현실은 달랐어요. <그들이 죽었다>로 처음으로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을 때, 저나 출연 배우들이나 레드 카펫 자체가 처음이다보니, 많은 해프닝이 있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레드카펫 입구에 도착하고, 그 때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던 찰나, 그 때 행사를 총괄하고 있던 김영우 프로그래머가 저희 팀을 보자마자 반갑게 “영화 정말 잘 봤어요.” 인사를 해주시더군요. 그 때 김 프로그래머가 건네 주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반갑고, 감사했는지 몰라요. 아, 진심으로 우리 영화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시는 분이 있구나. 그래서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죠. 아마, 저 뿐만이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수많은 감독님들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거예요. 누군가가 내가 만든 영화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것만큼, 큰 힘이 없지요.





기자: 감독님도,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 지지 인증샷 릴레이에 동참 하시기도 했지만, 전세계 영화인들의 꿈을 응원하는 무대로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고자하는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야, <그들이 죽었다>가 그랬듯이, 또다른 재능있는 신진 감독의 영화가 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으니 까요. 끝으로, <그들이 죽었다> 종영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듣고, 인터뷰를 마칠까해요. 


백 감독: <그들이 죽었다>는 일단 공식적인 극장 상영을 마무리 지었지만, 그래도 저는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고, 독립 영화인으로 꾸준히 활동할 거예요. <그들이 죽었다>도 일반적인 형태의 극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의 상영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날이 조만간 오겠죠. 포기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비록 그들은 죽었지만, 전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너돌양

제 블로그에 몇 번 이상 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제가 영화, 드라마 시사회 포토월 현장 가서 사진 찍어 올리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인의 부탁으로 인해,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지인을 돕기 위해 제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지난 7일 있었던 <그들이 죽었다> 시사회 현장을 찾았죠. 

(2015/12/03 - [영화전망대] - 그들이 죽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청춘 영화의 새로운 흐름 보여주다)



얼마 전 '그들이 죽었다' 측 에게서 받은 대기 명단에는 놀라울 정도로 요즘 가장 핫 한 스타들의 이름도 있었으나 역시 스케줄 관계상 하하하하하하(애초 올 거라고 기대도 안했다;;;). 뭐 그들 보러 시사회 포토월 현장에 간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꽤 많은 배우들이 <그들이 죽었다>를 응원하기 위해 서울극장에 열린 시사회를 찾아주셨는데요, 얼마 전 화제리에 종영한 JTBC <송곳>을 통해 배우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박시환을 필두로, <별에서 온 그대>, <꿈보다 해몽>의 김강현, <우리동네 예체능>의 농구 에이스 김혁, 쥬얼리 전 멤버 하주연, 홍아름, 정애연 등이 자리를 빛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박시환의 인기란. 그 날 포토월에 참석해준 배우 분들 모두 매너가 좋으셔서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쪼록 독립영화임에도 불구, 이례적으로 VIP 시사회와 포토월까지 한 백재호 감독의 <그들이 죽었다>가 대작들의 물량 공세 속에서도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로 <그들은 죽었다>는 이번 주 목요일 10일 개봉입니다. 

<그들이 죽었다> 파이팅!!! ㅡ.,ㅡ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너돌양

1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연이어 공개된, 백재호 감독의 <그들은 죽었다>는 자기 연민 혹은 자학에 빠졌던 기존의 청춘 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을 가진 영화였다. (2014/12/04 - [영화전망대] - 그들이 죽었다. 배우 출신 감독이 그리는 새로운 청춘 영화 )


우리가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삶이 힘들어진 것이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결연한 각오가 담겨있기에, 얼핏 보면, 현 지도층들이 극찬할 법한 청년상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죽었다>는 현 사회에서 벌어지는 청년 관련 문제들이 청년 개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환하지 않으며, 무조건 열심히 살자고 주장하는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죽었다>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현실에 예민하고 반응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에 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자하는 영화다. 


<그들이 죽었다>의 주인공 상석(김상석 분)은 무명 배우다. 배우로서 활동하고 싶어도, 캐스팅이 되지 않는 현실을 비관 하던 상석은 그와 비슷한 처지인 재호(백재호 분), 태희(김태희 분)과 함께 자신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연기만 해왔던 그들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막연한 꿈만 있었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뒤따르지 못했다. 





상석, 재호, 태희 모두 배우로서 기반을 잡지 못한 자신들의 문제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영화 제작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계획한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영화 제작을 통해 일종의 탈출구를 마련하겠다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도, 자신들이 직업 배우로 입지를 굳히지 못한 이유를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배우로 성공하고 싶고,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은 꿈은 있었지만, 왜 자신들이 연기를 해야하고, 영화를 만들어야하는 고민은 없었다. 배우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절박함은 있지만, 배우로 선택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문제 진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풀리는 이유를 모르니까, 매일 똑같은 악순환만 반복되는, 그것이 그들을 둘러싼 진짜 문제이다. 





여기까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뇌와 애환을 그려내는 전형적인 청춘영화에 가깝다. 그런데 백재호 감독의 <그들이 죽었다>가 기존의 청춘영화들과 다른 지점을 보이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들이 죽었다>는 열심히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탓하는 영화도 아니요, 그렇다고 오늘날을 살고있는 청춘들이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고통을 정당화시키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노력해도 안되니까, 자포자기식 무기력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죽었다>는 영화 속 상석과 달리 눈 앞에 뻔히 보이는 문제를 피하거나 좌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죽었다>는 자신의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들이 죽었다>가 상석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영화’다. 영화배우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만 있지, 정작 영화인으로서 가져야할 고민은 인지하지 못했던 상석의 반복된 실수를 솔직하게 털어낸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기 중심의 소우주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불행히도, <그들이 죽었다>가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 되었던 2014년보다, 2015년 청춘들이 처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그 사이 ‘헬조선’, ‘수저계급론’ 등의 현 사회를 빗댄 자조적인 유행어들이 우르르 만들어졌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시각 혹은 도피성 판타지만 으로는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이 처한 현 상황을 명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 몸소 실천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죽었다>는 겉핥기 식으로 청년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감독 자신의 문제로 내재화하여 2010년대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실을 그리고자 한다. 어설픈 위로나 채찍질을 행하는 대신, 현재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타인의 문제,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문제로 환원시킨다. 


영화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카메라로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관한 감독 개인의 절절한 고민과 이를 해결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진 인상깊은 데뷔작이다. 12월 10일 개봉.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