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간호사로 밤에는 바의 호스티스로 일하는 미카(사토 료 분)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지극히 염세적이다. 죽지 못해 마지 못해 살아간다고 해야할까.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카는 스스로 고독을 자처하는 여자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신지(이케마츠 소스케 분)는 유독 말이 많다.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신지는 종종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전조에 시달린다. 그런 신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동료(마츠다 류헤이 분)는 신지가 걱정하는 불길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 한다. 그런데 그 동료가 갑자기 죽는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는 신지의 예언력(?)이 통하는 순간이다.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사이카 타이의 동명 시집을 원작으로 한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멜랑콜리 그 자체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카와 신지 모두 삶의 희망을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래도 신지는 불안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나름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찾고자 하지만, 미카는 사소한 기적조차 믿지 않으려고 한다. 미카에게 사랑이란 수많은 사람들을 천천히 죽여온 쓸모없는 감정이다. 사람이란 어차피 죽는 것. 세상에 대한 허무로 가득한 미카가 유일하게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외로움이다. 


전작 <행복한 사전>(2013), <이별까지 7일>(2014) 개봉 덕분에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존재가 된 이시이 유야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가 포착한 도쿄 하늘은 유독 짙고 푸르다. 도쿄 야경이 유독 푸른 것은 한밤중에도 빛나는 거리의 네온사인과 화려한 조명 때문이다. 


비단 도쿄 뿐만인가. 서울, 뉴욕, 상하이, 런던 등 전세계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서울도 그러하듯이 도쿄의 사람들은 마천루를 가로 지르며 늘 바삐 살아간다. 밤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 한다. 휘황찬란한 야경에 가려진 도쿄의 그늘에는 불안감과 우울의 감정이 공존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신지와 같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은 일종의 사치다. 그저 오늘 하루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여자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던 남자가 우연히 만났다. 아이러니 하게도 미카와 신지가 가까워진 계기는 미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신지 동료의 돌연사였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연을 맺게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쉽게 열어보이지 못한다. 사랑을 믿지 않는 미카는 자꾸 신지를 밀어내려고 하고, 평소 말이 너무 많은 신지는 미카 앞에서 유독 말수가 적어진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라 어차피 헤어질 것인데 서로를 좋아하는 행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미카와 신지는 이렇게 각자의 마음을 단념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미카와 신지는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온통 짙은 푸른색으로만 감돌던 하늘도 조금씩 따뜻한 빛을 비추기 시작한다. 어렵게 사랑을 시작했지만 두 사람의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도쿄의 하늘은 여전히 우울하고 불안해 보이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도심 빽빽이 들어선 고층건물들은 종종 현기증을 유발한다. 


사랑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다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안겨준다. 이것만으로도 사랑은 해볼 만한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도시의 외로움과 불안한 감정을 이겨내는 데 있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응원을 받는 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아직 살만 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희망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 주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다. 희망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관객들과 첫 만남을 가진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지난 8일 폐막한 43회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상영된 바 있다. 부디 이시이 유야 감독의 전작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처럼 극장 개봉을 통해 다시 한번 관객들과 만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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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한 여학생이 실종되었다. 아마도 그 소녀는 투신 자살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집도 곧잘 살고 학업 성적도 우수한 학생이기에 자살할 이유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경찰과 학교는 실종된 소녀가 죽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걸로 추정되는 영희(전여빈 분)를 의심한다. 




단편 <오늘은 내가 요리사>(2009), <구해줘!>(2011), <오명>(2015) 등을 연출하고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 연출부를 지낸 김의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 <죄 많은 소녀>(2017)는 여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딸을 잃은 엄마(서영화 분)는 딸이 강물에 빠진 이유를 알고 싶어하고 친구의 죽음을 부추긴 것으로 의심받은 영희는 곤경에 처한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 간의 미숙한 우정이 빚은 파국을 다뤘다는 점에 있어 <죄 많은 소녀>는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0)과 비견 되곤 한다. <파수꾼>, <죄 많은 소녀> 모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과정 커리큘럼에서 나온 영화이기 때문에 <죄 많은 소녀>를 두고 ‘여자 파수꾼’이라는 별칭을 부르는 것도 그리 이상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파수꾼>이 한 소년의 죽음을 두고 우정으로 가려진 미성숙한 존재들의 내밀한 상처와 엇나간 욕망에 집중했다면, <죄 많은 소녀>는 경민(전소니 분)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에게 그 책임을 떠맡기거나 혹은 자학하는 인간의 미약한 본성을 깊이있게 보여주고자 한다. 




영희를 비롯하여 <죄 많은 소녀>에 등장 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소녀의 죽음에 일정부분 책임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워킹맘인 경민의 엄마는 일에 치여 살아서 경민에게 소홀히 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며, 경민과 한 때 특별한 관계 였던 영희는 그녀 나름대로 경민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 이미 학생 4명의 자살을 경험한 학교는 경민의 죽음으로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영희와 경민의 엄마를 제외하곤 영화의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회피와 책임 전가다. 그들은 자신이 경민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영희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거나 혹은 그와 관련된 다른 인물들을 위험에 빠트린다. 


<죄 많은 소녀>는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영희의 극단적인 행동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살기 위해 영희를 곤경에 빠트리고 이를 정당화 시키는 사람들과 그들에 맞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하는 소녀 영희의 처절한 몸짓이다. 


경민의 죽음에 있어 영희는 죄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희를 죄 많은 소녀로 몰아 붙인다. 학생들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어른들의 바람과 달리, 경민과 영희 모두 극단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는 상황에 몰린다.  어느 누구도 영희 편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영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죽음 외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죄 많은 소녀>라는 제목도 영화의 극적 상황을 충실히 설명해주고 있긴 하지만, <After My Death>라는 영어 제목이 더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영화로 풀어낸 것으로 알려진 김의석 감독은 날카로우면서 침착한 톤으로 누군가에 의해 희생양에 몰린 영희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아낸다. 어떤 이는 <죄 많은 소녀>를 두고 잔혹한 쎈 영화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자극을 위해 자극만 남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올해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전여빈의 호연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하고, 43회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며 영화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죄 많은 소녀>는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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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설치미술가 쉬빙은 오래전부터 CCTV 영상들을 활용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CCTV 영상들을 추출할 방법이 없어 희망사항 으로만 남던 중, 최근 중국 전역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영상들이 클라우드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아카이빙 되고 있고 심지어 온라인에 스트리밍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바람대로 100% CCTV 영상들을 활용한 영화를 만들게 된다.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쉬빙의 첫 장편영화 <잠자리의 눈>(2017) 100% CCTV 영상들을 활용한 일종의 파운드 푸티지(이미 찍힌 기존의 영상들을 가져와 작가의 의도대로 편집하여 만든 영상작품) 영화다. 어떻게 CCTV 영상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아카이브 푸티지(영상)를 재활용해 새로운 영화를 만든 사례는 꽤 있다.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걸작으로 꼽히는 브루스 코너의 <영화, A movie>는 영화, 다큐멘터리, 뉴스 등 다양한 아카이브 영상들을 편집하여 그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화 형태를 만들어 냈으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는 <영화사>(1997)를 필두로 <필름 소셜리즘>(2010), <언어와의 작별>(2013) 등 아카이브 영화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자화상>(2003)를 만들며 주목을 받았던 톰 앤더슨은 기존의 영화들을 인용한 영화 비평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동안 미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쉬빙이 CCTV 영상을 활용한 독특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2013년 우연히 한 치안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CCTV 영상들을 보게된 쉬빙은 인위적으로 찍히는 요즘 영상들과 달리 찍히는 사람이 자신이 카메라 찍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오는 CCTV 영상에 매료된다. 하지만 CCTV 영상만 계속 보여주면 지루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쉬빙 감독은 통속적인 성격을 가진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더빙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쉬빙이 CCTV 화면에 덧입힌 스토리를 말하자면 대강 이러하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절에서 수행을 하고 있던 젊은 여성 칭팅은 세속적으로 변하는 절에 실망을 하고 속세로 돌아와 목장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운명론을 들먹이며 칭팅에게 접근하는 커판 때문에 여러가지 곤란한 일을 겪게된 칭팅은 현실에서 잘 살려면 빼어난 미모가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신 성형 수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된다. 


칭팅은 어떻게든 커판을 떼어놓고 싶어 했지만 칭팅에 대한 집착으로 똘똘 뭉친 커판은 칭팅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삼류 막장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칭팅과 커판의 이야기도 기가 막히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지탱하게 하는 CCTV 영상들은 더욱 충격적이다. 식당, 세탁소, 의류점, 공장 등과 같은 일상적인 장소에서 각자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지만, 차마 제대로 눈뜨고 볼 수 없는 각종 사건사고 재난 현장들이 관객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잠자리의 눈>은 불안과 위험을 주제로 만든 영화다. 우리의 삶은 실시간 CCTV에 의해 감시되고 있고 현실에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있는 그대로 찍어내는 감시카메라는 그 어떤 가상 이미지가 쉽게 만들 수 없는 충격 요법을 선사한다. 





<잠자리의 눈>에 등장한 화면들은 모두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찍은 영상이고 쉬빙은 그 영상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과연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중국을 비롯하여 물신화 되어가는 아시아의 현실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우리의 일상에 숨겨진 “비가시적”인 위기를 밝히고,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불가해한 사건들의 순서 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거짓이 참이 되면, 참도 거짓이 된다.”는 대사를 빌러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위험이 참과 거짓을 쉽게 분별할 수 없는 현대의 삶을 꼬집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CCTV를 비롯한 여러 카메라를 통해 무수히 많은 푸티지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계속 아카이브 영상으로 쌓이고 있는 이미지들은 <잠자리의 눈>처럼 별도의 촬영없이 기존의 아카이브 푸티지 만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CCTV 영상 인용과 스토리 구성에 있어 장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지만, 영화 제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하는 의미있는 결과물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43회 서울독립영화제 해외 초청작으로 선보이게 된 쉬빙의 <잠자리의 눈>은 12월 7일(목) 18시 10분,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에서 한 차례 상영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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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