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헤이트풀8>을 봤다. 타란티노의 화끈한 복수극 위에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를 얹은 <헤이트풀8>은 타란티노 영화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걸작이었다. 비록 극장판으로 둔갑한 드라마 에필로그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만,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개봉 8일만에 관객수 100만을 돌파한 <셜록:유령신부>에도 보았듯이, 과거 멜로, 액션과 달리 한국에서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았던 추리물은 이제 공중파 드라마 미니시리즈에서도 만날 수 있는 인기 장르다. 


영국 드라마 <셜록> 시리즈처럼 본격적인 추리물을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추리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많은 재미를 본 드라마가 있다. 바로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N  <응답하라 1988>이다. 과거를 배경으로 그 당시 추억을 소환하는 복고 드라마이지만, 회가 거듭할 수록 여주인공 남편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버리는 이 시리즈가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극적 요소는 추리다. 드라마가 결말을 보여주기 이전에, 여주인공이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지 알아 맞추어야할 것 같은 <응답하라>  남편 찾기는,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등 이전 시리즈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응답하라 1988>에서도 여주인공 성덕선(혜리 분)의 남편 유력 후보로 열연한 배우 류준열, 박보검의 인기에 힘입어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분명 ‘여주인공 남편찾기’는 드라마의 흥미를 배가하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의 남편찾기는 가도 너무 나갔다. <응답하라 1988>이 이전 시리즈보다 평균 7~8%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남녀들의 사랑과 우정에 한정되었던 소재에 벗어나 가족으로 이야기의 범주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동일, 이일화, 김성균, 라미란, 김선영, 최무성, 유재명 등으로 대표되는 부모들의 에피소드에 기존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지 않았던 시청자들을 새로 유입할 수 있었고, 따뜻한 가족 이야기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열띤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드라마 후반부에 갈수록 가족들의 이야기는 축소되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성덕선-김정환(류준열 분)-최택(박보검 분)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 였다. 그런데 문제는 드라마의 메인을 이끄는 러브라인 자체가 지지부진하다.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싶으면, 결국은 세 남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의 감정은 충분히 납득은 간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은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환과 택이의 갈등을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시킨다. 거기까지도 좋다. 하지만 정환이가 택이가 덕선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가슴 아파하는지만 보여줄 뿐, 정작 덕선이의 마음은 오리무중이다. 드라마가 중반에 접어 들면서, 덕선이가 정환이를 좋아한다는 장면이 몇 차례 드러나긴 했지만, 삼각관계가 정점에 달한 지금, 여주인공 덕선의 감정은 ‘실종’ 상태다. 





러브라인의 중심선상에 놓여있는 여주인공 덕선의 감정이 철저히 감추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녀가 정환-덕선-택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결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두 남자가 한 여자에게 구애하는 상황에서 칼자루를 쥔 여주인공의 선택은 로맨스 드라마에 있어서 이야기의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결말이나 다름없다. 덕선이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가 이제 2회 남은 <응답하라 1988>의 핵심인만큼, 다가오는 16일 종영하는 날까지도, 덕선이가 정환이와 택이 중 누구를 좋아했고, 그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는 비밀에 부쳐질 공산이 높아 보인다. 


지난 10일 방영한 <응답하라 1988>의 18회에서도 애매모호하게 끝나버린 사랑 이야기 때문에, 남은 것은 시청자들의 ‘추리’뿐이다. 마지막회를 앞두고, <응답하라 1988>을 둘러싼 각종 스포일러가 횡행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덕선이 남편이 누구인지도 궁금하지만, 도대체 그녀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으니, 자연스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스포일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덕선이의 마음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도통 모르니, 그녀의 남편으로 각각 정환, 택을 지지하는 시청자들로 나눠 누가누가 남편이다 라는 추리가 여기저기 흘러나온다. 이쯤 되면, <응답하라 1988>이 아니라, <응답하라 덕선 남편>이다. 





종영을 앞두고, 드라마의 모든 화제가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에 쏠리고,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를 두고 각종 추리가 돌아다닌 것은 비단 <응답하라 1988>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응답하라 1994> 때도 그래왔었고, 마지막회까지 철저히 베일에 쌓여있었던 성나정의 남편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시청자들의 관심을 쥐락펴락하는 성공하는 요인이었다. 종영이 2회 남은 지금, <응답하라 1994>보다 여주인공 남편찾기가 더 어려워진 <응답하라 1988> 또한 회가 갈수록 궁금증을 유발하는 여주인공 남편의 정체 때문에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이 기존의 <응답하라> 시리즈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여주인공의 사랑이야기, 그녀의 남편찾기에 있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을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따뜻한 정서, 요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이웃들의 정겨운 풍경들이 시청자들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했고, 여기에 운동권 여대생 성보라(류혜영 분) 캐릭터가 가세하며, 적극적으로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이야기에 응답하게 하였다. 





분명 초,중반까지 <응답하라 1988>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겨운 이야기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고, 쌍문동 아이들의 풋풋한 첫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상큼한 양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80년대 후반에서 1994년으로 건너 뛰었다고 한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승전성덕선 남편이 되어버린 지금의 <응답하라 1988>의 현 상황은 드라마 속 쌍문동 아이들의 첫 사랑 이야기만큼, 쌍문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랑한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쉽게 만든다. 과연 우리가 <응답하라 1988>을 통해 그토록 응답하고 싶었던 1988년은 무엇 이었을까. 결국 ‘응답하라 덕선남편’이 되어버린 이 드라마에 진짜 묻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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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응답하라 1988> 쌍문동 골목 5인방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중, 혜리 다음으로 가장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가진 박보검이라고 한들, 이미 김정환(류준열 분)으로 촘촘히 짜여진 듯한 판에 최택(박보검 분)이 끼어들 곳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덕선(혜리 분) 남편으로 향하는 판은 의외로 허술 하면서도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말은 즉슨, 덕선 남편이 정환이가 될 수도 있고, 택이가 될 수 있다는 말. 그렇게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끼리 열심히 싸움 붙어 봤자,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가 그랬듯이, 신원호 & 이우정 작가 마음대로 덕선 남편이 정해지겠지만 말이다. 


그 어떤 <응답하라> 시리즈보다 가족, 이웃간의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응답하라 1988>이기에, 정작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지 크게 궁금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하긴 정환이가 덕선 남편이든, 택이가 덕선 남편이든, 어차피 이우정이 만든 허구의 세계 속 인물들일뿐이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가 누구와 결혼을 하던 말던,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아무 의미 없이 다가올 수도 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성나정의 남편을 두고 쓰레기나 칠봉이나 피터지게(?) 싸웠지만, 모든 결말이 밝혀진 이후 아련한 추억의 한 켠으로 사라진 것처럼, <응답하라 1988>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응답하라 1988>에는 지난 <응답하라> 시리즈과 다르게 다소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 <응답하라 1994>의 러브라인을 열렬히 응원 했던 시청자들은 여주인공 성나정의 남편이 자신이 응원하는 남자 주인공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4>는 성나정의 남편으로 쓰레기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칠봉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각축전(?)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응답하라 1994>의 시청자들은 매회 시시각각 움직이는 성나정의 감정에 주목 했고, 그녀가 자신이 응원하는 남자 주인공 곁으로 하루빨리 정착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성나정의 갈팡질팡 마음은 도무지 어디로 튈 지 몰랐고, 성나정의 어장 관리는 드라마가 완전히 끝나는 그 순간까지 멈출 줄 몰랐다. 


아마 이번 <응답하라 1988>의 성덕선도 <응답하라 1994>의 성나정이 그랬듯이, 어장 관리의 끝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들의 생각을 밀어 붙이며, 기어코 설득 시키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 신원호 & 이우정 콤비니까,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덕선의 남편 찾기를 질질 끌고 나가던, 우리 시청자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 때와는 달리, <응답하라 1988>의 시청자들은 예전만큼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 크게 궁금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니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이다. 그렇다고 성덕선을 포함, 김정환, 최택 등 러브라인의 중심 선상에 선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를 잃은 것도 아니다. 이제 막 이성에 눈뜬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는 언제나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다만, 여기서 성덕선의 남편이 누구인지에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 뿐이다. 


일찌감치 정환으로 판이 정해져있는 것 같아서, 뒤늦게 최택의 매력에 푹 빠진 시청자들도 '덕선 남편은 정환'이라는 기존의 판에 수긍하고 체념하는 분위기로 가는 듯하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은 유독 "덕선 남편은 정환이지만, 내 마음을 심쿵하게 하는 것은 택이."라는 댓글이 자주 보인다. 사실 내 마음도 그렇다. 분명, 덕선 남편은 정환으로 판세가 기울여져있다고 해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쓰게 하는 이는 최택이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덕선에게도 유독 마음을 쓰게 하는 이는 택이인 것 같다. <응답하라 1988>을 조금이라도 보면 알겠지만, 덕선이는 그냥 철딱서니 없는 평범한 열여덟살 소녀다. 언니 성보라(류혜영 분)과 동생 성노을(최성수 분)에 끼어 눈치밥 제대로 먹는 둘째딸이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슬하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덕선이는 아직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이다. 





하지만 철없는 덕선이 일찌감치 철이 들어버린 최택을 만나면 사람이 180도 달라져버린다. 마치 내가 아는 성덕선이 아닌 것처럼. 성동일, 이일화에게는 자신들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둘째딸이 최택에게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엄마다. 


지난 4일 방영한 대국 에피소드 외에도, 사실 알고보면 덕선은 유독 최택을 살갑게 챙겨왔다. 물론 덕선뿐만 아니라 쌍문동 골목 친구들 모두 최택에게 만큼은 너그럽고, 관대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최택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 어떠한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천재 바둑 기사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전세계 바둑판을 재패한 천재 기사라고 한들, 여전히 최택은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니라,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실한 아이이다. 게다가 최택은 어릴 때부터 오직 바둑에만 온 정신을 쏟는 탓에, 그 외의 일상생활은 또래에 비해서 서툴고 외롭다. 


남들처럼 최택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천재 바둑 기사가 아닌, 하나라도 더 챙겨 주고픈 친구로 생각하는 쌍문동 아이들이기에, 일찌감치 남들의 주목을 받는 생활에 지쳐 더욱 닫혀있을 수밖에 없었던 최택이 친구들에게 만큼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 중에서 유일한 여자 아이인 덕선이는 도무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천방지축 말괄량이 소녀이지만, 중간에 끼인 딸로 눈칫밥을 오래 먹은 탓인지 속도 깊고,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포근한 마음을 가진 여자다.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다. 이러니 제 아무리 돌부처 최택이라고 한들, 덕선을 보는 순간 "예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그런데 최택만 보면 행동 자체가 180도 달라지는 건, 덕선이뿐만 아니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쉬이 내비추지 않는 최택이 덕선과 함께 있는 그 순간 만큼은 박보검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남발하는 탓에, 수많은 여성들이 최택에게서 허우적 대고 있다는 것을, 그저 박보검이 연기하는 최택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알리는 없겠지만, 난 그래도 최택이 좋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최택을 연기하는 박보검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택만 놓고 봐도 평소 잘 웃지도 않는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만큼은 활짝 웃고,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상남자의 박력을 마다할 여자가 누가있을까. 게다가 입가에 살짝 미소만 머금 어도 보는 이의 마음을 '심쿵'하게 하는 박보검 인데 말이다. 





덕선이 남편이 누구인지는 어디까지나 신원호 & 이우정 작가의 마음이다. 그리고 이건 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제작진에 의해 창조된 세계의 캐릭터들이 짜여진 각본에 움직이는 드라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화면으로 바라보는 내 마음 속에 최택이라는 허구의 캐릭터가 훅 들어왔다는 것 뿐,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다. <응답하라 1988>의 최택의 미소 보는 재미로 이 힘든 세상 그래도 버티게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위안이 생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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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방영한 tvN <응답하라 1988> 6회에는 러브라인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성덕선(혜리 분)의 열렬한 짝사랑을 받으며, 미래의 덕선(이미연 분) 남편 유력 후보로 주목받았던 선우(고경표 분)가 덕선이 아닌 그녀의 언니 성보라(류혜영 분)에게 연정을 표하며, 일찌감치 남편 후보에서 제외된 것. 그리고 미래의 덕선 남편(김주혁 분)의 입에서 과거 덕선이 선우에게 고백 했다가 제대로 차였던 흑역사가 튀어 나오는 순간, 선우는 덕선의 남편이 아닌 것으로 완전히 판명되었다. 





이쯤 되면 그동안 덕선을 남몰래 흠모해온 김정환(류준열 분)의 싱거운 승리로 끝날 법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가 선우의 빈자리를 메우며 새로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그의 이름은 천재 바둑기사 최택(박보검 분). 그동안 바둑만 열심히 두었지, 그 외에는 이렇다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최택이 덕선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 


그렇다. 지난해 대한민국 최고 관객수를 기록한 <명량>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뒤로 KBS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 <너를 기억해>, 영화 <차이나타운> 등에서 줄줄이 멋있는 캐릭터를 꿰차고, 라이징 스타라면 누구나 거쳐간다는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 MC까지 맡은 박보검은 그저 쌍문동 골목길 다섯 친구 중 하나가 아니었다. 남편 찾기에 유독 공을 들이는 <응답하라 1988>이 꽁꽁 숨겨두었던 복병 중의 복병이었다. 





원래 <응답하라 1988>이 생각한 주요 러브라인은 정환-덕선-택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였다. 하지만 여주인공 남편이 누구인지 알려줄듯 말듯 하면서 시청자 약올리는게 취미이자 특기인 <응답하라 1988>은 새로운 시리즈 시작과 함께 지난 <응답하라 1994>보다 한층 더 진화된 낚시 기법을 펼친다. 


애시당초 덕선의 남편과 거리가 영 멀었던 선우를 덕선의 첫사랑으로 분하게하여 바람잡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케 한 것이다. 게다가 선우는 다정다감한 성격에서부터 반듯한 외모까지,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를 떠올리게 하는 많은 공통점을 가졌기에 덕선의 남편 후보로 손색없었다. 일찌감치 선우가 덕선이 아닌 보라를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덕선과 남편으로 이어질 수는 없어도 꽤 오랜 세월 덕선의 속을 애타게 하는 인물로 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1988년 첫 눈 오는 날, 보라에게 용기내어 고백한 장면을 끝으로, 선우는 덕선의 남편에서 영구 탈락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러브라인의 혼선 속에 언니와 동생이 한 남자를 두고 싸우는 막장극은 일찌감치 선을 그은 셈. 이쯤 되면 시청자들을 제대로 낚은 데 성공한 제작진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듯 하지만, 웬걸. <응답하라 1988>을 애청하는 대부분 시청자들에게 선우는 덕선의 첫사랑의 상대일 뿐, 그를 미래의 덕선 남편으로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덕선과 선우에게는 5회 오프닝에 등장한 라면집씬을 제외하고 이렇다할 스킨십과 관계 진전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때 선우가 덕선의 어깨에 손을 올린 것 또한, 선우에게는 오랜 동네 친구에게 무심코 취한 일상적인 행동 이었을뿐이다. 다른 친구들에게 비해 덕선에게 유독 다정하게 군 것도,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본인 성격 탓이 가장 크겠지만, 혹시나 자신이 오랫동안 연모해온 보라와의 사랑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그녀의 동생인 덕선이 다리를 놓아줄까봐, 그래서 더욱 덕선에게 친절하게 대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덕선과 심쿵한 장면은 모두 덕선을 짝사랑하는 정환의 몫이었다. 좁디 좁은 벽과 벽사이에서의 숨막히는 밀착씬,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곤욕을 치루는 덕선을 위해 흑기사를 자처한 정환의 팔에 진하게 튀어나온 힘줄 등등. 하지만 애시당초 정환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덕선은 정환에게 별반 관심이 없다. 네가 그러던지 말던지, 난 선우만 본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 장면을 숨 죽이며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덕선이 정환이 아닌 선우를 선택한다고 한들, 수많은 시청자들 마음 속의 덕선 남편은 한 여자(덕선)만을 바라보는 츤데레 순애보 정환으로 확연히 기울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건들 거리는 몸짓에 2015년 덕선의 속을 살살 긁는 남편의 상태(그리고 정환의 아버지인 김성균처럼 내복차림으로 집안 활보)를 보아하니, 1988년, 세상만사 불평 불만으로 가득찬 시크 까칠 김정환씨와 제법 싱크로율이 맞아보인다. 그러니 덕선이 선우를 향한 처절한 짝사랑을 외치던 말던 간에 시청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덕선 남편으로 정환 당첨을 외칠 수밖에. 





하지만 덕선의 첫사랑으로 첫사랑 특유의 애틋한 감정만 일으켰을 뿐, 일찌감치 덕선 남편과는 영 거리가 멀었던 선우와 달리, 소리없이 러브라인의 중심에 훅 들어선 택이의 등장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그리고 뒤늦게 생각해보니, 유명 스타라는 점에서 택이는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와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칠봉이처럼 순애보라는 것도 꼭 닮아 있었다. 아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사람 가슴 훅 파고드는 것도 똑같다. 


그러나 뒤늦게 덕선에게 자신의 연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택의 변화에도 불구, 의외로 그는 덕선의 남편과 영 거리가 멀다는 제법 설득력있는 주장이 제기된다. 잘 알다시피 최택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둑 천재 이창호 9단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이다. 택이와 달리 양친 부모가 모두 살아있다는 점을 제외하고, 아버지가 금은방을 운영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커 페이스라는 것도, 살아있는 돌부처 이창호 9단의 실제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창호 9단의 아내가 11살 연하라는 것이다. 설마 아내의 나이 차이까지 이창호 9단을 따라하겠나 싶기도 하지만, 의외로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 이창호 아내처럼 11살 차이는 아니지만, 띠동갑 차이가 나는 선우 동생 진주가 버젓이 한 동네에서 살아있기 때문이다. 디테일에 강한 <응답하라 1988> 제작진인 만큼,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결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이런 뻔한 추리를 뒤집는 반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지켜봐야할 듯하다. 





어찌되었던 연적 선우가 사라져(?) 쾌재를 부르던(흐흐흐흐흐흐가 자동 연상될 정도) 정환의 기쁨도 잠시. 정환은 선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최택과 진짜 힘들고도 어려운 싸움을 이어나가야한다. 비록 최택이 바둑 외엔, 모든 것에 서툴고 어리숙하긴 하지만, 목표하는 바가 생기면 특유의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것으로 성취한다는 것. 그래서 뒤늦게 덕선과 정환 사이에 끼어든 최택이 무서운 이유다. 혹시 아나,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가 남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에 버금가는 명대사가 최택의 입에서 나올지도. 


아무튼 선우 가고, 최택이 그 자리를 꿰찬 <응답하라 1988>의 주요 러브라인은 이로소 확실히 정리되었다. 이제 정환과 택이를 두고 <응답하라> 시리즈 특유의 낚시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일만 남았다. 아, 아직 동룡(이동휘 분)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동룡이까지 가세해서 덕선이 남편은 누굴까요 알아 맞춰 봅시다 식의 낚시가 계속 이어 갈 것이다. 이렇게 정환으로 다소 싱겁게 마무리될 것 같은 혜리 남편 찾기는 최택이라는 다크호스가 등장함에 따라, 다시금 새로운 활력소를 찾게 되었다. 그럼에도 1988년 첫 눈 오던 날, 덕선의 흑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2015년 덕선 남편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 그가 누구인지는 이미 정해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보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일찌감치 덕선 남편에서 탈락한 선우가 그렇다고 보라 남편이라고 100%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환이 형 정봉이(안재홍 분) 또한 보라를 향한 남다른 감정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만큼, 한 술 더 떠 보라 남편 찾기까지 시작될 지도 모른다. 


고로, 쌍문동 골목길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닌 <응답하라 1988> 남편찾기에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이미 제작진의 고도의 노림수에 제대로 낚여 버린 우리 시청자들은 그저 이 상황을 즐길 뿐. 어찌되었던 자신들의 변함없는 뚝심(남편찾기)을 시청자들에게 기어코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 <응답하라 1988> 제작진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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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