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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물고기.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인간은 알면서도 미끼에 낚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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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이건 뭐지." 싶으신 분들이 꽤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도 그럴것이 <물고기>라는 영화는 서울에 광화문 인디스페이스 딱 한 곳만 개봉하는 독립영화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압구정CGV에서 상영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고작 하루 그것도 늦은 시간 딱 한편만 개봉하기에 그리 큰 의미는 없어보인다.





그럼 글쓴이는 왜 서울에서 단 하나의 극장에서만 개봉하고, 딱히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지도, 아예 개봉하는지 조차 모르는 <물고기>를 관람했을까. 그냥 낚인것 뿐이다. 인디스페이스 극장에 관심있는 독립영화 보러 갔다가, 영화 소개란에 '물고기'라는 제목에 뭔가 싶어 낚이고, 예고편에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상 받았다는 것에 솔깃하여 낚이고..


그래도 멍청하게 낚이고 싶지 않아서 인터넷을 통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 다녔는데, 다행히 개봉 얼마 전 언론 시사회를 했기에, 몇몇 기자분들의 리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영화가 힘들게 극장에 찾아가 볼 만한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결국 글쓴이는 걍 <물고기>가 주는 미끼를 덥석 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나름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고자하는 흔적은 역력하나, <물고기>는 결코 쉽지도, 오히려 난해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영화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씻김굿이 나오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장애없이 자유롭게 교차한다는 소재와 주제가 난해하다. 


이런 어려운 영화일 경우, 도전정신은 가상하나, 도대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주제 의식과 결말이 희지부지 끝나는 졸작이 될 확률이 높은데, 글쓴이가 이 영화에 덥석 낚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도 2011년 열린 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재능있는 신인감독을 발굴하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초청까지 받았는데 극장비가 아까울 정도는 최악은 아니겠지라는 믿음 하에서 말이다. 


영화의 시작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내를 찾아다니는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교수인 생업을 내팽개치고 아내 지연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전혁은 아내를 진짜 사랑하는듯하다. 영화 중반에 보면 남자에게는 아내뿐만 아니라 딸 아이까지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흥신소를 시켜 아내의 행방을 추적하게한, 전혁은 흥신소 직원에게서 아내가 진도에서 무당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럼에도 아내를 되찾아오기 위해 흥신소 직원과 함께 진도의 땅에 들어선 전혁. 하지만 그에게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은 그의 정체성에 깊은 혼란을 야기한다. 





무당된 아내를 찾아 나선 남자 이야기 외에도, <물고기>는 깊은 밤, 바다 한 가운데서 물고기를 낚는 두 남자의 에피소드를 교차로 보여준다. 얼핏 보면 왜 전혁과 아내하고도 연관없는 두사람이 뜬금없이 왜 나오지 싶기도 하지만, 영화 중반 이상을 보게 되면 그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명확히 설명된다. 두 어부는 물고기를 낚는 도중 이런 저런 말들을 주고 받는다. 어떻게 보면 의미없는 허무성 궤변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감독은 이 어부들의 말을 빌려, 이 난해한 영화가 미쳐 보여주지 못했던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여실히 보여준다. 


좀 나이가 든 어부는 자신들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무는 물고기를 보고 멍청하단다. 반면 그보다 나이가 좀 더 어려보이는 어부는 물고기는 그 미끼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다고 한다. 바닷물(혹은 강물)의 세계에 질려버린, 혹은 물고기들간의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하던 물고기는 그동안 물안에 갇혀있던 것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그래서 물고기가 유일하게 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미끼를 스스로 무는 것이다. 


하지만 물 밖으로 나간 순간 물고기를 기다리는 운명은 죽음 뿐이다. 그래서 나이든 어부는 이렇게 말한다. "이래라 저래라 물고기는 멍청하네요.". 그런데 그 순간 그들이 낚은 물고기가 갑자기 말을 하고, 어부들은 도저히 이성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아내를 찾아 진도의 외딴 섬으로 들어온 전혁. 진도로 배타고 들어오기 전날, 어떤 기이한 식당의 할머니에게서 분명 배타러 들어가지 말라는 충고를 받은 전혁은 그럼에도 아내를 다시 데리고 육지로 들어오겠다는 일념 하에 기어이 흥신소 직원과 초라한 동동배를 타고 진도에 들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를 만나러 갔지만, 전혁은 아내를 다시 데리고 육지로 나갈 수 없다. 아무튼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씻김굿 하는 배 위에 올라선 전혁은 같이 배를 탄 흥신소 직원에게 이상한 말을 듣는다. "혹시 교수님이 사모님을 찾는게 아니라, 사모님이 교수님을 찾는게 아닐까요." 


그 순간, 몇 초전까지 전혁 옆에 앉아있던 흥신소 직원이 시작하고, 씻김굿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전혁 아니 관객들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반전을 맞게 된다. 씻김굿 이후 영화는 그 이전까지 뜬금없기만 했던 두 어부의 등장과 대화, 그리고 말하는 물고기의 등장의 필연성을 확실하게 엮는다. 


분명 전혁이 아내가 있는 진도로 떠나기 전날, 식당 할머니는 분명 전혁에게 가지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전혁은 자신이 위험에 처할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여객선도 아닌 사고 위험이 높은 동동배에 몸을 싣는다. 오직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겠다는 일념 하에 위험할 줄 알면서도 주는 미끼를 덥석 문 것이다. 


두 어부에게 낚인 말하는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뱃사고로 익사하여 죽은 사람의 영혼이 환생한 것으로 추정한 물고기는 한이 많다. 그래서 죽어서 물고기가 되어서도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 물고기는 자신을 먹기 위해 잡는 어부의 미끼를 물었다. 하지만 어부들은 물고기의 한맺힌 말을 들어주기보다, 물고기가 말을 한다는 비정상적 상황에 기겁을 하며, 물고기의 숨통을 끊는다. 한을 풀지 못한 원귀가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야 만다. 





결국 물고기의 못다한 한을 풀어주는 것은 무속인 지연의 몫이다. 자신이 기대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 위험한 미끼를 문 물고기는 원귀가 되어 돌아온 자신의 운명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원치 않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정해진 운명에 의해 무당이 된 지연도 매한가지다. 지연의 몸을 빌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물고기는 그제서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애초 전혁과 아내는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운명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전혁은 아내를 만나기 위해 미끼를 덥석 물었고, 그 이후 자신을 둘러싼 믿기 어려운 일련의 과정들을 감내해야한다. 얼마 전 보았던 독립영화 <나비와 바다>에게 영감을 주었던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의 시 한구절이 저절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 돌아온다."


영화 속 젊은 어부의 말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해 낯선 미끼도 덥석 물기도 한다. 때로는 그게 청무우밭이 아니라 거친 파도에 휩싸이는 바다라고 해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청무우밭인줄 알았다가 혼란만 빚은 전혁의 아내 찾기 여정은 대실패다. 하지만 흥신소 직원의 말대로 전혁에게 자신을 찾아달라고 미끼를 던진 쪽은 아내다. 


삶과 죽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 영화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직도 글쓴이의 얄팍한 머리로는 이 영화가 말하고픈 원대한 주제와 진짜 메시지를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영화의 박흥민 감독은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바와 전혀 다른 의도로 만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애초 3D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인디스페이스는 영화관 사정상 3D를 제공하지 않기에 2D로 보아서 더더욱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비록 글쓴이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영화였지만, 결코 이 영화에 낚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척박한 한국 독립 영화계 현실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미스터리한 환상을 넘나드는 물고기를 3D로 제작하여 한국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 박흥민 감독에게 감사할 뿐이다. 쉽지 않겠지만 때로는 다수가 관심을 가지 않는 미끼에 낚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 아냐, 의외로 나의 인생에 전환점이 될 월척을 만날 지도. 


한줄 평: 신선한 도전에 박수를. 하지만 나름 쉽게 다가가고자 했으나 다수의 관객들이 보기엔 여전히 난해한 소재와 접근법. 그럼에도 기분좋은 월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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