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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내 딸 서영이. 외로운 차지선. 오죽하면 제비에게 말려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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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서영이> 차지선(김혜옥 분) 여사는 외롭고 쓸쓸하다. 유력가 정치인 딸로 강기범과 정략 결혼한 차여사는 국내 굴지의 패션업계 위너스가의 사모님으로 남부럴 것 없이 잘 살아왔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하늘은 차지선 여사에게 재벌가 사모님이란 화려한 타이틀을 안겨주었지만, 대신 남편의 사랑 결핍에서 비롯된 깊은 외로움을 앓게 한다. 


사랑 아닌 집안끼리 조건보고 이뤄진 결혼이다. 차지선 여사처럼 정략결혼은 아니었지만, 주인공 서영이(이보영 분) 쌍둥이 동생 상우(박해진 분)도 애초 호정이가 좋아서 한 결혼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호정이의 바람대로 그녀를 사랑하고자 노력이라도 보이는 상우와 달리, 매사 카리스마로 일관하는 강회장은 차여사에게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함께해온 부부들이 대부분 겪는 권태기라고 보기에, 강기범은 애초 차 여사를 자신의 아내, 아이들 엄마 그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돈은 풍족히 주지만, 사랑은 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차지선은 언제나 외로웠고 허전했다. 외로움에서 생긴 허기는 명품 싹쓸이 쇼핑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친구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타고난 공주였던 차지선 여사에겐 그녀와 함께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조차 많지 않다. 


그래도 차여사 곁엔 세상 더할 나위 없는 아들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다정한 연인인 성재(이정신 분)이 있었다. 그러나 성재에게 친엄마 윤실장(조은숙 분)이 나타나면서 성재와 거리감을 둔 지도 오래다. 설상가상으로 차지선을 다독일 수 있는 서영이마저 큰아들 우재(이상윤 분)과의 이혼으로 차여사 집을 떠났다. 으리으리한 궁궐 안에 덩그라니 홀로 남게된 차여사는 진정으로 마음 붙일 곳도 기댈 곳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스트레스 해소차 드럼을 배우기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 준수한 외모에 다정다감하기까지한 마술사(전노민 분)을 만났다. 거듭되는 우연 속에 마술사 배영식과 친해진 차여사는 실로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생기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행복했던 나날도 잠시. 차여사에게는 우울했던 인생에 활기를 되찾아줄 잠시의 가벼운 일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매번 차여사에게 호의를 베풀던 마술사는, 차여사의 돈을 보고 흑심을 품은 제비였다. 한 때 친엄마와 만나는 성재를 보고 낙담하고 있던 차여사에게 아름다운 인연의 이치를 일깨워주던 마술사는, 정작 차여사가 만나서는 안될 최악의 인연이었다. 


차여사에게 타로점을 봐드리겠다면서 부군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면서 콘서트 티켓을 건내던 마술사는 자신의 흑심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곱게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차여사는 마술사의 검은 속셈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은 마술사가 계획하는 대로 간통죄에 휘말릴 처지다. 





독심술을 빙자하여 외로운 귀부인들의 심장을 노리는 제비에게 제대로 낚여버린 차지선의 위기는 예상 대로였다. <내 딸 서영이>의 제작진이 특별 출연한 전노민에게 기대했던 바는 차지선에게 위기를 안겨주어, 그걸 계기로 서영이를 다시 차여사의 집으로 불러들이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차지선을 꾀어내기 위한 배영식의 작전은 그 검은 속셈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어설펐다. 하지만 고귀하게만 자란 나머지, 한 번도 집밖에 나온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 누구에게도 기댈 상황도 여의치 않았던 차지선 여사는 너무나도 쉽게 제비가 미리 쳐놓은 그물에 휘말린다. 


몰라도 너무 몰랐고,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 역시나 드라마에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선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몸에서 낳은 자식보다 더 사랑했던 성재의 친엄마 등장, 그리고 믿었던 며느리 서영이가 안겨준 충격으로 코너에 몰리던 차여사를 잠시나마 위로한 마술사는, 차여사가 마술사를 만나기 직전 겪었던 일종의 배신감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우연을 가장하여 자신에게 다가온 마술사가 안겨줄 비극의 전초전도 모른채, 차여사는 그 마술사 때문에 잠시나마 행복했고 설렜다. 상냥한 미소로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달려드는 이조차 외롭고 쓸쓸했던 은둔자 차여사에겐 오랜만에 마음 터놓고 지내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마술사다. 그렇기에 마술사의 가시에 찔려버린 차여사는 예전에 입은 가슴 속 상처에 덧입혀 더 깊은 상실감과 배신감, 모멸감을 경험한다.  거기에다가  본의아니게 차여사에게 상처를 주었던 성재와 서영이와 달리 차여사 뒤통수를 친 마술사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고의적이다. 





그동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을 제외하곤, 부모 잘만나 아무 근심 걱정없이 호의호식 자라온 대가로 보기엔 연이어 믿었던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차여사가 딱하게 보여질 정도다. 하긴 강기범 부부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안겨주었던 서영이를, 주말 가족 드라마 전형적인 공식대로 다시 우재와 재결합시킬려면 차여사 혹은 강기범을 궁지에 몰아넣는 방법 뿐이다. 


현실에서는 그저 부러움과 질투로 점철된 재벌가 사모님일 뿐인 차지선이 이 드라마에서만큼은 유독 안쓰럽다. 어느 드라마에서나 지겹도록 많이 보아온 뻔한 설정임에도, 말도 안되게 마술사와 간통으로 오인받아 경찰서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황당함과 동시에 자신에겐 진정한 친구조차 허락되지 않구나하는,,,체념과 허망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차지선의 눈빛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의 차여사는 훤히 보이는 제비의 속셈에 제대로 걸려들정도로 위태로웠고 외롭고 쓸쓸했다. 결국 은둔자에서 벗어나려하다가, 간통녀라는 혹만 붙인 차지선 여사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그녀의 억울함을 감싸줄 이는 예나 지금이나 서영이밖에 없다. 사실 차여사가 제비에게 휘말리는 부분은 억지스러워 실소가 나오긴 하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 사람에게 치유받기도 하지만 결국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는 메시지는 효과적으로 전달된 듯하다. 그 또한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기획된 보수적 홈 드라마 고질병의 재림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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