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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군도 후기. 군도: 민란의 시대. 기대보다 부족한 카타르시스. 배우들이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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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를 지탱하고 있는 스토리 라인은 크게 세 가지이다. 탐관오리의 횡포에 봉기를 든 성난 민중들, 악당에게 모든 것을 잃고 복수하는 남자, 어릴 때 학대받고 제대로 삐뚤어진 남자이야기. 


군도 옆에 붙어진 민란의 시대라는 친절한 부제처럼 <군도>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민란'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군도>는 지리산 추설의 활약, 탄생 배경과 그들이 악당 조윤(강동원 분)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엄청난 희생이 뒤따르긴 했지만, 영화 내내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다."라는 외쳤던 지리산 추설은 끝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운하지 못하다. 





전형적으로 힘없는 약자들이 하나로 뭉쳐 강자에 저항하는 이야기는 선악 구도가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그런 논리로 본다면 전설의 의적 홍길동의 후예를 자청하고, 실제로 부패된 관리와 양반을 응징하는 지리산 추설은 선이요, 온갖 악행을 자행하며 힘없는 백성들을 핍박하는 조윤은 당연히 악이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조윤의 단독샷다. 조윤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의 탁월한 비주얼도 한 몫하긴 했지만, 이는 조윤 외에 딱히 인상깊은 장면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2008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에 이어 김치 웨스턴을 표방한 작품인만큼, 도치(하정우 분)와 지리산 추설 무리가 마치 <석양의 무법자>처럼 말을 타며 호방하게 사막을 가로지르는 장면도 있고, 조윤 때문에 부모, 형제를 잃은 돌무치가 도치라는 새 이름을 얻고 복수를 꿈꾸며 대나무숲에서 무술을 연마하는 씬도 있다. 


이 각각의 씬만 놓고 본다면, 어디하나 나무랄 데 없는 미장센이다. 그런데 이 장면 하나하나가 이어 붙어져서 137분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순간, 영화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균열이 군데군데 발생한다. 





장면들을 잇는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군도>는 윤종빈 감독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최근 개봉하여 흥행한 다른 한국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쉽게 관객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TV 다큐멘터리처럼 내레이션을 삽입하였고,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다."라는 말을 수번도 넘게 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문제는 관객들을 배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이 과잉 친절에 있다. 수많은 관객들이 <군도>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하정우, 강동원, 이성민, 이경영, 조진웅, 마동석, 김성균, 윤지혜 등 유명 배우들의 활약상을 보기 위함도 있겠지만, 한국형 액션 블록버스터가 안겨주는 시원한 비주얼과 쾌감, 그리고 힘없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기득권층 횡포와 맞서싸우는 군도들의 활약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관객들이 오롯이 느끼게하기보다 일일이 하나하나 설명하는 이 영화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군도>에는 기대했던 것처럼 멋있게 잘 싸우는 하정우, 강동원도 있고 시각적 효과도 좋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메시지도 확실히 제시한다. 


단순히 오락성만 놓고 평가하자면 <군도>는 적당히 재미도 있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는 강동원의 활약상 덕분에 웬만한 단점은 보이지 않는 잘 만든 오락 영화다. 재미가 우선시되는 영화임에도 불구, 좀 더 효과적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피력하고자했던 윤종빈 감독의 고뇌가 한눈에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꼰대를 상징하는 최익현(최민식 분)의 능구렁이 같은 몸짓과 "살아있네" 대사만으로도 성인 관객들을 키득키득 웃기면서도 씁쓸한 뒷맛까지 제공했던 <범죄와의 전쟁>을 생각하면, 지극히 평범한 오락영화로 돌아온 <군도>가 아쉽다. 그것도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뭔지 알겠는데,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은 나머지 정작 해야할 이야기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이렇게 매끄럽게 다듬지 못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도>는 137분의 긴 러닝타임과 티켓값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강동원의 뛰어난 비주얼덕분에 제대로 눈호강하는 기분이다. 정우성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대부분의 허술한 점이 쉽게 용서되었던 <신의 한수>처럼 말이다. 





윤종빈 감독과 유명 배우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아쉽다는 평이 지배적이나, 상업 오락 영화로서는 미덕이 많은 <군도: 민란의 시대>. 하정우와 강동원의 활약상과 요즘 충무로에서 대세로 평가받는 배우들의 앙상블만 집중해서 본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7월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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