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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분량마니아 김정남에게서 미생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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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열린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무한도전-토토가>) 녹화 무대에 참여한 가수들의 라인업만 봐도, 방송 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무한도전-토토가>이지만, 이 특집은 지난 11월 1일 방영한 <무한도전-특별기획전> 당시 김영희PD, 권석PD, 김유곤PD 등으로 구성된 전문 심사위원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기획안이었다. 분명 흥미롭고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은 아이템이지만, 이미 비슷한 콘텐츠물이 기획, 제작되었다는 이유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 tvN <응답하라1997>, 2013 tvN <응답하라 1994> 등 90년대를 추억하는 복고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한국 대중문화는 ‘1990년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90년대 큰 사랑을 받았던 가수들이 덩달아 주목받았다. 비록 박명수가 한 때 진행을 맡았던 SBS 플러스 <컴백쇼 톱10>은 야심찬 시작과 달리 흐지부지 마무리가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왕년의 오빠, 언니들은 ‘청춘나이트’ 등의 합동 콘서트로 90년대 자신들이 사랑했던 스타들과 만나고 싶어하는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찬란했던 90년대를 추억하고 있었다.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시리즈의 대히트로 90년대를 재조명하는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2014년 12월. 90년대 인기 가수들이 한 무대에서 자신들의 히트곡을 부른다는 것은 이미 활발히 공연 중인 ‘청춘나이트’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무한도전-토토가>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 자신들이 좋아했던 가수들을 TV 혹은 무대로 본다 그 이상이다. 물론 <무한도전-토토가>에는 ‘청춘콘서트’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엄정화, 이정현, 지누션이 출연하고, 18년만에 만났다는 김정남-김종국의 터보 원년멤버 완전체를 만날 수 있다. 유진이 임신을 이유로 아쉽게 불참을 선언했지만, 오랜만에 바다, 슈가 SES 이름으로 한 자리에 서는 특별 무대가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무한도전-토토가>에는 90년대 인기 가수들이 많은 팬들 앞에서 과거의 히트곡을 부르면서, 옛 영광을 떠올리며 감격하는 화려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무한도전-토토가>에 참여하려면, 각 가수들의 과거 히트곡으로 노래방 점수 ’95점’ 이상을 얻어야한다는 다소 엄격한 조건의 미션을 통과해야한다. 


그래도 많이 불렀던 자신들의 노래니까 ’95점’ 쯤이야 생각했다면 큰 오산. 아무리 노래를 감성적으로 잘 불렀다고 하더라도 노래방 고득점은 별개의 영역이다. 어떻게든 ‘95점’ 이상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수들. 90년대 최고로 잘나갔던 이들이 목소리까지 쥐어짜면서 노래방 점수에 목숨거는 이유는 단 하나. 많은 팬들, 시청자들 앞에 서는 무대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18년 만에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터보의 김정남은 터보 탈퇴 이후 근황을 묻는 유재석의 질문에 10년 이상 그냥 놀 수는 없기에 여기저기 불러주는 대로 행사를 다녔다고 털어놓는다. 오랜만에 많은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리였던 만큼, 유독 분량 욕심을 드러낸 김정남은 끝내 김종국 없이 홀로 터보로 활동한 모습을 서스럼없이 공개하며 보는 이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김종국 특유의 미성이 도드라지는 보컬 부분에서 버벅거리면서도 “아시죠? 저 원래 노래하는 사람 아니예요.”, “이 부분 종국이가 부르는거 아시죠?” 라는 김정남의 천연덕스러운 너스레는 분명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간 살기 위해 자신의 아픈 과거까지 우스꽝스럽게 언급해야하는 김정남의 고단한 삶을 목도하는 순간 마냥 크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김정남의 컴백 시도는 지난 2011년 방영한 SBS 플러스 <컴백쇼 톱 10>에서 한 차례 있었다. <컴백쇼 톱 10>에서 김정남은 터보 탈퇴 이후 너무나도 힘들게 살아온 나머지, 컴백을 위해 마라톤 완주까지 고집하는 절박한 모습을 보였다. 김정남 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컴백쇼 톱 10>에 나왔던 가수들 대부분이 가수 활동이 중단된 이후 힘겹게 살아가는 자신들의 생활을 강조하며, 그만큼 컴백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순조로웠던 출발과 달리, <컴백쇼 톱10>은 조용히 대중들의 시야에 사라졌고, 벼랑 끝에서 밧줄 잡듯이 프로그램에 임했던 가수들의 컴백 또한 물거품이 되었다. 그 후 3년 만에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남은 여전히 가수로서 재기를 꿈꾸고 있었고, 오랜만에 돌아온 좋은 기회를 허무하게 놓치지 않기 위해 체력 고갈로 숨이 헐떡이는 와중에도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었다. 왕년에 잘나갔던 가수의 절박한 이미지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가수 본연이 가진 예능감과 끼마저 마음껏 발산하게 하는 <무한도전-토토가>는 잊혀진 가수 김정남을 다시 빛나게 하는 최고의 자리였다. 


다시 무대 위에 올라서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면서도 그런 뭉클한 사연조차도 웃음으로 초토화시키는 김정남. 비록 과거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중년 아저씨로 우리 곁에 돌아왔지만, 마치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 미생들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이제는 화려한 스타의 모습보다도 생활인으로서 고단함이 느껴지는 왕년의 오빠, 언니들이지만, 우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이를 들어가는 그들의 아름다운 현재를 볼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무한도전-토토가>.이제 무대 위에 스타들, 그들에게 열광했던 오빠, 언니 부대들 모두 찬란했던 90년대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는 본공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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