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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비커밍 아스트리드' 여성에 대한 편견에 맞선 '삐삐 롱스타킹' 작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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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인권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이 자랑하는 명실상부 20세기 대표 아동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담은 실화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가 5월 개봉을 확정한 앞둔 가운데,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 비화를 다룬 영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특별한 관람 가이드를 공개했다. 참고로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말괄량이 10대 소녀 ‘아스트리드’가 전설의 작가 ‘린드그렌’이 되기까지, 그의 삶의 기반이 되어준 인생의 가장 내밀했던 10대 중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시절을 소환해 관객에게 울림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1920년대는 격변의 시기로 세계적으로 재즈 음악이 엄청나게 유행했고, 나라마다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되는 등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사회 관습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비커밍 아스트리드>의 배경이 된 1920년대 중반 스웨덴도 마찬가지. 영화 속에서 아스트리드는 시골마을 스몰란드에서 오직 책에서 삶의 의미를 찾던 외로운 소녀였으나, 시대 분위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외향적이고 진보적인 시대정신을 체득해가는 캐릭터다. 댄스파티에 참석해 파트너를 기다리며 춤출 기회를 기다리는 여성이 아니라,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혼자서 댄스 플로어에 몸을 날려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을 통해 그녀의 자유분방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양 갈래머리를 짧은 단발머리로 자르는 모습 또한 현재의 시선으로는 별게 아니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제법 의미심장한 장면으로 오롯이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북유럽의 신문과 주간지에 칼럼을 쓰는 남성들은 여성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을 마치 자신들의 소명처럼 여겼을 정도로 여성들의 헤어 스타일을 힐난했다. 이는 사실 여성의 새로운 사회 역할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1920년대에 전 세계에서 100만부 이상 판매된 빅토르 마르그리트의 소설 [라 가르손느](‘소년같은’이라는 뜻)가 대유행 했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성 역할과 예의범절을 벗어 던지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젊은 여성들은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코르셋과 길고 무거운 가운을 버리고, 기능적으로 편한 옷을 입었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은 긴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르고, 재킷을 입고 넥타이를 맸으며, 공공장소에서 남자들에게 허용된 흡연과 음주를 서슴지 않았다. 제멋대로 춤추고 다니고, 혼외 자녀를 낳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며, 가족보다 자유를 선택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수성가형 여성이었다. 공교롭게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짧은 헤어스타일에 춤을 즐겼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 남성복을 입었으며, 혼외 자녀를 낳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해 작가로서도 성공했다. 

 


스웨덴은 1921년 여성의 참정권 허용 이후 여러 개혁을 통해 양성평등을 철저히 실행하는 국가이다. 스웨덴에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괄목하게 진척되면서 정부차원에서 남녀평등을 위한 제도와 환경개선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결과 현재는 과학, 문화 및 언론계를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특히 공직과 정치계에서는 완전한 남녀평등을 실현하여 의회 내 여성의원 비율이 약 45%로 매우 높은 수준. 하지만 <비커밍 아스트리드>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당시 스웨덴은 여성 권리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오직 남성의 영역이었으며 여성 기자는 매우 드물었다. 열여섯 살의 아스트리드가 신문사의 수습기자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녀의 글쓰기 재능을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 나아가 그곳이 스웨덴의 시골마을인 것을 감안하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그만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1920년대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 않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스스로 자리매김해 나가며 성인이 된 인물이다.    

하지만 아스트리드는 열여덟 살에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전도양양한 기자 커리어 또한 돌연 중단됐다. 당시 스웨덴 사회의 미혼 여성의 임신에 대한 인식은 타지로 도피해서 출산하든지, 마을에 남아서 가족의 수치가 되든지, 둘 중 하나 외에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아스트리드는 전자를 선택하고, 삶의 전환에 맞닥뜨린다. 똑똑하고 책도 많이 읽은 그녀가 피임에 대해 무지한 것을 지금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1920년대 당시 스웨덴은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보다 뒤처진 성 정책의 나라였다. 이는 청교도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스웨덴은 피임 기구 판매는 허용한 반면 콘돔 등의 광고는 법으로 금지했기에, 당시 이런 미혼 여성의 출산은 사회문제 중 하나였다.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성 위생의 중요성을 외치고, 피임에 대한 법률의 이중성을 비판하며 항의했다. 특히 스웨덴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선구자 중에는 노르웨이 출신 엘리세 오테센옌센이 있는데, 그는 여성이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성생활을 누려야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운동은 페미니즘이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은 193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수많은 여성 권익에 시발이 되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이렇듯 전 세계는 물론 스웨덴 사회의 격동기를 겪으며 10대 미혼모로 세상의 편견에 맞섰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늦깎이 작가로 데뷔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20세기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낸 여성이다.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그의 10대부터 20대 중반까지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선택과 성장을 거듭한 6년 여의 타임라인을 통해 그의 내밀한 작품 세계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201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고, 시카고국제영화제에서 외국어영화 부문 관객상 수상, 54회 스웨덴 영화협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녀조연상을 포함 7관왕을 달성하는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주목받았다. 특히 해외 언론과 평단은 특히 ‘아스트리드’ 역을 맡은 배우 알바 어거스트에 대해 “매우 아름답고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연기!”(The New York Times Critics’ Pick), “알바 어거스트의 반짝이는 연기가 아름답게 담긴 진솔한 영화”(New York Times), “힘있고, 반항적이며, 풍부한 알바 어거스트의 연기에 몰입된다”(Chicago Reader) 등 만장일치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삐삐 롱스타킹]의 전설적인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담은 실화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오는 5월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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