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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시선에서 바라본 신선한 영화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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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회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엑스트라 부문 최초 관객상 수상작으로 기억될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감독 테무 니키)는 실제 악성 다발 경화증을 앓고 있는 배우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다발 경화증을 얻기 전에는 촉망 받는 배우였던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은 병세 악화로 인해 시력을 잃고 하지 마비로 기동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은 그의 오랜 꿈이었던 연기와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라는 걸작을 만들기에 이른다. 

 

 

 

 

전적으로 주연 배우인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의 의지에 의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으로 제작되었고, 극중 주인공이 다발 경화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영화적인 상상력에 의해 채워진다. 엄청난 영화광으로 추청되는 야코(페트리 포이콜라이넨 분)는 혈액염을 앓고 있는 연인 시르파와 전화로 원거리 연애 중이다. 유머러스함과 낙천성을 겸비한 야코의 대화는 늘 듣는 이를 즐겁게 하는데, 휴대폰을 통한 가족, 지인과의 대화는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없는 그에게 있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시르파로부터 치료과정에서 자칫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급히 외출 준비에 나선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 연인, 활동지원사는 그의 외출을 급격히 반대하며 말릴려고 하지만 이미 시르파에게 달려가 있는 야코를 막을 수 없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 밖으로 나선 야코. 하지만 불행히도 야코의 상황을 악이용하고자하는 악당들을 만나고 되고 야코는 일생일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간 시각 장애인과 보행 장애인의 삶을 다룬 영화는 더러 있었지만,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처럼 철저히 시각 장애인 입장에서 촬영한 작품이 있었을까? 다발 경화증으로 시력과 기동성을 잃었지만, 그런 주인공의 삶을 쉬이 대상화하거나 동정하지 않는 영화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는 한 남자의 여정을 다소 초점이 나간 뿌연 화면 등 그의 신체적 조건에 맞춰 색다른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대신 영화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위기의 순간, 천연덕스러운 유머러스함에 감추어진 야코의 이면을 보여주며 왜 그가 세기의 로맨스로 평가받는 <타이타닉>을 아직도 보지도 않았던 이유를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이미 그는 죽음마저 무릅쓴 사랑을 하고 있고, 더 나아가 죽음을 완전히 뛰어 넘은 초연한 삶을 살고 있는데 굳이 <타이타닉>을 봐야할 필요성이 있을까. 한편으로는 극중 야코처럼 죽음을 이겨낸 사람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한다. 

 

 

 

어쩌면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는 '야코 같은 사람들도 어떻게든 살려고 하니, 너도 살어.'라는 식으로 관객을 훈계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온갖 역경과 장애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한 야코의 승리를 영화적인 형태로 구현할 뿐. 교훈적인 메시지만 앞설 수 있는 다소 어려운 소재를 시각적으로 흥미롭게 재해석한 연출과 시선이 주목할 만 하다.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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