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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내 딸 서영이. 자존심보다 강했던 서영이의 진정한 독립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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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수순이었다. 얼떨결이긴 했지만,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의 존재를 속이고 우재(이상윤 분)과 결혼한 서영(이보영 분)은 결국 시댁 식구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들키게 된다. 아마 보통 사람들 같으면, 시댁 식구들에게 손이 닿도록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까지 속이고 부정하며 힘들게 얻어낸 재벌가 며느리 타이틀 아닌가. 하지만 서영이는 용서를 빌고 우재네 집에 빌붙기보다 자신이 먼저 우재네 집을 뛰쳐 나간다. 


가진 게 자존심밖에 없는 서영이니까, 자신의 우발적인 거짓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온 필연적 사태에 울며 불며 사정하며 매달리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아버지 삼재에게까지 마음에도 없는 가시박힌 소리를 늘어놓을 때는,,,제발 그 자존심 좀 내려놓으면 어디 덧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도대체 그깟 자존심이 뭐나고.


하긴 사람 좋아도 너무 좋았던 아버지 때문에 우재를 만나기 전까지 굴곡진 삶만 살았던 서영이가 아버지의 정체가 우재 식구들에게 드러나기 전까지 한번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악착같이 살아보고자했던 그녀의 자존심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서영이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 금수저 물고 태어나 고생이라곤 모르고 살아왔던 우재에 비해 서영이는 벼랑 끝에까지 서본 여자다. 학비를 벌기 위해 몸매가 드러나는 옷까지 입고 방송에 출연해야하는 것도 감지덕지로 여겨야했던 서영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 그녀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학비때문에 원하는 의사는 쌍둥이 동생 상우(박해진 분)에게 양보해야했지만, 법조인으로 성공하여 제대로 눈감고 가지못한 엄마의 한도 풀어주고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 보란듯이 살아고픈 마음뿐. 그래서 누구에게도 눈길 한번 안주고 한눈 안팔고 공부에만 전념하려고 했는데, 우재란 남자가 자기 좋다고 계속 쫓아다닌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죽도록 고생만 한 서영이에게 화려한 세계로 인도해줄 수 있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그럼에도 비교적 허황되지 않았던 서영이는, 애초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을 행운이라 여겨 '고아'라고 둘려대고 눈 딱 감고 거절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고아라 더 좋단다. 왕자님이 알아서 유리구두 신겨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할 여자가 또 어디있을까. 그래서 서영이는 우재의 손을 잡고 신데렐라가 되기로 결심한다. 


우재와 결혼한 이후, 서영이의 인생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원하던 사법고시도 합격하고, 성적도 우수해 판사로 임용받는다. 게다가 서영이는 잘나가는 의류회사 대표 며느리에, 남편은 그 회사 부사장이다. 남들은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럽기만 한 인생. 하지만 서영이는 언제나 불안했다. 행여나 자신의 거짓말이 시댁 식구들에게 들키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완벽히 지웠다고 생각했지만...그럼에도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아버지의 존재가 서영이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평생 땅에 묻고만 살 수 없는 비밀은 없다고 하나, 시댁 식구들에게 들키기 전에 서영이 자신이 먼저 우재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면 오히려 일은 쉽게 해결됬을 지도 모른다. 지금 우재를 비롯 가족들이 서영이한테 잔뜩 화가 난 것은, 서영이가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이다. 아무리 아버지때문에 힘들게 살았다해도 그렇다고 결혼을 위해 아버지 자체를 속인 것 자체가 엄청난 불효고, 해서는 안될 거짓말이긴 하다. 아무리 어떤 이유로 그럴싸할 변명을 제시한다하더라도, 살아있는 아버지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천륜에 어긋난 일이고, 그 점에 있어서 서영이는 자유로울 수 없는 원죄가 있다. 


그러나 서영이는, 왜 자신이 아버지의 정체를 속였는지 시댁 식구들 심지어 우재에게도 해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깨끗이 이 집을 나가겠다고만 한다. 분명 아버지의 정체를 숨긴 서영이의 행동은 잘못했지만, 그동안 <내 딸 서영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삼재를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서영이의 입장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린다 해도 자신의 편이 되줄 것 같은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를 알고 나서 180도 변한 모습을 보고 경멸한 서영이가 그 때부터 우재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게 된 과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워낙 자존심이 강한 서영이니까,자신의 잘못은 인정하고, 위너스 그룹 며느리 자리를 깨끗이 포기하되, 그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굳이 위너스 그룹 며느리가 아니더라도 변호사로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서영이기에 재벌 며느리에 연연하진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우재에게 미련있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 놈의 자존심이 막는 것 아닌가 싶더니. 웬걸, 서영이는 우재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다시는 우재네 집으로 들어가긴 싫단다. 


우재를 만나서 그의 재력덕분에 공부에 전념하여 사법고시도 패스하고(물론 서영이의 남다른 영특한 두뇌 덕분이 크다만) 부잣집 큰 며느리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 하지만 서영이는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가 언제나 전전긍긍했고 아버지를 부정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했다. 그래서 그녀는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잘 살았지만 언제나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정체가 들키고 나니, 오히려 더 홀가분해서 좋다는 서영이다. 


아버지 뒷수습만 하고 살다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위급하다는 전화도 끝내 외면한 지긋지긋한 아버지와 절연을 결심한 이후, 허망하게 죽은 엄마 생각해서 이를 악물고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재를 만난 이후에는 우재와 시댁 식구들이 제시한대로 상류층이 되기 위한 메뉴얼에 충실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절연한 이후나, 우재의 아내로 살아갈 때도 서영이는 단 한번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우재를 만나기 전에는 아버지 보란듯이 성공해야겠다는 집념, 그리고 아버지를 속인 이후 건실한 의류회사 며느리가 되었을 때는 언제 들킬지 몰라 숨죽이고 살아야했다. 무엇보다도 눈딱감고 자신을 속이고 재벌가에 입성하여 판사되고 변호사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위너스 며느리를 내려놓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 간의 있었던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정말로 원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잘보이고, 잘 살아 보이는 법칙을 이행한 것뿐이다. 





지금도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가 잘 팔리는 현실을 비추어볼 때, 그간 재벌가 며느리로 살았던 지난3년은 내 인생이 아니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서영이의 모습은, 가진 자만 누릴 수 있는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서영이 속을 썩인 것을 제외하면, 사법고시에 단박에 붙을 정도로 영특한 두뇌에 부잣잡 도련님이 좋다고 따라다닐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갖춘 서영이니까 평범한 여성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서영이는 재벌가 며느리로 입성하겠다는 집념 하에 아버지와 자신의 정체를 부정한 건 아니지만,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 배우자, 가족까지 의도적으로 버리는 악녀들의 삐뚤어진 성공신화는 이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보여지는 단골 소재다. 


그런데 다행이도 서영이는 자신의 의도치 않은 거짓말로 일그러진 그 모든 신기루들이 사라지는 순간, 울며불며 그 허황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두손두발 닿도록 빌기보다 이제라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독립을 선언했다. 


홈 드라마 장르 특성상, 현재는 아버지에게 냉담하게 대하는 서영이도 결국은 아버지의 품안에 안길 것이고, 우재와도 재결합까지는 아니라도 화해할 가능성이 농후해보인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극심해지는 시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불행을 원망하며 뛰쳐나간 자식이 결국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다시 아버지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보수적인 메시지에도 불구. 설령 자신의 거짓말이 자초한 일이라고해도, 자신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고 '노라의 집'을 미련없이 떠난 서영이는 겉으로는 여성 상위 시대를 외치지만, 실상은 여전히 남자 잘 만나 인생 활짝 핀(??)'신데렐라' 이야기가 여성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현실을 냉담히 파고든다. 그것은 허울대만 좋은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그동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거리다가,  이제라도 진짜 자신의 인생을 살겠다는 서영이의 의지였다. 


중년 이상 시청자들이 꽉 잡고 있는 시간대 탓에 아무리 그럴싸할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젊은 세대는 결코 기성세대를 외면할 수 없고, 이해해야해 식의 메시지만 늘어놓을 것이라는 편견을 산산히 부수는 <내 딸 서영이>의 남은 회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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