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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내 딸 서영이. 허찌른 김혜옥의 이혼선언이 가져온 엄청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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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방영한 <내 딸 서영이> 43회 말미에 마술사 배영택(전노민 분)에게 제대로 낚여버린 차지선(김혜옥 분)의 구세주는 역시나 예상대로 서영이(이보영 분)이었다. 자신이 쫓아낸 전 며느리임에도 불구, 간통에 휘말린 아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고자했던 강기범(최정우 분)은 사건 수습 변호사로 서영이를 부른다. 


서영이는 특유의 기지를 발휘, 이 사건이 단순 사기꾼 부부가 차지선의 돈을 노린 범행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된다. 어찌되었던 서영이 덕분에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믿지 않은 남편에게 단단히 화가 난 차여사는 강기범과 이혼을 선언하며 집을 나간다. 


뜬금없이 간통 사건에 휘말린 차여사의 위기는, 서영이와 우재(이상윤 분)의 재결합을 위한 개연성 확보 차원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차여사의 간통 사건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해결되었다. 대신 차 여사가 강기범과 이별 선언하면서 일은 더 꼬여만 간다. 


애초 강기범과 차지선은 사랑없는 정략 결혼으로 이뤄진 사이다. 거기에다가 강기범은 독단적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이기적인 성격은 차지선도 매한가지나, 그래도 감수성이 풍부한 차여사에 비해, 강기범은 날카로운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 그런 사내다. 아내가 간통사건에 휘말렸을 때, 억울하게 간통녀로 몰린 아내를 걱정하기보다 행여나 밖에 소문이 퍼져나갈까봐 이혼시킨 전 며느리까지 끌여들이는게 강기범이다.



 


강기범에게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고 안피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아내는 간통죄에 휘말려 자신과 위너스 그룹의 명예를 추락시킬뻔했다. 그런데 서영이처럼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할 아내가, 자신에게 단단히 실망했다며 집을 뛰쳐나간다. 아내가 집을 나갔음에도 불구, 자신이 아내에게 어떤 중대한 실수를 벌였는지 감지하지 못한 채 눈 깜짝도 안하는 남자. 참으로 강기범스럽다. 


<내 딸 서영이>에서 강기범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태도를 지닌 가장이다. 사업실패와 노름으로 딸에게조차 외면받는 이삼재(천호진 분)와 경제력있는 아내에게 쥐어 살다가 이제 막 독립선언하며 집을 나간 최민석(홍요섭 분)과 달리 그는 국내 굴지의 재벌가 회장에 막강한 재력과 능력을 거머쥔 강한 남자다. 운영하는 사업체에서도, 집안에서도 그는 자신의 뜻대로 군림하고자 한다.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관을 가진 강기범에게 있어서,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의 뜻을 거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자신을 하늘처럼 섬겨야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서서히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참을 수 없었지만, 설날 명절 텅 빈 대저택에서 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사실을 알게된 강기범은 그제야, 수십년간 아내 혼자 겪어야했던 극도의 외로움을 체감으로 느끼게 된다. 


주말 홈 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주제는 가족의 화합이다. 주인공인 서영이는 노름을 일삼는 아버지 삼재와 등 진지 오래이지만, 삼재의 변화에 서영이 또한 서서히 문을 열고 있는 중이다. 반면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재벌가였던 강기범집은 집안끼리 결속으로 오랜 세월 사랑없이 부부생활을 유지해온 강기범, 차지선을 필두로 강기범도 모르는 외도로 낳은 성재(이정신 분)로 한동안 몸살을 앓아야했다. 거기에다가 오랜 세월 부모님의 사랑없는 정략결혼의 폐해를 똑똑이 지켜본 딸 미경(박정아 분)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재벌가 딸인 자신의 정체까지 속여왔다. 


무능을 넘어서 자식들에게 짐만 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서영이만큼은 아니지만, 우재와 미경 또한 권위를 앞세워 아내와 자식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아버지의 존재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다만, 능력있는 아버지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아왔고, 또 윤택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꾸만 가족 내에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하는 시대에도, 강기범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소불위 가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강기범의 남다른 능력과 힘 덕분에 그의 슬하에 있던 아내, 자식들은 밥 굶지 않고, 등록금, 생계 걱정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때문에 강기범은 절대적인 경제권을 내세워 가족들을 압박했고, 철저히 자신의 뜻대로 가족을 이끌고자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한 가족 구성원 내에서 유일하게 경제적 능력이 있었던 가장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변했고, 더 이상 산업화 시대처럼 유일하게 경제권을 쥐고 있는 가장과 어른임을 내세워 아내와 자식들 위에서 군림하고자하는 발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기범 또래 남성들은 집안의 가장과 연륜이 많은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고픈 의지가 강한듯하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 때 어르신들의 반란은 확실히 통했다. 


기존 KBS 주말 홈 드라마를 즐겨보는 기성 세대 애청자들에게 "패륜아"라는 곱지않은 눈초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 <내 딸 서영이>가 기존 주말 드라마와 달리 젊은 세대들로 지지층을 넓힌 배경에는, 서영이와 아버지가 겪는 갈등의 상징성때문이다. 극중 서영이는 재능있고 똑똑한 재원이지만, 사사건건 서영이의 발목을 잡는 아버지 때문에 이루고 싶은 꿈이 좌절되는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자신의 거듭되는 괴롭힘에 절규하는 딸의 눈물을 보고 정신차린 아버지는 그동안 딸을 힘들게했던 지난날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 이른다. 

아무리 못난 부모라고해도, 자식은 결코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가부장적 사고관으로 비추어볼 때, 끝내 부모를 등진 서영이는 호로 자식에 가깝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를 버린 서영이의 불효를 탓하기 보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을 수 밖에 없는 서영이의 피치못할 사정을 촘촘히 그려낸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이해해야하는 서영이의 희생만 강조하기보다, 달라진 삼재를 통해 기성세대 또한 자식 세대에 발맞춰 나아가야하는 인식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서서히 달라진 모습으로 자식들과 한층 가까이하고자하는 삼재와 호정이 아버지 민석과 달리 경제력을 앞세워 막강한 가장 위치를 공고히하고 있는 기범은, 오직 아내와 자식들의 복종만을 강요한다. 당연히 기범에 대한 가족들의 반발은 나날이 커질 수 밖에 없으며, 더 이상 기범의 가부장적 가족 운영에 참을 수 없었던 아내 지선은 집을 나간다. 그리고 아버지 닮아 독단적인 성격이 고민이라는 우재 또한 집안의 우화를 자초한 아버지의 독선적이고도 이기적인 태도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 밑에서 여유롭게 자라, 한번도 자기보다 어려운 이 사정 고려하는 법 모르고 자랐을 법한 우재가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한 것은, 서영이와 헤어진 이후, 그녀의 아버지인 삼재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삼재와 서영을 통해 한순간 직장 잃은 가장의 비애와 가족들의 눈물을 알게된 우재는 기범에게 악감정을 품고 마술사 배영택을 시켜 자신의 어머니 차여사를 간통녀로 몰고간 협력업체 사장을 흔쾌히 용서한다. 기범은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우재에게 화를 내지만, 서영이와 삼재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으로 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우재는 협력업체에 몸담은 직원들과 가족들 등 여러 목숨을 살린 선의를 베풀었다. 


간통녀로 몰릴 뻔한 차지선의 에피소드는 분명 서영과 우재 가족들을 다시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전개를, 서영이와 우재 가족들의 재결합 수준에서 엉성하게 마무리짓는 단순한 수습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서영이를 부르는 촌극을 벌이긴 했지만, 차여사의 이혼 선언으로 이어진 혀를 찌르는 의외의 전개는 어쩌면 서영이, 삼재와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던 강기범의 가부장 판타지의 허울을 한꺼풀씩 벗겨 내려간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도 요지부동이라는 우재의 회의적인 반응과 달리,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어." 하면서 예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삼재의 변화를 떠올리는 서영. 분명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무작정 가족들을 짓누르기만했던 강기범은 변해야하고, 또 변할 것이다. 서영이의 말대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도저히 구제불능일 것 같은 서영이의 아버지도 환골탈태하지 않았나. 


무작정 자식 세대의 어른 세대의 복종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의 허심탄회한 이해와 포용을 강조하는 드라마 <내 딸 서영이>. 그 어느 때보다 세대갈등이 극심해지는 시대, 명확한 해법은 가져다 주진 않더라도, 한번쯤 나의 부모, 혹은 자식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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