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스토커. 할리우드에서도 통하는 박찬욱 감독의 저력

반응형




<공동경비구역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으로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미국 할리우드 입성작. 일단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정보만으로도, 큰 기대를 걸었지만 과연 할리우드에서도 그의 남다른 연출력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사뭇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명실상부 최고의 감독이었고, 제작사 측에서도 한국에서 온 거장이 마음껏 자신의 장기를 펼칠 수 있게 최대한 배려를 한듯 하다. 때문에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미국 할리우드 데뷔작이라기보다, 할리우드 자본에 유명 배우들과 함께한 박찬욱 감독의 미국 로케이션 작품에 가까운 인상이다. 




이제 갓 18 살에 접어든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프스카 분)는 새하얀 장미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가졌다.  그 누구보다 영민했던 소녀가 사랑했던 아버지는 그녀의 열여덟 생일에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고, 대신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꼭 닮은 삼촌 찰리(매트 구드)분이 소녀 곁에 찾아 온다. 오랜 세월 인디아 아버지와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던 소녀의 엄마 이블린(니콜 키드먼 분)은 젊고 잘생기고 다정다감하기까지한 삼촌에게 끊임없는 호감을 보이지만, 인디아는 갑자기 자신 곁에 불쑥 찾아든 삼촌을 경계한다. 


극 중 인디아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소녀다. 삼촌이 나타난 이후, 찰리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그녀의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보고도 믿지 못할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소녀는 온통 검붉은 두려움으로 둘러 싸여있다.




우리나라 미드팬들에게 '석호필' 예명으로 더 유명한 <프리즌 브레이크> 웬트워스 밀러가 각본을 맡았지만,엄마와 삼촌, 그리고 삼촌과 조카라는 근친상간을 연상시키는 소재는 박찬욱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 점에 있어서 <스토커>는 완벽히 박찬욱 영화다. 하지만 <스토커>는 근친상간, 복수를 넘어 어른이 되어 진정으로 자유로워 싶어하는 예민한 소녀의 성장기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존재와 맞서 싸워야하는 험난한 과제에 맞서야한다. 


타고난 영민함과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친히 전수받았던 사냥의 기술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소녀가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택한 방식은 '적과의 동침'이다.  후반부 몇몇 장면 빼고 이제 막 소녀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려고하는 인디아의 괴이한 성장통을 두드려지게하는 것은 온전히 소리의 몫이다. 남들보다 멀리 보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다는 소녀가 가진 특별한 재능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귀로 들려주고자하는 음향 효과는 불안감을 증폭시킴은 물론,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 않게 하는 중요한 도구다. 




소녀는 삼촌이라고 다가온 남자를 끊임없이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엄마와 삼촌의 다정한 모습에 복잡미묘한 질투를 느낀다. 거대한 '스토커' 저택에 다가온 위협의 진실을 접하면서도,  꾹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디아는 질풍노도의 절정에서 살얼음판을 걷듯이 위태위태하다. 열여덜 소녀가 감내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련의 사건 속에서 혼란과 불안에 동시에 빠진 여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터치는 오롯이 정정훈 촬영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공이다. 




스토커 가족의 비밀을 둘러싸고, 쉴틈없이 이야기가 오고가지만 깔끔한 편집과 더불어 스토리 자체는 박찬욱 영화치곤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 전작에 비해 한층 우아해지고 세련된 영상을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한 박찬욱 특유의 잔혹 미학과 정교한 연출력은 다소 밋밋해보일 수 있는 이야기에 예술성을 더한다. 역시 기대했던대로 박찬욱 감독의 저력은 할리우드에서도 완벽히 통했다. 



한줄 평: 새하얀 장미처럼 날카롭고 아름다운 소녀의 특별한 성장기. 박찬욱 감독의 저력은 할리우드에서도 완벽히 통한다.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