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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부리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발 없는 새를 위한 기억의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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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같은 대학원에 다니는 학우들과 각자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었다. 영화를 전공하는 20대 후반 학생들이라 그런지, 영화에 대한 취향은 거의 비슷했다.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첸 카이커 감독의 장국영 주연 <패왕별희>를 좋아하고, 양조위, 장국영을 좋아하다고 토로한 학생들. 56년생의 장국영은 자식뻘인 80년대에 태어난 영화학도들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최고의 스타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03년 4월 1일. 홍콩 전역에 사스가 창궐하던 잔인한 봄날.  마음이 피곤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어,  발 없는 새처럼 하늘 위에서 뛰어 내린 장국영의 이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 





장국영은 80, 90년대를 살았던 이들의 추억의 한편에 자리 잡는 당대 최고의 아이콘이었다. 주윤발, 장국영 주연의 <영웅본색>을 보고 두 손에 모형 권총을 장전하며 액션키드를 꿈꾸던 아이들은 어느덧 총 대신 가족이 생계를 양 어깨에 짊어진 중년이 되었고,  <천녀유혼>의 장국영과 왕조현을 이상형으로 꼽던 소년 소녀들은 홍콩 배우 대신 K팝 아이돌에 열광하는 아이들의 부모로 나이 들어가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금 장국영을 새록새록 추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름 하여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작년 국내에 개봉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에서 빌려온 듯한 제목은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스타 장국영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홍콩, 액션 영화에 대한 조예가 남다른, 책의 저자 씨네 21 주성철 기자는 그간 자신이 수집해온 장국영 관련 자료를 정성껏 추슬러 배우 장국영을 그리는 소중한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주윤발 주연 <첩혈쌍웅>, <영웅본색>을 보고 액션 영화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는 주성철 기자답게, 그 시절 최절정 인기를 누린 홍콩 영화 중심의 한복판에 있었던 장국영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손길은 장국영의 연기만큼이나 섬세하면서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리 알려지지 않는 장국영의 신인시절부터, 생전 장국영이 즐겨 찾던 홍콩 모처의 레스토랑까지 소개되어있는, 한 번도 장국영과 인터뷰한 적이 없다는 주성철 기자의 장국영 사랑에 고개가 저절로 숙연해진다. 






책의 첫 대목에서 여전히 장국영이 없는 홍콩을 마주하기 힘들다고 토로할 정도로 장국영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저자는, 그와 마찬가지로 장국영을 사랑했던 우리들을 위해 장국영과 함께한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시절을 꼼꼼히 더듬어간다. 


장국영이 떠난 이후 홍콩 영화계가 네모에서 세모가 되었다는 오우삼 감독의 비탄처럼, 홍콩 영화에서 장국영이 떠난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온다. 장국영이 활동했던 80, 90년대와 다르게 한국 대중들은 그 때처럼 홍콩 영화를 즐겨 보지도, 홍콩 스타들에 열광하지 않는다. 





굳이 장국영 부재 외에도 오우삼, 서극, 왕가위 등을 잇는 스타 감독의 부재. 이소룡, 성룡, 이연걸,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양조위, 주성치, 왕조현, 임청하, 장만옥으로 맥이 끊겨 버린 톱 배우 라인업은 과거 화려했던 홍콩 영화의 씁쓸한 추억만 곱씹게 할 뿐이다. 


이제 장국영은 세상을 하직하고, 그가 없는 홍콩 영화계는 여전히 <동사서독>의 구양봉처럼 황량하게 방황 중이고, 그를 사랑했던 우리들은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 하지만 우리 기억 속에 46세 장국영은 여자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남자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장국영이 있었기에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던 그 시절. 영원한 젊음. 장국영 과의 새로운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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