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의 끊임없는 비판 제기에도 불구, 소위 ‘막장’이라고 불리는 드라마가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막장 드라마는 재미가 있다. 결말이 훤히 보이는 통속적 소재와 자극적이고도 비현실적인 이야기 전개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하는 힘. 어쩌면 왜곡된 극적 설정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검은 욕망이 ‘막장’을 통해 속 시원하게 발현되는 것도 사람들이 ‘막장’을 욕하면서도 끊임없이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막장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은 비단 한국 일부 주부 시청자들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예술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중산층 부부조차 한 소년이 지은 ‘막장 소설’에 빠져 그들의 평온했던 ‘삶’조차 서서히 파괴된다는 영화 <인 더 하우스>는 웬만한 막장 드라마보다 재미있고 골 때린다. 그런데 이 기상천외한 막장 드라마를 진두지휘한 감독이 무려 세계적인 거장 프랑수아 오종이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겠다.
국립 고등학교 문학 교사로서 남부럽지 않는 중산층 생활을 영위하는 제르망(패브리스 루치니 분).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제르망은 학생들의 형편없는 작문 과제를 읽어야 하는 자신의 인생에 매사 불만을 토로한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투덜거리며 학생들의 과제를 검토하고 있던 중 글쓰기에 범상치 않는 재주를 가진 클로드의 과제를 발견한 제르망. 클로드의 재능을 높이 산 제르망은 클로드에게 자신의 못다 이룬 문학가의 꿈을 대신 이루게 하기로 결심한다.
<인 더 하우스>의 이야기는 제르망과 클로드가 교류하는 학교. 클로드의 연재소설을 기다리는 제르망과 쟝(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분), 클로드의 소설 속 배경이자, 클로드가 꿈꾸는 이상적인 라파의 집 세 갈래로 구성한다.
처음 클로드의 소설을 접한 쟝은 클로드의 글을 보고 다소 외설적이고도 발칙하다고 비판을 하기도 했으나, 적당한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클로드의 소설 속 이야기와 그들의 현실 간의 아슬아슬한 경계는 계속 들추어보고픈 묘한 매력을 뽐낸다.
하지만 클로드를 소설가로 만들고 싶어 하던 제르망의 지나친 욕심은, 자신과 달리 평범한 중산층의 가정을 부러워하던 사춘기 소년의 호기심을 부풀려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학 작품을 만들기 위해 클로드의 일탈을 부추기는 제르망의 모습은 흡사 막장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소설을 통해 자신의 위험한 꿈을 서서히 발현해나가는 클로드를 재촉하는 것은 비단, 클로드의 소설 작업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제르망의 욕망에 국한되지 않았다. 처음에 클로드의 작문을 발칙하고 외설적이라고 비난하다가, 어느 순간 클로드가 쓴 이야기에 제대로 빠져 현실과 소설 속 가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 쟝 또한 당당히 막장의 번영에 기여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촉망받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지만, 제르망이 다니는 학교 아이들의 표현에 의하면 ‘성인용품 전문점’이라 불리는 대목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 중 하나다. 쟝 스스로는 예술작품을 취급한다고 자부하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역시나 ‘외설적’인 막장으로 보일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프랑수아 오종은 ‘예술과 막장은 결국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암시한다.
겉으로 보이면 완벽한 중산층 가정의 균열된 틈을 노리며, 그들의 삶을 훔쳐보는 소년의 눈을 통해 지식인 계층의 위선적이면서도 속물적인 이면을 냉소적으로 담아내는 프랑수아 오종의 세계관 구축은 물이 제대로 올라 있었다.
막장 드라마 속 가상 세계보다 더 움큼하고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는 막장 드라마에 대한 발칙하고도 이성적인 보고서. 역시 막장도 세상 이치에 통달한 거장이 만들면 뭔가 다르다.
한 줄 평: 막장과 예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우아한 서스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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