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달 간격으로 개봉한 <설국열차>와 <엘리시움>은 계급 고착화 혹은 갈등을 영화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이 있다.
물론 계급 갈등을 다루는 두 영화의 시선은 판이하게 다르다. <설국 열차>가 체제 전복을 넘어, 기존 시스템 자체를 아예 파괴하는 놀라운 이상을 제시했다면, <엘리시움>은 한 영웅의 숭고한 행동으로 인해 모두가 잘 먹고 잘 산다는 지극히 평범한 해피엔딩(?)을 보여준다.
따라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한 보따리 안겨주는 <설국 열차>와 달리, <엘리시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다. 게다가 맨 앞 칸으로 가기까지, 도저히 끝을 예상할 수 없는 <설국 열차>와 반대로, 친절한 <엘리시움>씨는 무려 영화 중반에서부터 암시 형식으로 결말을 알려준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던 막무가내 주인공이 갑자기 환골탈태하여,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웅서사시는 더 이상 한국 관객들에게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엘리시움>의 맥스(맷 데이먼 분)이 할리우드에서 흔히 볼 법한 영웅이었다면, <엘리시움>은 유독 사회적 메시지를 띈 한국 영화가 강세인 현 여름 대첩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시움>은 맥스의 영웅적 면모를 치장하는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닉 블롬캠프 감독이 무려 1억 1500만불의 제작비를 써가면서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집중한다.
전작 <디스트릭트 9>을 통해 여전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진행 중인 인종차별 문제를 흥미진진한 SF 장르로 승화시켰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의료민영화’로 레이더 망을 옮긴다.
비교적 명확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메인 테마와 달리,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설정은 그리 매끈하지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줄곧 ‘의료 민영화’ 반대를 강조하는 반면, 정작 그 중심에 숨어있는 계급 고착화와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 구조를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한 것은 오락성이 우선인 상업 블록버스터라고 하더라도,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엘리시움>은 실사를 보는 것 같은 우수한 CG와 뭘 해도 멋있는 맷 데이먼과 도무지 죽지 않은 악당님과의 액션 씬 덕분에 선동 영화라기보다, 극장에서 봐도 돈 안 아까운 블록버스터로 다가온다.
맷 데이먼 나오는 SF 영화 보러 갔는데, 도무지 남 일 같지 않은 ‘의료 민영화’ 폐해를 잠시나마 각인시켜준 것만으로도, <엘리시움>은 제법 괜찮은 오락 액션 영화다.
한 줄 평: ‘의료 민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하는 SF 영웅 서사 블록버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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