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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응답하라 1994.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한 숨고르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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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마음의 문을 열고, 용기내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쓰레기(정우 분)의 고백에서 시작된 달콤한 멜로도 잠시. 쓰레기와 나정(고아라 분)에게는 다시, 왜 쓰레기가 오랜 기간 나정을 많이 좋아했음에도 불구, 왜 쓰레기가 나정에게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던 현실의 벽과 마주해야만했다. 





쓰레기와 나정의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왜 쓰레기가 나정을 사랑함에도, 그녀를 힘겹게 밀어내야했던 지난날의 행동에 고개를 가우뚱 거릴 수 있겠다. 진짜 친남매도 아니고, 하물며 지난날 최루성 신파 멜로극에 단골 손님으로 등장했던 이복남매도 아니고,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쓰레기와 나정이 만나지 말아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쓰레기와 나정의 부모님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단순히 친한 사이를 넘어, 피를 나눈 친형제보다 더 진한 신뢰 관계를 쌓아온 쓰레기 부모님과 나정의 부모님에게 쓰레기와 나정은 친구 자식이 아닌, 친자식과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아무리 나정이 엄마 이일화가 하숙집 아이들을 부를 때, "아들", "아들"을 말끝마다 달고 산다고 하나,  쓰레기는 진짜 친아들로 인식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쓰레기와 나정의 열애는 '내 아들이 내 딸과 사귄다고?'라는 식의 믿지 못할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쓰레기는 오랜 기간 망설었고, 용기내어 오빠가 아닌 남자로 나정과 진지한 만남을 시작한 이후에도 행여나 나정과의 달라진 관계가 동일과 일화에게 들킬까봐 노심초사 했다. 





참으로 슬프게도, 예나 지금이나 동일과 일화의 레이더망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포착되어 있지 않았다. 딸의 남자친구와 마주보며 서있음에도, 우리 딸은 성격때문에 남자가 붙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동일과, 엄마로서 나정이 좋은 남자를 만나길 진심으로 기원하는 일화의 머릿 속에 나정이 남친, 남편 감으로 칠봉이(유연석 분), 하다못해 빙그레(바로 분)의 의대 친구들의 명단이 우르르 열거되는 와중에도 쓰레기는 그저 '아들'일 뿐이다. 


자신을 '친아들'처럼 막역하게 대하는 동일과 일화의 입장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쓰레기다. 하지만 실없이 지나가는 농담이라도, 단 한번도 자신을 사윗감으로 거론조차 하지 않는  동일과 일화의 무심함에 애써 쓴 웃음으로 속상함을 꾹꾹 눌러담는다. 





결국 쓰레기는 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정이를 만나기 위해, 동일과 일화에게 나정이와의 교제 사실을 알린다.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뉴스를 들은 동일과 일화의 반응은 담담 그 자체였다. 부모로서는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교제였다. 그 동안 '아들'로 익숙한 그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일등 신랑감 0순위인 의사에, 자상함까지 갖춘 쓰레기 아니던가. 게다가 누구보다 나정을 잘 알고,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남자라는 점에서, 쓰레기만한 신랑감, 사윗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동일, 일화가 쓰레기를 지나가는 말이라도 '사윗감'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과, 쓰레기가 오랜 세월 나정이와의 특별한 만남 시작을 두고 고민했던 것은, 쓰레기가 나정에게 한없이 부족한 남자로 보일 수 있다는 단순한 외적 조건 결핍에서 비롯된 망설임이나 싫음이 아니었다. 쓰레기와 나정이 동일과 일화처럼 행복한 부부로 결말이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연애 그 이상을 꿈꾸는 남녀 관계는 항상 장밋빛 미래만 생각할 수는 없는 법이다. 


쓰레기 오빠가 너무 좋아서 그와 함께 있는 달콤한 장면만 생각했던 나정과 달리, 동일과 일화, 그리고 쓰레기의 머릿 속에는 혹시나 쓰레기, 나정 두 연인 앞에 놓여질 수도 있는 가혹한 운명의 장난까지 맴돈다 . 만약 쓰레기가 나정의 남자친구로 알게 된 사이라면, 두 사람에게 있어서 가슴 아픈 이별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인연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쓰레기와 나정은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부모님 간에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는 끈끈한 줄로 맺어진 복잡한 관계다. 동일과 일화, 그리고 쓰레기가 염려하는 부분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잘 사귀다가, 안타까운 이별을 맺게 된다면....그런데 그렇다고 쓰레기 부모님과 동일, 일화가 안 볼 사이도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 쓰레기는 어렵게 용기내어 정중하게 동일과 일화에게 나정이에게 교제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더 이상 오빠, 동생이 아닌 공식적인 연인 관계로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 


허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다가가기 위해 오랫동안 뜸을 들이던 쓰레기와 나정은,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허비된다 하더라도, 차마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는 시련과 서서히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도 충분히 바쁘지만, 조만간 인턴이 되면 더더욱 바빠질 지 모른다는 쓰레기는 잠시 나정의 곁을 비워야할 지도 모르는 운명의 장난과 맞서 싸워야한다. 





정말로 힘들게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쓰레기와 나정은 정말로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은 두 사람의 마음만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랑만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장벽에 부딪쳐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산조각 날 때도 있고, 그 과정에서 비롯된 오해, 질투, 미움 등의 감정들로 인해 이별을 고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렇게 남녀 관계는 어렵다. 





하지만 어렵게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풍파를 잘 이겨냈듯이, 쓰레기와 나정은 자신들 앞에 서서히 기다리고 있는 사랑의 장애물을 잘 극복할 것이다. 때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잠시 멈춰서서 숨 고르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다. 언제 어디서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확신과 믿음이 전제하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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