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인어아가씨>, SBS <아내의 유혹>으로 일일드라마, 복수드라마 (엄연히 말하면 막장 드라마)의 여왕에 이어 명실상부 한류스타로 입지를 굳힌 장서희의 복귀작. 장서희의 타이틀만으로도 KBS 2TV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KBS 2TV가 <루비반지>, <천상여자> 등 온가족이 편하게 보기 민망한 자극적인 드라마로 시청률적인 면에서 꽤 재미를 보고 있던 상황. 그래서 장서희의 <뻐꾸기 둥지> 또한 <루비 반지>, <천상여자> 못지 않게 비판은 받겠지만 요즘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시청률에서 함박 웃음을 지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물론 지난 27일 19회가 방영된 <뻐꾸기 둥지>가 기록하는 시청률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각 방송사마다 공을 들이는 미니시리즈도 간신히 시청률 10% 턱걸이로 못하는 판국에 10% 초중반 시청률은 대박은 못쳐도 중박이다. 그리고 한류스타 장서희 덕분에 중국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뻐꾸기 둥지>에 대한 인터넷 여론은 그리 썩 좋지 못하다.
애시당초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만한 드라마가 아니지만(그래도 <뻐꾸기 둥지>와 같은 드라마들은 주요 포털, 커뮤니티 반응과는 달리 상당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경향이 있다) 드라마의 소재, 내용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장서희와 함께 드라마의 주요 인물로 출연하고 있는 이채영의 연기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신랄하기까지 하다.
현재까지 <뻐꾸기 둥지>의 악녀는 이채영이 맡은 이화영이다. 백연희(장서희 분) 때문에 의대생인 자기 오빠가 죽었다고 그녀에게 원한을 품게된 화영은 설상가상 연희가 자신이 한 때 사귀었던 정병국(황동주 분)과 결혼하자 복수를 결심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연희 대신 대리모로 연희와 병국의 아이를 출산한 화영은 이후 외국으로 출국. 몇 년 후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돌아와 병국을 유혹한다.
이런 (막장) 드라마 특성상, 당연히 강렬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악녀가 선한 캐릭터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뻐꾸기 둥지>는 장서희가 단연 메인 타이틀롤임에도 불구, 악녀를 맡은 이채영이 더 주목받는다. 물론 조만간 화영에 의해 모든 것을 잃은 연희가 화영과 병국에게 역복수를 감행한다면 드라마는 오롯이 연희 중심으로 돌아가겠지만, 지금까지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이채영이 맡은 화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내의 유혹> 김서형 정도는 안되더라도 최소한 <루비반지>의 임정은처럼 연기자로서 재평가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일생일대 최고의 좋은 역할을 맡은 상황임에도, 이상하게도 <뻐꾸기 둥지> 이채영에 대한 반응은 싸늘 그 자체이다.
주요 포털 여론만으로 그게 모든 대중의 생각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 네티즌들의 지적하는 이채영의 연기는 참으로 설정한다. 여배우로서 굉장히 훌륭한 자산인 글래머스한 몸매를 가지고 있고, 역할 또한 이채영의 완벽한 몸매에 걸맞게 굉장히 팜므파탈적이고 섹시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정작 시청자의 눈에 비치는 이채영은 남자 주인공이 장서희를 두고 바람을 피울 정도로 그리 치명적이지도 매력적이지 않다.
한국 드라마 악녀의 역사를 새로 쓴 <아내의 유혹>의 김서형이 그랬듯이, 일단 드라마 상에서 착한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여자들은 연기에 대한 내공의 뛰어나야한다. 실감난 악녀 연기로 현실과 가상세계가 쉽게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욕은 많이 먹겠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더 악랄해져서 선한 여주인공을 더욱 불쌍하게 보이게하는 것이 우리나라 일일, 아침드라마 악녀들의 의무이자 본분이다.
그런데 이채영은 보기만해도 눈이 절로가는 섹시한 외모를 지녔음에도 불구, 왜 병국이 연희 대신 화영을 택한 것에 대한 설득력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7년 연기 경력을 무색하게 하는 오버스러운 캐릭터 묘사가 악녀 화영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극중 양가 어른에 의해 조건만 보고 결혼한 연희와 병국이 심각한 권태기를 맞아, 병국이 화영의 치명적인 몸을 보고 뜨거운 바람에 빠졌다고 보면 모를까. 그럼에도 병국이 연희와 이혼까지 결심하며 화영에게 완전히 빠져들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물론 원 시나리오 상에서는 병국이 화영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매력적인 경국지색으로 설정되어있겠지만.
그런데 이채영의 어색한 연기는 차치하더라도, 당위성 없는 화영의 복수는 이화영에 대한 캐릭터를 더욱 난감하게 한다. 연희를 억지로 끌고간 연희 아버지 백철(임채무 분) 때문에 화연과 백철이 탄 차를 무리하게 추격하다가 화영의 오빠가 사고로 죽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화영의 오빠의 섣부른 판단이 빚은 비극일 뿐, 연희 또한 화영의 오빠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에도 불구 탐욕스러운 아버지 때문에 정략결혼으로 불행해진 일종의 피해자이다. 오히려 화영이 칼을 갈아야하는 상대는 연희가 아니라 자신을 단지 엔조이 대상으로만 생각한 전남친 정병국이다. 정 아니면 오빠 사고에 일말에 원인이라도 제공한 백철만 주구장창 원망하던지.
허나 이화영은 허구헌 날 "의사가 되어 우리 집안을 일으켜세울 오빠가 백연희 때문에 죽었어."를 매일 주술처럼 외우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 소위 막장 드라마 대부분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개연성은 커녕, 이유 없는 복수를 남발하긴 하지만, '백연희 때문에 내가 불행해졌어." 하면서 오직 일차원적 사고방식으로 연희에게 총귀를 겨누는 이화영이라는 캐릭터는 실소만 자아낸다. 오죽하면 이화영 혼자 미쳐서 날뛴다는 반응까지 있을까. 물론 이 말도 안되는 설정도 이채영이 정말로 뛰어난 연기로 커버한다면 그럭저럭 볼 수도 있겠다만.
아무쪼록 이화영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백연희가 하루빨리 이화영과 백동주 가족에 대한 복수를 하루라도 빨리 시작했으면 하는 바이다. 이제는 일일 드라마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불륜, 노출, 대리모에 이어 온갖 자극적인 설정은 다 갖다 붙었음에도 불구 파격은 없고 밋밋하기만 하다는 드라마 <뻐꾸기 둥지>가 살아나게 하는 구세주는, 원조 복수의 여왕 장서희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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