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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하늘을 걷는 남자. 사라진 쌍둥이 빌딩 속에서 흐미해지는 꿈의 가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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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맨 꼭대기에 용감하게 올라선 남자의 자기 소재로 시작하는 <하늘을 걷는 남자>(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1974년 당시 전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했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두 빌딩 사이를 밧줄로 연결해서 걸었던 펠리페 페팃(조셉 고든 레빗 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도대체 왜 그런 무모한 일을 벌였나는 질문에 필립(펠리페 페팃의 애명)의 대답은 간단했다. “밧줄 위를 걷고 싶었을 뿐이다.” 체제를 전복시키는데 일조하기 위해 오직 줄에만 의지하여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릴 때 파파 루디(벤 킹슬리 분)이 운영하는 서커스단의 곡예를 본 이후, 줄타기에 푹 빠진 필립은 그 때부터 줄곧 줄 위에 올라서는 외길 인생을 걷는다. 물론 줄타기를 택한 필립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오직 자신의 균형 감각에만 의지하여 줄을 타는 행위는 항상 많은 위험이 뒤따르며, 까닥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리고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줄타기를 허용하는 정부 당국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필립은 쌍둥이 빌딩 사이를 줄로 연결해 그 위를 걷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오랫동안 바랐고 준비해왔던 그의 유일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허무맹랑한 몽상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필립의 노력은 치밀하고도 세밀했다. 그리고 필립은 결국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이루는데 성공을 거둔다. 


줄을 타는 이벤트는 오롯이 필립에 달라있었지만, 필립이 줄 위에 올라서기까지는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이 있었다. 한 개인이 이룬 위대한 업적이라 할지라도, 그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음을,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영화는 은연 중에 힘주어 말한다. 





1974년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완공될 시점에 그 사이에서 줄을 탄 남자의 실제 사연을 다룬 작품인만큼, <하늘을 걷는 남자>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쌍둥이 빌딩이 완벽히 재현되어 등장한다. 필립이 두 개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이에서 줄 곡예를 시도하기 전까지만해도, 쌍둥이 빌딩은 다수의 뉴요커들에게 정이 가지 않는 흉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필립이 뉴욕 하늘의 한복판에서 멋진 곡예를 펼친 이후, 쌍둥이 빌딩은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명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 때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 명소였지만, 2001년 911테러와 함께 무너진 쌍둥이 빌딩에서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도전을 감행한 남자의 일대기를 14년이 지난 지금, 로머트 저메키스 감독이 영화로 만든 저의는 무엇일까. 여러 위협을 무릅쓰고, 필립이 쌍둥이 빌딩 맨 꼭대기에 올라선 이유는 단 하나, 그의 간절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그의 도전을 비웃을 지라도, 자신이 믿는 것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러 들지 않았던 필립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와서 도와준다는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다. 


무언가를 절실히 원한다면,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한다는 것. 원하는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 노력했나, 꿈만 꿀 줄 알지, 그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의 나태함을 영화 속 필립을 통해 돌이켜 바라보게 한다. 





필립이 지향했던 ‘예술’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꿈을 이루는 모든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게다가 요즘은 열심히만 한다고 꿈이 이뤄지지 않는 신계급주의 사회다. 부모가 가진 재력, 신분에 의해 자식의 꿈까지 재단당하는 헬조선에서 꿈을 향하여 달리는 남자의 이야기는 영화에서만 가능한 ‘꿈’인것 같다. 


또한 1974년 필립이 간절히 원하고 바랐던 쌍둥이 빌딩의 27년 뒤의 미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2015년 우리에게 “영원히”로 끝나는 <하늘을 걷는 남자>의 엔딩은 먹먹한 슬픔을 남긴다. 





하지만 쌍둥이 빌딩이 더 이상 우리들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들, 그 사이에 놓여진 하늘을 걷고자 했던 필립의 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월드 트레이드 센터 트윈 타워는 비극적인 사건과 함께 전세계인들의 추억의 뒤안길로 사람들에게 줄타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했던 필립의 도전과 예술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래서 ‘꿈’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 그 속에서도 꿋꿋이 ‘꿈’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설파하는 영화가 더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이맘때쯤 불의의 의료사고로 작고한 고 신해철이 이끌던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가사가 떠올려지던 영화이기도 하다. 10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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