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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물숨. 숨에 따라 생사가 오가는 신비한 이야기와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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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과 최근 여러 영화제를 통해 상영된 김태용 감독의 <그녀의 전설>은 모두 제주도 해녀를 다루었다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극영화인 <그녀의 전설>은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가 사라진 해녀가 곰이 되어 딸 유진(최강희 분) 앞에 나타난다는 판타지적 구성을 보여주었다면, <물숨>은 제주도 우도에 거주하는 해녀들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해녀 경력 수십년에 이르는 베테랑이지만, 물질 하다가 실종된 <그녀의 전설> 속 엄마. 그리고 <물숨>에서 수도 없이 다루는 해녀들의 죽음에서 보았듯이, 바다 속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해녀들은 기꺼이 깊은 바다에 들어가고, 온 사력을 다해 바닷 속 보물들을 채취해 물 밖으로 나온다. 


<물숨>을 통해 알게된 새로운 사실은 해녀들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군, 중군, 하군. 이렇게 세 계급으로 나눠지는데, 계급이 높은 해녀만이 더 깊은 바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엄격한 규칙이 존재한다. 이 계급은 나이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바다에서 견딜 수 있는 숨의 깊이와 길이로 결정된다. 




숨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바다가 결정되는 것은, 목숨하고 직결되어 있는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호흡량에 따라 바다속에서 할 수 있는 역량이 달라지며, 이를 어기면 자칫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수면 아래에서 욕심은 금물이다. 더 많이 채취하고 싶은 욕심에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숨의 한계를 거슬리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물숨’을 마실 수 있다. 


자신이 내쉴 수 있는 숨의 한계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바다가 결정되고, 살기 위해 바다에 들어가지만, 또한 살기 위해 욕망을 절제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통해 <물숨>은 사방팔방 우리를 괴롭히는 욕망의 덫을 내려놓을 주문한다.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바다는 무덤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로 욕망을 다스리면 자신이 가진 능력에 따라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보물 창고가 된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바다로 뛰어드는 해녀의 인생은 경험하지 않아도, 주위에 해녀가 없다고 해도, 책이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녀들이 생과 사를 오가는 것도 극영화인 <그녀의 전설>에서 다뤄진 바 있다. 그렇다면 TV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로 기획, 제작된 <물숨>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해녀들의 고된 일상에서 한걸음 더 깊이있게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물숨>은 해녀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하고,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면 화를 입게 된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해녀들의 삶을 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욕망을 다스리는 법 외에도 바다를 쉽게 떠날 수 없는 해녀들의 애환과 고충 등 7년 동안 해녀들을 담아오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던 <물숨>은 영화 후반부로 갈 수록 <인간극장> 식 휴먼 다큐멘터리 전개를 보여주며, 영화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에 진한 물음표를 남긴다. 그렇다고 7년 동안 쌓아올린 푸티지가 무색하게도 해녀들의 삶을 밀착해서 보여준 것도 아니다. 차라리 해녀들의 개개인의 이야기는 거두절미하고,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그 대가로 바다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내는 해녀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으면, 더 의미있는 다큐멘터리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숨’이라는 다소 신비롭고도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었지만, 그 이상의 이미를 끌어올리지 못한 결과물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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