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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PD 이경규가 간다. 돌아온 양심냉장고.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공익'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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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방영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는 그야말로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센세이션한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이경규가 간다> 덕분에 사람들은 정지선을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인식을 확고히 하게 되었고, 백해무익할 줄 알았던 TV 예능프로그램의 순기능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 <이경규가 간다>를 이끌던 주역 이경규는 자신이 진두지휘하는 MBC every1 <PD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당시 양심냉장고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다. <이경규가 간다>는 당시 프로그램을 만든 김영희PD뿐만 아니라, 진행을 맡은 이경규가 함께 만들었던 역작이기 때문에, 공동 주역 이경규가 해당 프로그램을 리바이벌 한다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 없지만, 이제 예전과 달리 <이경규가 간다>, MBC <느낌표>와 같은 공익 예능 프로그램이 더 이상 시청자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지금, 공익 중의 공익 ‘양심냉장고’를 다시 꺼내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20년 전과 달리, 시민들이 정지선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살짝 궁금하기도 했고, 기대반 우려반으로 지켜본 <PD 이경규가 간다-도로 위의 양심을 찾아서>는 예상과는 달리 정지선을 잘지키는 시민들의 교통 안전 준법 의식 향상에 살짝 흥분하다가, 여전히 꼬리물기가 이어지는 시내 한복판 무법천지에 아쉬움을 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예전보다 정지선을 잘 지키는 시민들이 늘어났다고 하나, 정작 양심냉장고 주인을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촬영 다음날 새벽까지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는 시민을 기다렸지만, (물론 있었지만 아쉽게 해당 차량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며칠 뒤 가진 재 촬영에서 이른 새벽에도 정지선을 잘 지키는 투철한 준법 정신을 가진 한 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이경규가 다시 ‘양심냉장고’ 카드를 꺼낸 것은, 그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PD 이경규가 간다>의 흥행을 위한 일종의 선택이었다. 이경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도로 위의 양심’ 프로젝트를 오래 진행할 계획이 전혀 없었으며, 일회성 아이템으로 그치게 된다. 20년 전에는 ‘양심 냉장고’ 하나 만으로 장기간 방영도 가능했던 히트 아이템이 2016년에는 이경규의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단발성’으로만 머무는 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더 이상 ‘공익성이 강한’ 예능 프로그램이 각광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20년 전 <이경규가 간다> 대성공 이후, <느낌표>를 비롯하여,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 등 공익성이 강한 방송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좋은나라 운동본부> 같은 경우에는 2년 전, 시즌2로 부활하여 방영한 바 있다. 하지만 음주운전자들을 단속하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면서,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느끼게한 지난 날과 달리, 시즌2로 방영한 <좋은나라 운동본부>는 사회 고발 뉘앙스가 더 강했다. 결국 좋은 취지로 재방영한 <좋은나라 운동본부 시즌2> 또한 18회 만에 종영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다시 <PD 이경규가 간다>로 돌아와서, 분명 정지선을 지켜야한다는 인식이 희박하던 시절, 정지선 지키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이경규가 간다>는 그 어떤 정치인도 하지 못했던 교통 준법 의식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 대단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제 더 이상 <이경규가 간다>, <느낌표>, <좋은나라 운동본부>와 같은 방송을 통해 시민의식 향상을 기대하는 공익 프로그램은 더 이상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한다. 돌이켜 보면, 정지선은 잘 지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경규가 간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었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강했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살아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전보다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현상이 당연한 듯이 만연한 지금,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있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정신력 강화나, 시민의식 강화를 요구하는 프로그램의 방영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실소만 자아낼 뿐이다. 그렇다고 요즘 방영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공익’을 등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MBC <무한도전>은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춘 재기발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와중에도, 틈틈히 역사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지난 3월 안중근 특집을 기획한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은 지난 일요일 방송에서 ‘대왕세종 특집’을 다뤄 호평을 받기도 했다. 




<무한도전>, <1박2일> 모두 이전에 방영 했던 ‘공익 예능’처럼 시청자들의 준법, 시민 의식 향상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시청자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 재미있는 놀이나 미션을 통해 보통의 시청자들이 미처 알지 못한 역사를 알리기 위해 방향을 바꾼 것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공익’을 대하는 예능의 접근 방식도 달라야하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또한 ‘공익’이라는 개념 자체도 무조건 시민들의 정신력 개조를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 하려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역사교육과 함께 잘못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 당당히 쓴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2016년에 걸맞는 진정한 ‘공익’이며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다. 교통 안전 확립을 위해 정지선은 당연히 잘 지켜야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 진짜 필요한 시민 의식은 단순히 정지선 잘 지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결국 우리 시청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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