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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로스트 인 더스트. 가족을 위해 먼지 더미에 뛰어든 두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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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집은 대대로 가난했어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저도요. 그 가난이 주위의 있는 모든 이들을 전염시키더군요. 그런데 제 자식은 그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어요.”


형 태너(벤 포스터 분)과 짜고 은행강도를 벌인 토비(크리스 파인 분)는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가족을 위해서.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먼지 더미에 살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원래 ‘Hell or High Water’(어떤 어려움이 닥쳐도)’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던 영화는 <로스트 인 더스트>로 둔갑되어, 가족을 위해 먼지 속으로 기꺼이 사라지는 두 형제 이야기로 탈바꿈하게 된다. 




영화는 태너와 토비. 그리고 그들을 추적하는 경찰 해밀턴(제프 브리지스 분)과 그를 돕는 파트너로 이야기의 두 축이 나눈다. 태너와 토비가 은행 강도를 벌인 것은 은행에 저당잡힌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텍사스 주에 위치한 지역 은행만을 골라서 터는 두 형제의 범행은 어딘가 어설프면서도 상당히 계획적이다. 다소 감정적인 태너 때문에 아슬아슬한 순간을 맞기도 하지만,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여러 은행 지점을 돌며, 소액만 터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결국은 오랜 관록을 자랑하는 베테랑 보안관 해밀턴 손바닥 안이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은행강도를 때려잡는 보안관의 무용담 혹은 그 반대로 거액의 돈을 노리는  범죄자들의 호탕한 액션 활극을 보여주고자 만든 영화가 아니다. 카우보이의 본산지 텍사스 주를 배경으로, 서부극 스타일을 재현한 듯 하나, 적어도 선악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정통 서부극과는 달리, <로스트 인 더스트>는 그 조차의 경계조차 흐릿하다. 그렇다고 은행 강도를 벌이고, 그 과정에 경찰 포함, 무고한 시민을 4명을 죽인 태너, 토비의 범죄를 옹호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악의 축을 꼽자면, 두 형제가 은행 강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게한 은행, 즉 금융자본에 있다. 




2008년 세계적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 위기 사태 이후,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러주었지만, 되레 그들의 삶을 파괴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미국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 하는 단골 소재가 되었다. <로스트 인 더스트>가 진짜 말하고 싶은 이야기도 주택 담보 대출 때문에 궁지에 몰린 시민들의 황폐해진 삶이다. 그렇다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모두 태너와 토비처럼 극단적인 범죄 행위를 벌이지는 않지만, 막대한 대출 이자에 고통받다가, 내 자식에게 만큼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간절한 외침에 고개가 절로 끄덕이게 한다. 여기에, 영화 초반 잠깐씩 등장하는 은행 대출 도로 광고판, 그리고 과거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땅을 약탈한 백인의 서부개척을 빚대어, 수많은 서민들의 삶을 담보로 군림하는 은행들을 비판하는 인디언계 형사의 일침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 탄력을 높인다. 


그런데 금용자본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횡포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정경유착, 더 나아가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에 놓인 민간인이 대통령과의 막역한 친분을 이용해 벌인 게이트(gate)가 온 나라를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한 병신년 대한민국에서는 <로스트 인 더스트>가 원래 영화가 내포한 메시지, 즉 오늘날 미국 사회를 해부하고자 했던 의도와는 다소 다르게 읽힌다. 내 가족을 위해 범죄를 벌였다는 태너의 항변. 그렇다. 지금 수많은 국민들을 분노와 절망에 빠트린 ‘그녀’가 벌인 파렴치한 행위의 상당수가, 그녀의 딸을 위한 특혜에 집중되어있다. 




자신이 계획하고 실행한 범죄 행위 때문에, 역시나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가장이었던 시민이 죽는 것은 안타깝지만, 내 자식이 잘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토비의 변명 혹은 합리화는 그래서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물론 감정적이고 과격한 형 태너와 달리, 이성적이고 차분한 성격의 토비는 강도 행각을 벌이는 중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총으로 쏴 죽인 형을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은행에 저당잡혀 힘들게 살아온 지난날이 애처롭다고 한들, 은행 강도를 계획하고, 그 와중에 사람까지 죽인 그들의 범죄 행위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툭하면 강력 범죄를 일으킨 형 태너와 달리 모범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했지만, 결국은 형과 함께 먼지 더미로 들어간 토비의 씁쓸한 성공 신화는 사회의 룰을 지키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 오던 수많은 시민들의 숭고한 삶을 도탄에 빠트리게 한,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모든 죄를 뒤집어쓴 형의 희생 덕분에 토비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어떠한 형사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관에서 퇴직한 이후, 카우보이의 한 사람으로서 토비를 찾아온 해밀턴은 살아가면서 서서히 그 죄값을 치루게 될 것이라면서, 서부극 특유의 정의 구현과 복수를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안다. 어떤 이유에서든 태너와 토비가 저지른 은행 강도는 용서받지 못하며, 그들을 범죄자로 내몰게한 추악한 자본주의의 횡포도 공범이라는 것을. <Hell or High Water>라는 원제보다 <로스트 인 더스트>라는 한국 수입사에 의해 바뀐 제목이 더 가슴깊게 와닿는, 멜랑콜리한 범죄 스릴러의 뒷맛은 개운함을 남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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