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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걱정말아요. 퀴어영화 돌풍 잇는 옴니버스. 그 중 소월길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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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국 독립영화 키워드 중 하나는 퀴어였다. 지난해 열린 6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위켄즈>를 선두로, 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수상작 <연애담>, 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란히 상영되어 호평받은 <꿈의 제인>, <분장>까지.   지난해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퀴어 영화가 이룬 성취는 괄목할 만하다. 




그리고 지난 5일 이들 영화보다 앞서 만들어진 퀴어 단편 영화 3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걱정말아요>가 개봉하였다. 공통적으로 퀴어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곤 내용은 제각각이다. 처음으로 영화의 문을 여는 <애타는 마음>(연출 소준문 감독)은 현준(이시후 분)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 택시기사 춘길(정지순 분)이 현준과 얽힌 하룻밤 해프닝을 다룬다. 신인감독인 김대견, 김현이 공동으로 연출한 <새끼손가락>은 헤어진 두 게이 커플의 애틋한 재회를 그려낸다. 마지막으로 신종훈 감독이 연출한 <소월길>은 다수의 이성애자들이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애타는 마음>과 <새끼손가락>이 게이 커플들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소월길>은 이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일시적 연대와 충돌, 화해를 조명한다. 그래서 <애타는 마음>과 <새끼손가락>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반면, 극중 주인공들이 끝까지 화합을 이룰 수 없었던 <소월길>에서는 차가운 냉기가 영화 전체를 감싼다. 


완성도 면에 있어서 주목할 작품은 단연 <소월길>이다. 낮과 밤이 완전히 다른 ‘소월길’의 낯선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신종훈 감독의 변처럼 <소월길>에서는 첫 장면부터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속 점순(박명신 분)은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월길에서 몸을 파는 여성이다. 점순이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갓 제대한 아들 용근과 함께 살기 위함이다. 물론 아들에게는 밤에 대리기사일을 한다고 적당히 둘려댔다. 용근은 아무런 의심없이 엄마 점순을 철썩같이 믿는다. 


그 날도 어김없이 소월길로 나선 점순은 길 건너편에서 일하는 은지(고원희 분)가 손님(최무성 분)에게 폭행을 당하자 그녀를 구해준다. 평소 자신과 달리 젊고 예쁜 은지가 소월길에 서있는 것을 의아해 하던 점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은지가 소월길에 나올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된다. 은지는 트랜스젠더였고,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일 소월길로 나온다. 딱 하루만이라도 진짜 여자로 살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하면서 푸념을 늘어놓는 은지에게 점순은 넌 아직 젊고, 예쁘기 때문에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건넨다. 그렇게 영화는 사회적 약자들간의 따뜻한 연대로 마무리짓는 듯했다. 




하지만 <소월길>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 진행된다. 아들 용근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된 점순은 아들이 여자친구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싸고, 용근이 일하는 카페로 달려간다. 하지만 용근의 여자친구가 누군지 알게된 점순은 큰 충격에 빠진다. 참다 못해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손찌검까지 한다. 그런데 용근의 여자친구는 자신을 보자마자 싸대기를 날리는 점순에게 그 어떤 항의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에 빠진 점순을 구해준다. 그간 사람들로부터 차별과 혐오를 받아온 용근의 여자친구, 은지는 그러한 시선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걸 너무나 당연한 척,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은지를 폭행한 취객,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듯 하지만, 막상 트랜스젠더가 내 아들의 여자친구가 된다는 사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점순 모두 은지에게 상처를 준 강도는 똑같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제6회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연이어 호평받은 <분장>에서 주인공 승준은 성소수자 연극에 참여한 계기로, 성소수자 모임에 참여하는 등 성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승준 스스로는 동성애에 아무런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 그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는 이내 자가당착에 휘말리게 된다. 




작년 12월 말 개봉한 <위켄즈>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등장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존경한 나머지, 자신의 아들도 반기문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외국 유학을 보냈던 한 어머니는 몇 년 후 아들의 커밍아웃에 충격을 받는다. 아들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동성애 인권을 위해서 노력한 사실을 열거하지만, 어머니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하다. “그래, 너가 그런 사람들(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너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도 거리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막연한 혐오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동성애,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겉으로는 드러내지는 않는다.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선언한 홍석천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맹활약 중이고, 작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레즈비언인 두 여성이 주인공이다. 작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초청되었던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에서도 트랜스젠더가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한다. 법적으로 동성애를 합법화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동성애 합법화, 성소수자 인권 강화 등에 상당히 인색하다. 그 이전에 성소수자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내 자식, 내 형제 자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고, 그런 사람을 내 가족으로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또한 이성애자들이 가진 편견일 수도 있지만,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에서 오는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과 충돌을 다룬 <분장>, <위켄즈>, <소월길>이 수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사는 것은 성소수자들을 이해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내문제가 되면 다른 입장을 취하고야 마는 이성애자들의 자가당착을 예리하게 짚어냈기 때문이다. 독립, 예술영화의 흥행 기준인 만 명을 돌파하고, 최종 스코어 만 9천명을 기록한 <연애담>에서 동성연인과의 사랑에 적극적이었던 지수(류선영 분)도 정작 부모 앞에서 커밍아웃을 망설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위켄즈>가 화제를 모은 것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극적 완성도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실제 성소수자들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불구, 이들의 얼굴을 가리는 모자이크 처리가 없는 깨끗한 영화(?)라는 부분에 있었다. <위켄즈>에서 게이코러스 지보이스 멤버들의 인터뷰에서도 종종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지보이스 멤버들의 가족들 대부분은 아들의 성정체성은 인정하지만, 대놓고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길 원치 않는다. 게이들이 지보이스 무대에 나선다는 것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지보이스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은연 중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 “나 게이입니다”라는 커밍아웃 선언과 똑같다. 하지만 이들은 용감하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고, 그들의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당당한 노래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위켄즈>, <연애담>, <꿈의 제인>, <분장>, <걱정말아요> 등 작품성을 갖춘 퀴어 영화들의 연이은 돌풍에 힘입어 이제 한국영화계에는 더 많은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출현할 것이고,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영화가 각광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성소수자를 대상화시킨 영화의 등장은 사양한다. 지난해 관객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던 <위켄즈>, <연애담>, <꿈의 제인>, <분장>, 그리고 지난 5일 개봉한 <걱정말아요>가 좋은 퀴어 영화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성소수자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현실을 예리하게, 감각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낸 쾌거에 있었다. 


특히 이성애자들이 흔히 범하는 성소수자들을 향한 모순된 시선을 날카롭게 포착한 <소월길>이 보여준 높은 완성도는 퀴어라는 소재를 넘어 영화적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은지에게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가 아니라, (성매매를 하는) 비밀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점순의 한 마디가 가시처럼 박히는 <소월길>. 이 영화 엔딩에 숨겨진 이면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판단은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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