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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원더 우먼’ 위기의 DC코믹스를 구할 최강의 여전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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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 대성공 이후 DC코믹스와 워너브러더스가 만든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그리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저스티스 리그’라는 큰 그림을 바라보고 야심차게 시작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은 쓰디쓴 혹평 세례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오히려 어린이 관객층을 대상으로 제작한 <레고 배트맨 무비>(2017)가 <배트맨 대 슈퍼맨>보다 훨씬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다는 굴욕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온갖 안좋은 소리를 다 듣던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유일하게 칭찬 받는 존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원더우먼’이다. 




지난 31일 개봉한 <원더 우먼>(2017)은 위기의 DC코믹스를 살릴 구세주로 평가받는 원더 우먼을 위한 단독 타이틀 영화다. 배트맨, 슈퍼맨과 다르게 영화로 제작된 바 없이, 오직 TV시리즈로만 팬들과 만났던 원더우먼의 첫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원더 우먼>이 캐릭터 탄생 이후 76년 만에 영화화 된 것은, 전세계에서 불고 있는 여권신장 운동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DC코믹스와 함께 슈퍼 히어로 양대산맥을 형성하는 마블 스튜디오(요즘은 DC코믹스보다 훨씬 더 잘나가고 있지만)보다 먼저 여성 히어로 솔로 영화가 나왔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솔직히 <원더 우먼>은 극적인 완성도에 있어서 잘 만든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 일단, 여자들만 사는 비밀의 섬에서 공주로 자랐던 다이애나(갤 가돗 분)가 원더우먼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이미 다른 히어로물에서도 여러번 재탕되어왔던 서사다. 원더우먼이 가진 거대한 능력치를 담아내기에 액션신은 지극히 평범하고, 그녀가 상대하는 빌런은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무색하게 유독 약해보인다. 그나마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면, 기존 남성 히어로물과 반대로 영웅과 영웅의 성장을 도와주는 연인의 성별이 바뀌었다는 것.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원더 우먼>은 굉장히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히어로 영화로 다가온다. 




훗날 원더 우먼이 되는 다이애나는 여자들만 살고 있는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의 공주다. 제우스 신의 아들이자, 전쟁의 신 아레스의 공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최강의 능력을 지닌 다이애나는 독일군의 피습에 섬에 불시착한 스티브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 분)을 도와주게 되고, 운명처럼 제1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인 전쟁터에 나선다. 


이동진 평론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원더 우먼>을 두고 ‘DC판 <퍼스트 어벤져>’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제1,2차 세계대전를 거치며 진정한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영웅의 성장기. 마블의 ‘어벤져스’를 이끄는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기를 그린 <퍼스트 어벤져>(2011)와 원더 우먼의 탄생 과정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 <원더 우먼>은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캡틴 아메리카는 인류의 기술과 후천적 요인으로 슈퍼 히어로가 된 반면, 제우스가 만들었다는 원더 우먼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영웅이라는 것. 그리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특별한 약점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존재이지만, 여성의 참정권이 비로소 인정될 정도로 여성 인권이 한없이 미미 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사람들의 눈에 원더 우먼은 그저 예쁜 여자로만 비춰진다. 전쟁터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 활동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상 자체가 원더 우먼이 싸워야할 대상이다. <원더 우먼>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원더 우먼의 활약상을 세심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사실, 수억명의 남자들도 못하는 일을 혼자서 거뜬히 해내는 원더 우먼은 남자, 여자라는 성별을 완전히 초월해 버린 반인반신이다. 그럼에도 여성으로서 가진 능력을 전적으로 활용하여, 남성 히어로들의 단점을 가뿐히 상쇄시키는 원더우먼의 통쾌한 승리는 그동안 적체되어왔던 DC 코믹스의 오랜 부진까지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솔직히 말해서 <원더 우먼>은 영화 자체에서 오는 재미보다 원더 우먼 역을 맡은 갤 가돗, 그리고 원더 우먼의 연인으로 출연한 크리스 파인 배우의 매력에 기댄 바가 크다. 지난 2014년, 자신의 SNS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옹호하는 글을 올린 행위가 심히 걸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갤 가돗은 ‘신의 한수 캐스팅’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렬한 여전사 원더우먼을 십분 구현한다. 특히 갤 가돗의 시원한 웃음이 치명적인 매력포인트로 작용한다. 원더우먼 파트너로 등장한 크리스 파인과의 케미스트리도 좋고, 다이애나(원더우먼)-스티브와의 러브라인이 짧아 아쉽기까지 하다. 요근래 등장한 슈퍼히어로물 중 <원더 우먼>처럼 사랑이야기로 가슴을 애타게 하는 영화가 또 있었을까. 원더 우먼이 펼쳐낼 다른 이야기가 심히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DC 코믹스에 대한 케케묵은 갈증을 해갈해준 원더 우먼의 타이틀 영화는 <원더 우먼>에서 끝나면 안된다. DC 코믹스의 경쟁사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 히어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처럼 시리즈 별로 원더 우먼을 위한 영화가 제작되었으면 한다. 배트맨, 슈퍼맨과 함께 DC 코믹스를 대표하는 히어로 캐릭터이자, 요즘에는 오히려 배트맨, 슈퍼맨보다 인기가 좋은 원더 우먼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앞으로 제작되는 <원더 우먼> 시리즈에서는 갤 가돗과 애틋한 호흡을 보여준 크리스 파인은 나오지 못하겠지만(<킹스맨>의 콜린 퍼스처럼 다시 살아서 돌아올 일도 없겠고) 갤 가돗의 일당백으로 위기의 DC 코믹스까지 구해낸 <원더 우먼>의 다음 활약상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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