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2018). 제목에서 짐작하는 대로 공작원에 관한 영화다. 국가 혹은 기관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공작원들은 항상 죽음의 공포와 맞닿아 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서도 안되고, 조직에 대한 배신은 소리소문도 없는 제거로 이어진다. 공작원을 다른 말로 첩보원, 스파이, 비밀요원, 간첩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소기의 목적을 위해 스파이가 되어 적진에 침투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공작>의 공동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의 전매특허 이기도 하다.
사나이픽처스 영화의 남자들은 자신을 속이는데 능하다. 사나이픽처스 창립작이자, 불세의 히트작 <신세계>(2013)의 이자성(이정재 분)은 본래 경찰이지만 조직의 부름을 받고 스파이가 되어 조직폭력배 세계에 잠입, 정청(황정민 분)의 오른팔이 된다. 형사이지만 투병 중인 아내로 인한 생활고로 박성배(황정민 분)의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는 <아수라>(2016)의 한도경(정우성 분)은 김차인(곽도원 분)의 꾀임에 넘어가 삼중스파이 짓까지 하게 된다. 이 둘과 결은 다르지만 <무뢰한>(2014)의 정재곤(김남길 분)은 범인을 잡기 위해 단란주점 영업상무로 위장 취업 했다가 범인의 애인 김혜경(전도연 분)과 사랑에 빠진다. 거슬러 올라가면, <공작>의 윤종빈 감독이 연출했고,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가 프로듀서를 맡았던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2)도 스파이까지는 아니지만 살기 위해 여기저기 간, 쓸깨에 다 붙으며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남자 최익현(최민식 분)의 이야기 였다.
마초 영화의 명가 사나이픽처스의 작품 답게, <공작>은 배신과 음모가 곳곳에 도사리는 살얼음판 같은 세계 속에서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남성들의 의리가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매끈한 남성영화다. 인연의 시작은 조국의 부름이었다. 국가의 제안으로 첩보원이 된 박석영(황정민 분)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한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안기부 소속 첩보원들이 북측에 의해 죽음을 맞을 만큼 위험천만한 임무 였지만, 타고난 공작원인 석영은 사업가로 위장에 성공하고 마침내 북한 고위 간부인 리명운(이성민 분)과 조우하게 된다.
리명운과 함께 베이징에 파견된 보위부 출신 군 간부 정무택(주지훈 분)은 항상 석영을 경계하며, 때때로 긴장 상황을 조성 하기도 하지만, 명운은 비교적 석영에게 관대한 편이다.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던 박석영과 리명운은 1997년 안기부가 주도한 북풍 기획사건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공동의 목적 하에 일시적으로 한 배를 타게된 두 사람은 목숨을 건 베팅을 하였고, 그들의 도박은 성공적으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상대방의 진짜 정체가 탄로나는 순간 물밑듯한 배신감. 그럼에도 누군가는 애써 눈을 감으며 모르는 척 이 사태가 지나가길 바란다.
‘그들이 나를 배신 했을 때, 그는 나를 형제라 불러주었다.’ 영화 <신세계>를 대표하는 이 유명한 카피는 대한민국 공작원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부의 의리를 다룬 <공작>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평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한 박석영은 조직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직에 의해 버림받는 것은 물론 정체까지 탄로나게 된다.
조직(안기부)이 석영에게 요구한 명령은 대단히 불순하고 비겁했다. 애초 안기부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과 안전을 위한 공작활동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고 하나, 그들이 석영에게 지시한 임무는 조직의 안위를 지탱해줄 수 있는 보수세력의 재집권을 위한 공작 활동이었다. 석영은 고민했고, 결국 조직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조직은 석영을 과감히 버렸고, 당장 그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까지 조작한다. 이것이 석영이 국가를 위해 평생 일한 대가다.
90년대 말,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대북 공작활동을 한 박채서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공작>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해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비교적 침착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여준다. 사실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북풍 공작은 더이상 낯선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아무리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한들,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여준 ‘그들’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나이픽처스 산 남성들의 세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눈에 개개인의 조직원은 필요할 때 맘껏 이용해먹다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기계 부속품에 불과했고, 여기에 강한 회의감을 느낀 남자 주인공은 자신을 형제처럼 믿어주는 적장의 품에 안기거나(<신세계>) 모든 걸 다 불살라 버린다(<아수라>). <공작>은 모든 걸 불살라 버리지도, 그렇다고 브라더를 외치지도 않는다. 애초 박석영과 리명운의 관계는 <신세계>의 정청과 이자성처럼 밑바닥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도 아니요, 서로의 목적이 있어 만난 동상이몽 관계다. 그럼에도 이들은 죽음을 초월한 남성들의 우정과 의리를 보여주었고, 그렇게 사나이픽처스 표 마초 영화의 신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명실상부 한국 영화의 남성성을 굳건히 하는데 일조하는 사나이픽처스 다운 스파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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