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지난 2일 MBC 뮤직토크쇼 <배철수 잼>에 출연한 가수 양준일은 “인기가 사그라들지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건 없느냐?”는 MC 배철수의 질문에 "“인기가 식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전혀 없어요. 왜나하면 저는 당장 서빙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라고 답한다. 한국에서 큰 상처를 받은 후 미국에서 어렵게 정착한 양준일을 다시 불러들인 우리가 그에게 또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던진 질문을 우문으로 만드는 현답.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양준일은 하루하루를 너무 즐기고 싶고 즐기고 있는 천상 아티스트 였다.
지난주 방송에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양준일의 학창 시절과 데뷔 직전 에피소드를 공개해 화제가 되었던 <배철수 잼> 양준일 편 2부의 주요 내용은 그의 험난 했던 데뷔 과정과 한국 생활 적응기 였다.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이하 <슈가맨3>) 등 여러 방송에서 공개된 것처럼 독특한 개성과 남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던 90년대 양준일은 배척의 대상이었다. 당시 한국 방송계는 미국물을 먹은 재미교포 연예인을 선호했지만, 양준일과 같은 화려한 개성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방송국 PD들을 대상으로한 방송 심의에서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돋보였던 양준일만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시대를 너무나도 앞서갔기에 90년대 한국 연예계와 잦은 불협화음을 빚었던 양준일은 그토록 원하던 가수 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했고, 설상가상 유복했던 집안 또한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 와중에도 음악을 향한 꿈을 놓지 않았던 양준일은 다시 가요계의 문을 두드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양준일은 절대 안돼.”라는 야멸찬 반응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양준일은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고 ‘V2’라는 새로운 활동명으로 음악계에 재도전을 시도한다.
V2로 발표한 ‘Fantasy’는 당시 테크노 열풍에 힘입어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후 가수로서 활동이 요원해진 양준일은 오랜 고생 끝에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생각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이후 식당 서빙, 창고 정리 등 가족의 생계를 위한 막노동을 전전하며 살아온 양준일의 삶은 <슈가맨> 탄생에 영감을 준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주인공 로드리게즈와 고스란히 겹쳐진다.
‘가장 슈가맨 다운 슈가맨’ 이라는 평을 들었던 양준일은 지난해 온라인 탑골공원(과거 음악방송 동영상) 열풍이 불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유명 가수는 아니었다. 그의 데뷔곡 ‘리베카’가 여러 방송에서 소개되고 그 역시 한국말이 서툰 재미교포 캐릭터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희화화 되긴 했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지 못했다. 오죽하면 그의 부인조차 90년대 양준일을 마이클 잭슨 흉내나 내는 이상한 가수로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 양준일에 대한 대중들의 편견이 어느정도 였는지 짐작이 갈 정도다.
1970년 음반 발매 당시 관계자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지만 흥행에 실패한 로드리게즈가 대중들의 외면을 받은 건 그가 유색인종(히스패닉)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양준일 또한 그가 90년대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그의 독특한 외형이 가져온 편견 때문이 아니었을까. 엄밀히 말하면 90년대초 시대를 풍미한 연예인이 아니었던 양준일은 <슈가맨3>에 적합한 출연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온라인 탑골공원 내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재소환된 양준일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스타가 되었다.
“제가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무대를 박살 낼 수 있다고 얘기를 한 거예요. (중략) 저도 이 인기가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주변에서 기획사에 들어가야 롱런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롱런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팬들이 원하는 동안만 활동하고 싶어요. 그리고 팬들이 저를 원해야지 무대에 설 수 있구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양준일은 정작 자신을 둘러싼 인기에 완전히 초연한 자세를 보인다. <슈가맨3>에서도 그랬지만, 자신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겨준 한국과 대중을 향한 원망도 야속함도 전혀 없다. 여기에 자신은 팬들이 원할 때까지만 노래할 뿐 언제라도 연예계 복귀 직전 하던 서빙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양준일의 진심에, 그가 한국 대중들에게 또다시 상처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배철수와 이현이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방송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를 잘 믿지 않는다는 배철수마저 감탄시킨 양준일의 선한 열정과 겸손함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아티스트로서 제대로 평가받게된 양준일이 그의 포부대로 현대인의 외로움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음악과 무대를 오랫동안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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