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방영한 <내 딸 서영이> 43회 말미에 마술사 배영택(전노민 분)에게 제대로 낚여버린 차지선(김혜옥 분)의 구세주는 역시나 예상대로 서영이(이보영 분)이었다. 자신이 쫓아낸 전 며느리임에도 불구, 간통에 휘말린 아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고자했던 강기범(최정우 분)은 사건 수습 변호사로 서영이를 부른다. 


서영이는 특유의 기지를 발휘, 이 사건이 단순 사기꾼 부부가 차지선의 돈을 노린 범행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된다. 어찌되었던 서영이 덕분에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믿지 않은 남편에게 단단히 화가 난 차여사는 강기범과 이혼을 선언하며 집을 나간다. 


뜬금없이 간통 사건에 휘말린 차여사의 위기는, 서영이와 우재(이상윤 분)의 재결합을 위한 개연성 확보 차원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차여사의 간통 사건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해결되었다. 대신 차 여사가 강기범과 이별 선언하면서 일은 더 꼬여만 간다. 


애초 강기범과 차지선은 사랑없는 정략 결혼으로 이뤄진 사이다. 거기에다가 강기범은 독단적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이기적인 성격은 차지선도 매한가지나, 그래도 감수성이 풍부한 차여사에 비해, 강기범은 날카로운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 그런 사내다. 아내가 간통사건에 휘말렸을 때, 억울하게 간통녀로 몰린 아내를 걱정하기보다 행여나 밖에 소문이 퍼져나갈까봐 이혼시킨 전 며느리까지 끌여들이는게 강기범이다.



 


강기범에게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고 안피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아내는 간통죄에 휘말려 자신과 위너스 그룹의 명예를 추락시킬뻔했다. 그런데 서영이처럼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할 아내가, 자신에게 단단히 실망했다며 집을 뛰쳐나간다. 아내가 집을 나갔음에도 불구, 자신이 아내에게 어떤 중대한 실수를 벌였는지 감지하지 못한 채 눈 깜짝도 안하는 남자. 참으로 강기범스럽다. 


<내 딸 서영이>에서 강기범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태도를 지닌 가장이다. 사업실패와 노름으로 딸에게조차 외면받는 이삼재(천호진 분)와 경제력있는 아내에게 쥐어 살다가 이제 막 독립선언하며 집을 나간 최민석(홍요섭 분)과 달리 그는 국내 굴지의 재벌가 회장에 막강한 재력과 능력을 거머쥔 강한 남자다. 운영하는 사업체에서도, 집안에서도 그는 자신의 뜻대로 군림하고자 한다.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관을 가진 강기범에게 있어서,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의 뜻을 거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자신을 하늘처럼 섬겨야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서서히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참을 수 없었지만, 설날 명절 텅 빈 대저택에서 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사실을 알게된 강기범은 그제야, 수십년간 아내 혼자 겪어야했던 극도의 외로움을 체감으로 느끼게 된다. 


주말 홈 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주제는 가족의 화합이다. 주인공인 서영이는 노름을 일삼는 아버지 삼재와 등 진지 오래이지만, 삼재의 변화에 서영이 또한 서서히 문을 열고 있는 중이다. 반면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재벌가였던 강기범집은 집안끼리 결속으로 오랜 세월 사랑없이 부부생활을 유지해온 강기범, 차지선을 필두로 강기범도 모르는 외도로 낳은 성재(이정신 분)로 한동안 몸살을 앓아야했다. 거기에다가 오랜 세월 부모님의 사랑없는 정략결혼의 폐해를 똑똑이 지켜본 딸 미경(박정아 분)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재벌가 딸인 자신의 정체까지 속여왔다. 


무능을 넘어서 자식들에게 짐만 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서영이만큼은 아니지만, 우재와 미경 또한 권위를 앞세워 아내와 자식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아버지의 존재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다만, 능력있는 아버지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아왔고, 또 윤택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꾸만 가족 내에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하는 시대에도, 강기범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소불위 가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강기범의 남다른 능력과 힘 덕분에 그의 슬하에 있던 아내, 자식들은 밥 굶지 않고, 등록금, 생계 걱정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때문에 강기범은 절대적인 경제권을 내세워 가족들을 압박했고, 철저히 자신의 뜻대로 가족을 이끌고자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한 가족 구성원 내에서 유일하게 경제적 능력이 있었던 가장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변했고, 더 이상 산업화 시대처럼 유일하게 경제권을 쥐고 있는 가장과 어른임을 내세워 아내와 자식들 위에서 군림하고자하는 발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기범 또래 남성들은 집안의 가장과 연륜이 많은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고픈 의지가 강한듯하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 때 어르신들의 반란은 확실히 통했다. 


기존 KBS 주말 홈 드라마를 즐겨보는 기성 세대 애청자들에게 "패륜아"라는 곱지않은 눈초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 <내 딸 서영이>가 기존 주말 드라마와 달리 젊은 세대들로 지지층을 넓힌 배경에는, 서영이와 아버지가 겪는 갈등의 상징성때문이다. 극중 서영이는 재능있고 똑똑한 재원이지만, 사사건건 서영이의 발목을 잡는 아버지 때문에 이루고 싶은 꿈이 좌절되는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자신의 거듭되는 괴롭힘에 절규하는 딸의 눈물을 보고 정신차린 아버지는 그동안 딸을 힘들게했던 지난날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 이른다. 

아무리 못난 부모라고해도, 자식은 결코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가부장적 사고관으로 비추어볼 때, 끝내 부모를 등진 서영이는 호로 자식에 가깝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를 버린 서영이의 불효를 탓하기 보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을 수 밖에 없는 서영이의 피치못할 사정을 촘촘히 그려낸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이해해야하는 서영이의 희생만 강조하기보다, 달라진 삼재를 통해 기성세대 또한 자식 세대에 발맞춰 나아가야하는 인식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서서히 달라진 모습으로 자식들과 한층 가까이하고자하는 삼재와 호정이 아버지 민석과 달리 경제력을 앞세워 막강한 가장 위치를 공고히하고 있는 기범은, 오직 아내와 자식들의 복종만을 강요한다. 당연히 기범에 대한 가족들의 반발은 나날이 커질 수 밖에 없으며, 더 이상 기범의 가부장적 가족 운영에 참을 수 없었던 아내 지선은 집을 나간다. 그리고 아버지 닮아 독단적인 성격이 고민이라는 우재 또한 집안의 우화를 자초한 아버지의 독선적이고도 이기적인 태도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 밑에서 여유롭게 자라, 한번도 자기보다 어려운 이 사정 고려하는 법 모르고 자랐을 법한 우재가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한 것은, 서영이와 헤어진 이후, 그녀의 아버지인 삼재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삼재와 서영을 통해 한순간 직장 잃은 가장의 비애와 가족들의 눈물을 알게된 우재는 기범에게 악감정을 품고 마술사 배영택을 시켜 자신의 어머니 차여사를 간통녀로 몰고간 협력업체 사장을 흔쾌히 용서한다. 기범은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우재에게 화를 내지만, 서영이와 삼재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으로 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우재는 협력업체에 몸담은 직원들과 가족들 등 여러 목숨을 살린 선의를 베풀었다. 


간통녀로 몰릴 뻔한 차지선의 에피소드는 분명 서영과 우재 가족들을 다시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전개를, 서영이와 우재 가족들의 재결합 수준에서 엉성하게 마무리짓는 단순한 수습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서영이를 부르는 촌극을 벌이긴 했지만, 차여사의 이혼 선언으로 이어진 혀를 찌르는 의외의 전개는 어쩌면 서영이, 삼재와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던 강기범의 가부장 판타지의 허울을 한꺼풀씩 벗겨 내려간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도 요지부동이라는 우재의 회의적인 반응과 달리,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어." 하면서 예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삼재의 변화를 떠올리는 서영. 분명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무작정 가족들을 짓누르기만했던 강기범은 변해야하고, 또 변할 것이다. 서영이의 말대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도저히 구제불능일 것 같은 서영이의 아버지도 환골탈태하지 않았나. 


무작정 자식 세대의 어른 세대의 복종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의 허심탄회한 이해와 포용을 강조하는 드라마 <내 딸 서영이>. 그 어느 때보다 세대갈등이 극심해지는 시대, 명확한 해법은 가져다 주진 않더라도, 한번쯤 나의 부모, 혹은 자식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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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서영이> 차지선(김혜옥 분) 여사는 외롭고 쓸쓸하다. 유력가 정치인 딸로 강기범과 정략 결혼한 차여사는 국내 굴지의 패션업계 위너스가의 사모님으로 남부럴 것 없이 잘 살아왔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하늘은 차지선 여사에게 재벌가 사모님이란 화려한 타이틀을 안겨주었지만, 대신 남편의 사랑 결핍에서 비롯된 깊은 외로움을 앓게 한다. 


사랑 아닌 집안끼리 조건보고 이뤄진 결혼이다. 차지선 여사처럼 정략결혼은 아니었지만, 주인공 서영이(이보영 분) 쌍둥이 동생 상우(박해진 분)도 애초 호정이가 좋아서 한 결혼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호정이의 바람대로 그녀를 사랑하고자 노력이라도 보이는 상우와 달리, 매사 카리스마로 일관하는 강회장은 차여사에게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함께해온 부부들이 대부분 겪는 권태기라고 보기에, 강기범은 애초 차 여사를 자신의 아내, 아이들 엄마 그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돈은 풍족히 주지만, 사랑은 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차지선은 언제나 외로웠고 허전했다. 외로움에서 생긴 허기는 명품 싹쓸이 쇼핑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친구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타고난 공주였던 차지선 여사에겐 그녀와 함께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조차 많지 않다. 


그래도 차여사 곁엔 세상 더할 나위 없는 아들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다정한 연인인 성재(이정신 분)이 있었다. 그러나 성재에게 친엄마 윤실장(조은숙 분)이 나타나면서 성재와 거리감을 둔 지도 오래다. 설상가상으로 차지선을 다독일 수 있는 서영이마저 큰아들 우재(이상윤 분)과의 이혼으로 차여사 집을 떠났다. 으리으리한 궁궐 안에 덩그라니 홀로 남게된 차여사는 진정으로 마음 붙일 곳도 기댈 곳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스트레스 해소차 드럼을 배우기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 준수한 외모에 다정다감하기까지한 마술사(전노민 분)을 만났다. 거듭되는 우연 속에 마술사 배영식과 친해진 차여사는 실로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생기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행복했던 나날도 잠시. 차여사에게는 우울했던 인생에 활기를 되찾아줄 잠시의 가벼운 일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매번 차여사에게 호의를 베풀던 마술사는, 차여사의 돈을 보고 흑심을 품은 제비였다. 한 때 친엄마와 만나는 성재를 보고 낙담하고 있던 차여사에게 아름다운 인연의 이치를 일깨워주던 마술사는, 정작 차여사가 만나서는 안될 최악의 인연이었다. 


차여사에게 타로점을 봐드리겠다면서 부군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면서 콘서트 티켓을 건내던 마술사는 자신의 흑심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곱게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차여사는 마술사의 검은 속셈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은 마술사가 계획하는 대로 간통죄에 휘말릴 처지다. 





독심술을 빙자하여 외로운 귀부인들의 심장을 노리는 제비에게 제대로 낚여버린 차지선의 위기는 예상 대로였다. <내 딸 서영이>의 제작진이 특별 출연한 전노민에게 기대했던 바는 차지선에게 위기를 안겨주어, 그걸 계기로 서영이를 다시 차여사의 집으로 불러들이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차지선을 꾀어내기 위한 배영식의 작전은 그 검은 속셈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어설펐다. 하지만 고귀하게만 자란 나머지, 한 번도 집밖에 나온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 누구에게도 기댈 상황도 여의치 않았던 차지선 여사는 너무나도 쉽게 제비가 미리 쳐놓은 그물에 휘말린다. 


몰라도 너무 몰랐고,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 역시나 드라마에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선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몸에서 낳은 자식보다 더 사랑했던 성재의 친엄마 등장, 그리고 믿었던 며느리 서영이가 안겨준 충격으로 코너에 몰리던 차여사를 잠시나마 위로한 마술사는, 차여사가 마술사를 만나기 직전 겪었던 일종의 배신감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우연을 가장하여 자신에게 다가온 마술사가 안겨줄 비극의 전초전도 모른채, 차여사는 그 마술사 때문에 잠시나마 행복했고 설렜다. 상냥한 미소로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달려드는 이조차 외롭고 쓸쓸했던 은둔자 차여사에겐 오랜만에 마음 터놓고 지내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마술사다. 그렇기에 마술사의 가시에 찔려버린 차여사는 예전에 입은 가슴 속 상처에 덧입혀 더 깊은 상실감과 배신감, 모멸감을 경험한다.  거기에다가  본의아니게 차여사에게 상처를 주었던 성재와 서영이와 달리 차여사 뒤통수를 친 마술사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고의적이다. 





그동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을 제외하곤, 부모 잘만나 아무 근심 걱정없이 호의호식 자라온 대가로 보기엔 연이어 믿었던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차여사가 딱하게 보여질 정도다. 하긴 강기범 부부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안겨주었던 서영이를, 주말 가족 드라마 전형적인 공식대로 다시 우재와 재결합시킬려면 차여사 혹은 강기범을 궁지에 몰아넣는 방법 뿐이다. 


현실에서는 그저 부러움과 질투로 점철된 재벌가 사모님일 뿐인 차지선이 이 드라마에서만큼은 유독 안쓰럽다. 어느 드라마에서나 지겹도록 많이 보아온 뻔한 설정임에도, 말도 안되게 마술사와 간통으로 오인받아 경찰서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황당함과 동시에 자신에겐 진정한 친구조차 허락되지 않구나하는,,,체념과 허망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차지선의 눈빛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의 차여사는 훤히 보이는 제비의 속셈에 제대로 걸려들정도로 위태로웠고 외롭고 쓸쓸했다. 결국 은둔자에서 벗어나려하다가, 간통녀라는 혹만 붙인 차지선 여사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그녀의 억울함을 감싸줄 이는 예나 지금이나 서영이밖에 없다. 사실 차여사가 제비에게 휘말리는 부분은 억지스러워 실소가 나오긴 하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 사람에게 치유받기도 하지만 결국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는 메시지는 효과적으로 전달된 듯하다. 그 또한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기획된 보수적 홈 드라마 고질병의 재림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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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글쓴이는 <내 딸 서영이>란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다. 아니 극단적으로 말해, 이런 류의 일일연속극, 주말연속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극적인 상황을 요구하는 드라마 특성상 등장 인물들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한 설정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드라마의 갈등 전개 부분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일어날까 말까한 극단적인 설정이 빈번하다. 보통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는 사건을 다루니까, 그래서 '드라마'라고 하나, 개연성은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오직 국면 전환을 위해 뜬금없는 '막장 요소'가 나오면 괜스레 피로도만 쌓인다. 


사실 <내 딸 서영이>는 그 어떤 주말 연속극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작가가 <천년의 유산>, <검사 프린세스>, <49일>으로 필력을 인정받은 소현경 작가다. 뻔한 인물 구도, 갈등이면서도 상식적인 범위에서 만날 반복되는 익숙한 구도로 진행된 드라마의 통념을 기분좋게 깨부시는 소현경 작가의 필력은 콘크리트 시청률을 자랑하는 <내 딸 서영이>에서도 통할 것이라 믿었다. 실제 <내 딸 서영이> 전작이 주말연속극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기에 드디어 만날 거기서 거기 였던 KBS 주말 연속극이 변화를 시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부모님이 이 드라마만큼은 매주 빠짐없이 보시기에 어쩌다 옆에서 몇 번 지켜본 <내 딸 서영이>도 결국은 일일극, 주말극에서 수도없이 반복되는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사실 설정만 놓고 보면 <내 딸 서영이>는 기존 막장 연속극과는 확실히 급이 다르다. 분명히 서영(이보영 분)에게는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를 피하고픈 충분한 원인이 있었고, 결혼할 우재(이상윤 분)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것도, 그럴 만한 상황이 있었다. 서영을 둘러싼 비밀을 알게된 우재가 180도 바뀌어 싸늘한 남편이 된 것도 그 상황 자체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등장인물들간의 갈등을 과도하게 몰아붙인다. 이럴 땐 지는게 이기는 거라고 어느 한쪽이 굽히고 들어가면 오히려 쉽게 해결될 문제임에도 불구,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 서영과 우재 부부는 서로의 진심을 왜곡 해석하여 더더욱 갈등 요소를 증폭시킨다. 


가뜩이나 <내 딸 서영이> 메인 커플 서영, 우재가 지지부진, 거기서 거기 냉전으로 피로도만 늘리는 사이, 이제는 뜬금없이 우재 동생 성재(이정신 분)의 출생의 비밀이 갑자기 툭 튀어 나왔다. 애초 성재는 강기범 회장(최정우 분)과 차지선 여사(김혜옥 분) 집 대문 앞에서 업어온 자식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 시청자들은 성재가 평범한 업둥이(?)아닌 강회장과 강회장 비서 윤소미(조은숙 분)이 불륜으로 낳은 자식임을 훤히 알고 있었다. 오직 차여사님만 이 끔찍한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강회장의 아들을 낳자마자 강회장 대문 앞에 아이를 맡긴 윤소미는 그 뒤에도 꾸준히 강회장 비서노릇을 하며 강회장과 차여사, 성재의 주위에 얼씬거린다. 아니 남편의 애를 낳고 그 애를 자기에게 맡긴 것에 모자라, 그 사실을 감쪽같이 속이고 수십년을 남편의 비서랍시고 살아왔으니  이 정도면 남편에게 이혼 요구는 기본, 위자료도 두둑히 받아낼 법도 하다. 


재벌가의 혼외 자식 문제는 더 이상 막장 드라마의 엑기스로만 치부될 수 없을 정도로 실제로도 종종 들려지는 소식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 딸 서영이>는 성재의 출생의 비밀을 통해 무늬만 화려한 가족을 빙자한 상류층의 허세를 비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보기에 우리나라의 대부분 드라마들은 재벌가의 출생의 비밀에 많은 공을 들인다. 드라마를 너무 보다보면, 나도 혹시 재벌의 버러진 자식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왜 그리 숨겨진 재벌가 아들, 딸들이 많은거지. 그 중에서 출생의 비밀의 갑을 꼽자면, 단연 <메이퀸>이다. 자신의 어머니를 강탈한 웬수가 알고보니 자신의 진짜 아버지라니...이것보다 더 코미디는 있을 수 없다..(그럼에도 시청률이 꽤 잘나왔다..쩝)





다시 <내 딸 서영이> 삼재와 차여사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 딸 서영이>를 즐겨본 시청자분들은 안다. 차여사와 성재가 얼마나 돈독한 사이인지. 성재는 그 때까지 차여사의 뱃속에서 나오지 않은 입양된 자식이었지만, 차여사는 우재, 미경이보다 성재에게 더 많은 공을 들이고, 더 많은 모성애를 부여한다. 워낙 똑똑하고 잘난 우재, 미경이와 차여사와 놀아줄 시간조차 없긴 하지만 차여사는 성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성재 또한 공부를 못하고 연예인한다고 강회장 내외 속을 박박 긁어놓은 것빼면 차여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친구같은 아들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우리 성재가...알고보니 강회장 자식에...그것도 생모는 강회장의 오랜 비서 윤소미란다...이런 꼬리가 아홉달린 여우보다도 더 요망한 년.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하는 차여사는, <내 딸 서영이>에서 길이길이 남을 오열을 터트린다....아마 차여사는 뒤늦게 알은 남편놈의 불륜보다, 사랑하는 아들 성재가 남편의 혼외 자식. 그것도 윤비서 아들이라는 것에 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강회장 아들이 아니라서 좋았는데...."


<내 딸 서영이>초반만 해도 차지선 여자는 국회의원 3선을 지낸 명망있는 집 딸로 세상물정 모르고 곱게 자란 철없는 공주였다. 뭐 하나 부족함없이 자랐으니 당연히 자기밖에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그녀가 아무런 배경없는 서영을 곱게 며느리로 받아들일리 없다. 게다가 자기완 다르게 우재의 사랑받는 서영에게 배가 아프기 까지 한 차여사. 그래도 명문가 출신인데 대놓고 시집살이를 시킬 수는 없고, 그래서 그녀는 귀족출신답게 우아하게 며느리를 갈군다. 그럼에도 수십년 가량 남편의 싸늘한 눈길을 견뎌내야했던 지선의 지독한 외로움과 허전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예순이 다된 나이에도 아이들의 엄청난 등록금과 퇴직 압박에 시달리는 남편 때문에 힘겨운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또래들과 달리, 국회의원 아버지 만나 지금까지도 왕비처럼 곱게 살고 있는 차지선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먹고 사는게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해지고 있는 지금, 상위 1%로서 잘먹고 잘 사는 그녀와 같은 부류에게는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는 줄 알았다. 


어쩌면 먹고 사는데 지치지 않았으니까, 남편의 사랑이 고픈거고, 집안 배경 안좋은것 빼곤 머리 좋아 판사까지 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며느리가 못마땅스러운거겠지.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차지선에게 뒤늦게 날라온 날벼락은 그녀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을 산산조각 부수어낸다. 


허영심이 상당하긴 하지만, 차지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가정'이었다. 결혼 이후 자신을 '평생 연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남편 강회장이 불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가정'을 지켰고 많이 사치스럽고 신경질적인 것을 빼면 아이들 둘다 잘 키우고, 호스트바도 안가고, 재벌 아내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국회의원 자녀 출신 재벌가 아내이기 때문에 분수에 맞는 사치가 현실적으로 보여질 정도다. 


그런데 강회장은 참 보기 좋게 차지선을 물먹인다. 혼외자식은 하룻밤 실수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허나 강회장 아이까지 낳은 여자가 꽤 오랜 세월동안 강회장 옆에서 꼬리 숨기면서 비서 노릇을 해왔다는 것은 같은 여자로서도 참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음이다. 이건 불륜으로 깨진 부부간의 신의를 넘어, 차지선 하나를 제대로 '바보'만들어 놓은 것이다. 


수십년 동안 숨겨온 모욕에 '멘붕'이 찾아온 차여사는 이 어처구니 없음에 깊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곧바로 강회장에게 협의이혼 서류를 작성한다. 그리고 차여사는 그토록 자기몸처럼 사랑했던 성재마저 쫓아낸다. 차여사 찾아 달려온 성재에게 건낸 지선의 말을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었다. 


"눈매가 엄마 닮았네...."


이런 식으로 그 가증스러운 윤소미 뱃속에 나온 성재에게 상처주고 자기 곁을 떠나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성재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차여사다. 힘겹게 성재를 보내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싫어 더더욱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자학이 거듭된다. 


그러는 와중에 삼재 친모인 윤소미는 이제와서 성재의 엄마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지금까지 성재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던 천하의 윤비서가 이제 성재도 클만큼 컸고, 모든게 다 들통나니 뒤늦게 엄마가 되겠단다. 그래도 성재를 낳은 엄마니까 20년 가량 참아온 모성애가 다시 불붙었다는 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지금 흘려가는 구도로 봤을 땐 참으로 할 말없는 설정이다. 그저 이 황당한 설정을 참고 견뎌내야하는 차지선과 강성재가 안타까울 뿐이다. 단순 회장가의 혼외자식을 낳은 여자가 자신의 아들을 찾는 뻔한 과정을 넘어, 수십년동안 강회장 곁을 지켜온 비서가 알고보니 회장 부인이 애지중지 기른 입양아의 친모라니....이러한 상황에서 이성을 찾고 침착할 수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일 정도다. 





회장의 혼외자식까지 낳은 여자가 수십년동안 모두의 눈과 귀를 속이고 비서로 오랫동안 회장의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조차 현실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대목이긴 하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니까 가능한 것이지. 하지만 이 억지스러운 대목도 남편의 뒤늦은 외도와 혼외자식 정체에 배신감을 느끼고 이성을 잃은 여자를 실감나게 연기한 김혜옥의 연기에 안타까운 눈물만 앞선다. 그동안 손바닥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공주처럼 살아온 죄 치곤...너무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건 단순히 남편이 부인 몰래 바람핀 정도를 넘어선 '농락'아닌가. 





특히나 애써 자기 품에서 애지중지 키워놓은 윤소미 핏줄 성재를 떨어트릴 때 김혜옥이 지었던 서늘미소는 단순 소름을 넘어, 성재를 떼어내기 위해 가슴 속으로 수도 없이 울었을 차지선의 복잡다난한 심경에 보는 이들의 가슴을 숙연하게 한다. 김혜옥이 왜 요근래 수많은 드라마에서 각광받는 배우인지를 입증시킨 명장면. 이게 바로 진정한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몰입도의 끝판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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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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