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 영화계는 전체 관객수만 놓고 보면 풍년이었다. <암살>, <베테랑> 등 천만 영화가 올 여름에만 2편이나 나왔고, 최근에는 <내부자들>이 19금이라는 한계에도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오는 31일 감독판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양적인 성공에도 불구, 중박 영화가 사라지고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점,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스크린 독점 현상 등 한국 영화계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 중에서 지난해에 이어 꾸준히 거론되는 지적은 여배우 기근,실종이다. 





송강호, 황정민, 김윤석, 김명민, 오달수, 이정재, 하정우, 강동원, 유아인 등 남자 배우의 활약이 눈에 띄던 현상과 대조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에서 여배우의 활약이 돋보인 영화는 전지현 주연의 <암살>이다. 하지만 <암살>도 오롯이 전지현 혼자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정재, 하정우 등 남자 톱배우의 비중도 상당했다는 점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영화로 보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히말라야>, <대호>로 대표되는 12월 한국 영화에는 더더욱 여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두 영화 모두 출연하며 여배우의 자존심을 지킨 이는 라미란 뿐이다. 그런데 이 두 영화에서 라미란은 철저히 조연이다. 극에 없어서는 안될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지만, 메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은 아니다. <히말라야> 같은 경우에는 극중 박무택(정우 분)의 아내로 등장하는 정유미의 비중이 후반부로 갈 수록 중요해 진다고 하나, 그녀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보다, 주인공 박무택을 둘러싼 비극을 마무리짓는 역할에 그친다. 


2010년대 들어서 유독 한국 영화에 여배우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한국 영화 시장이 선호하는 장르가 멜로에서 액션,범죄물,스릴러로 전환한 이유가 가장 크겠다. 그렇다고 한국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드라마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국제시장>, <사도>, <히말라야>같이 남성 중심의 서사로 이뤄진다. 보통 여배우들보다 남자 배우들이 가진 티켓파워가 더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최근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의 연인, 혹은 눈요기감으로 전락하거나, 주인공의 각성을 촉구하는 부차적인 캐릭터로 소모되기 일수다. 





멜로와 여성 중심 드라마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 여배우가 설 자리는 딱 세 가지다. 김혜수, 전도연, 엄정화, 전지현처럼 압도적인 인지도를 앞세워 주연을 맡는 스타가 되던가, 라미란, 장영남, 진경처럼 어떤 역할로 같다놔도 맞춤옷을 입은 것 같이 독보적인 연기력을 갖춘 명품 조연이 되거나 아니면 <간신> 임지연, <내부자들>의 이엘처럼 카메라 앞에 속살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한다. 그래도 벗지 않아도, 자신이 가진 독보적인 역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던 <검은 사제들>의 박소담은 요즘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행운아에 가깝다. <베테랑>에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하기 전에, 이미 톱모델로 유명세를 떨쳤던 장윤주는 예외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그렇다고 2015년 한국 영화계에 여배우들의 활약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에 이어, 상업 영화에서 자꾸만 설 자리를 잃어가는 여배우들이 찾은 곳은 흔히 ‘독립영화’라고 부르는 다양성 영화다. 작년 한국 다양성 영화에 <한공주>의 천우희, <도희야>의 배두나, 김새론이 있었다면 올해 다양성 영화를 빛낸 여배우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김민희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보적이고도 독특한 색채를 가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홍상수 감독은 언제나 여자 캐릭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영화를 만드는 몇 안되는 연출가다. 지금까지 문소리, 정유미, 예지원 등과 주로 작업해온 홍상수 감독은 이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김민희와 처음으로 작업하는 변화를 꾀한다. 


데뷔 이후 줄곧 상업 영화만 찍어온 김민희에게도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촬영 당일에 주기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은 그녀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리고 홍상수와 김민희의 만남은 홍상수 감독에게 있어서는 매번 비슷하게 흘러가는 홍상수의 영화가 조금 색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김민희에게는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여성스럽고도 사랑스러운 면모가 잘 드러났던 걸작으로 이어졌다. 





이정현은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그것도 노개런티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상업 영화와 달리 최대한 예산을 아껴야하는 독립 영화의 어려운 상황을 배려한 통큰 결정인 셈이다. 하지만 이정현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선보인 연기는 수억원의 개린터를 줘도 아깝지 않은 명품이었다. 이정현의 열연에 힘입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으로, 벤쿠버, 상하이 등 국제영화제에도 연이어 초청되었다. 또한 이정현이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경사를 누렸다. 청룡영화상이 다양성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시상한 것은 지난해 <한공주> 천우희에 이어 두번째다. 


그 외에도 상업 영화로 제작 되었지만, 비교적 적은 제작비를 들인 <차이나타운>도 김혜수, 김고은 등 여배우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로 꼽을 만하다. 개봉 당시 많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광국 감독의 <꿈보다 해몽>,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 박석영 감독의 <들꽃> 또한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마돈나>에서 서영희와 함께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신예 권소현은 이 영화로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들꽃>의 조수향, 정하담은 <검은 사제들>에서 짧지만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비록 상업 영화에서는 주요 캐릭터로 활약하는 여배우들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독립 영화에서는 여전히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어 가는 영화가 살아 있었고, 영화에 등장한 여배우들 또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철저히 남성 캐릭터 중심의 거친 액션, 스릴러 위주로 제작되는 터라,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한국 영화계에서 그래도 여성 캐릭터가 극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저예산, 다양성 영화는 여배우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기회다. 또한 독립 영화는 변요한, 안재홍, 류준열, 류혜영, 이민지 등 최근 <미생>, <응답하라 1988> 등 인기 드라마 출연으로 각광받는 재능있는 신인배우들을 미리 만날 수 있는 발굴의 장이기도 하다. 


해가 갈 수록 점점 정형화 되어가는 상업 영화와 다르게 말 그대로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성 영화는 한국 영화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영화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한국 영화 속에서 여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내는 요즘. 배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성 영화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여배우들도 더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있고, 한국 영화계도 발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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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지난 26일 열린 36회 청룡영화상은 그 어느 해보다 많은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 20일 열린 52회 대종상영화제 때문이다. 남녀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전원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 진행된 대종상영화제는 전반적인 행사 운영에 있어서도 한국 대표 영화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미숙함과 소통 부재를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주 열리는 청룡영화상이 더욱 궁금해 졌다. 대종상과 달리, 비교적 잡음없이 안정적으로 영화상을 운영해온 것으로 평가받은 청룡상 이었지만, 아무리 못해도 대종상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청룡영화상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날 36회 청룡영화상이 보여준 행보는 지난주 대종상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주연상 후보 전원 불참과, 배우 부문 후보에 오른 30명 중 26명 참석. 배우들 참석만 놓고 봐도 대종상과 청룡상은 애초 게임이 되지 않는다. 36회 청룡영화상에는 매년 청룡영화상 진행을 맡아온 김혜수를 비롯하여, 지난주 대종영화상에서는 스케줄을 이유로 불참한 황정민, 유아인, 한효주가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날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중에 스케줄을 이유로 불참은 선언한 이는 정재영, 전도연, 전지현 뿐이었다. 남우조연상, 신인남자,여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은 전원 참석했으며,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라미란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촬영으로 부득이하게 불참을 통보했다고 한다. 


송강호, 이경영, 김혜수, 황정민, 오달수, 유해진, 이정재, 조진웅, 유아인, 이민호, 박보영, 박서준, 변요한,강하늘 등 올해 한국 영화계를 빛낸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한 청룡영화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축제 였다. 하지만 이날 청룡영화상이 돋보인 것은, 대종상이 그토록 원하던 스타 배우들의 대부분 참석이 아니었다. 





이날 청룡영화상의 최우수 작품상은 최동훈 감독의 <암살>에게 돌아갔다. 감독상은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수상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주 대종상에서 최동훈, 류승완 감독은 모두 개인 사정으로 불참 했고, <암살>의 전지현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 외엔, 두 영화 모두 대종상에서 이렇다할 상을 받지 못했다. <암살>, <베테랑>과 함께 천만관객을 기록한 <국제시장>이 대종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포함 10개 부문의 상을 휩쓴 것과 상당히 대비된 행보였다. 또한 대종상에서는 여우조연상(김해숙) 수상에 그쳤던 <사도>가 청룡영화상에서는 남우주연상(유아인), 여우조연상(전혜진), 촬영조명상(김태경 외 1명), 음악상(방준석) 등 4개 부문의 상을 수상하였다. <국제시장>은 남우조연상(오달수), 최다관객상, 미술상(류성희) 등 3관왕을 기록했다. 


주요 부문의 상을 <국제시장>에 몰아준 대종상과 달리, 올해 흥행작에 주요 부문의 상을 골고루 안겨준 청룡상은 당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날 청룡상은 올해 대종상은 아예 하지도 않았던 기계적 분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잘 알려졌다 시피,  청룡영화상은 대한민국 대표 보수 언론 조선일보가 후원하고, 계열사 스포츠조선이 주최하는 영화상이다. 몇 년전만 해도, 대종상만큼은 아니지만 조선일보 계열사가 주최하는 이 영화상에 대한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상으로서 심사에 공정성을 기한다고 한들, ‘조선’이 후원한다는 이유로 어딘가 모르게 미심쩍게 다가오는 부분이 없지 않았던, 청룡영화상의 인식이 확 바뀌게 된 것은, 지난 2011년 32회 청룡영화상이었다. 


그 해 7백만명 관객을 기록하며, 2011년 최다 관객을 기록한, 김한민 감독 <최종병기 활>이라는 쟁쟁한 후보가 있음에도 불구, 당시 청룡의 선택은 270만명 관객을 기록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였다.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을 포함 각본상(박훈정)까지 연출, 시나리오 완성도와 관련된 상은 모두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냉철하게 꼬집은 <부당거래>의 몫으로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이 날 <베를린> 촬영차 해외로 출국한 류승완 감독을 대신하여, 단상에 오른 <부당거래> 제작자 강혜정은 외유내강 대표는 “세상의 모든 부당거래에 반대하고, 그런 의미에서 11월 22일에 있었던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수상소감을 전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놀랍게도 강혜정 대표는 올해 청룡영화상 또한 차기작 준비로 시상식에 불참한 류승완 감독을 대신해 감독상을 대리 수상하였다.) 그 해 <최종병기 활>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류승룡 또한  “공정성 있는 심사를 내년엔 미국인들이 하지 않겠죠.” 라는 한미FTA를 빗댄 뼈있는 수상소감을 전하기도 하였다. 


당시 한미FTA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던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시상식에서 오고간, 의미심장한 수상소감은 보수적 색채가 짙었던 청룡영화상을 다시 보게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 이후 청룡영화상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지난 2014년 35회 청룡영화상이었다. 





이날 청룡영화상의 최우수 작품상은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에게 돌아갔다. <변호인>은 조선일보가 그토록 날선 비판의 날을 세우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 당시의 사건을 그린 영화다. 후원사 조선일보에게는 다소 껄끄러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변호인>은 심사위원 대부분에게 선택을 받으며, (네티즌들만 최우수 작품상으로 <명량>을 선택했다.) 당당히 최우수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35회 청룡영화상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은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변호인>도 아니요,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청룡같은 메이저 영화상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깜짝 수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공주> 천우희였다. 


“유명하지도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당시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천우희는 자신의 이름이 수상자로 호명되기 바로 직전까지, 청룡에서는 자기가 상을 받을 것이라고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그렇다. 이미 35회 청룡영화상 전에 있었던 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천우희였지만, 독립영화 출연에 그것도 다른 후보들에 비해 유명하지 않았던 그녀가 보통 흥행에 성공한 상업영화 위주로 주요 부문의 상이 돌아가는 청룡에서 신인여우상도 아닌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극히 적어보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그 해 청룡은 천우희를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많은 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렇다고 35회 청룡영화상이 <한공주> 외에도 그 해 개봉한 수많은 독립 영화들에게 열렬한 관심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독립영화를 향한 청룡의 선택은 오직 <한공주>,<도희야>뿐이었다. 그럼에도 천우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청룡의 선택은 영화의 흥행여부, 상업영화, 독립영화 이런 기준을 놓고 떠나, 오직 작품성과 배우의 연기력으로 상을 수여한다는 청룡의 공정성을 조금이나마 믿게하는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올해 있었던 36회 영화상에서, 청룡은 지난해 천우희 못지 않은 깜짝 행보를 이어나간다. 물론 지난 26일 청룡영화상을 수상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정현은 지난해 여우주연상 천우희와 달리 굉장히 유명한 배우이며, 가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원조 한류 스타이다. 그럼에도 이정현의 수상이 주목받는 것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이 현 사회를 전면으로 비판하는 문제작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배우가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력만으로 상을 준 청룡의 남다른 감각이 다시 돋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정현이 보여준 연기력은 압도적이었고, 그녀의 수상 또한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올해 청룡의 선택이 돋보인 것은 여우주연상 뿐만이 아니다. 이날 이민호, 박서준, 변요한, 강하늘 등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고 신인 남우상을 받은 이는 다름아닌 독립영화 <거인>의 주인공 최우식이었다. 지난주 대종상에서는 후보에 조차 들지 못했던 최우식의 신인상 수상은, 이어 <거인>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탕웨이 남편이 아니다)이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겹경사를 맞게 되었다. 이날 각각 신인남우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거인>의 최우식, 김태용 외에도 또다른 독립영화 <소셜포비아>의 홍석재 감독과 변요한이 각각 신인감독상, 신인남우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주연상 후보 전원 불참, 대리수상 불가를 표명 하였음에도 불구, 정작 지켜지지 않는 원칙, <국제시장> 몰아주기 등 엄청난 사건들에 가려지긴 했지만, 지난주 대종상에서 두드러진 또다른 문제는 시상은 커녕, 후보에서도 독립 영화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신인여우상(이유영)을 수상한 조근현 감독의 <봄>,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제외하고, <거인>, <소셜포비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광국 감독의 <꿈보다 해몽>,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올해 주목받았던 상당수 독립 영화들이 대종상에 아예 출품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크겠다. 대종상 관계자는 대종상은 모든 영화에 문이 열려있음에도 불구, 그렇지 않았던 젊은 감독들이 자초한 것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청룡과 달리 독립 영화 감독들이 대종상에는 아예 출품조차 하지 않는 속내는 따로 있었다. 극영화로서 빼어난 완성도를 보였다고 한들, 흥행에 성공한 상업영화가 아니면 상을 받기도 어렵지만, 후보에 드는 것도 어려운 영화상. 그것이 현 대종상을 바라보는 젊은 영화인들이 가지는 보통의 시선일 것이다. 


물론 36회 청룡영화상 또한 여우주연상, 신인남우상, 신인감독상을 제외하곤, 여전히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높게 평가 하고, 많은 상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청룡은 올해 흥행한 영화 모두에게 상을 골고루 나눠주는 분배의 차원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상으로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엄밀히 말하면 조선이 주최하고 후원하고 있음에도 불구, 조선일보가 지향하는 정치적 논리에 따르는 것이 아닌, 오직 영화 완성도와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평가하는 영화상으로서 이미지를 한단계 격상할 수 있는 시상을 꾀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성공적’이었다. 


“난 청룡영화상이 정말 좋다. 참 상을 잘 주죠?”


<차이나타운>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무관에 그친 김혜수에게 이 날 청룡영화상은 두고두고 아쉬운 영화제로 기억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암살>이 최우수 작품상에 호명된 이후, 김혜수는 오랫동안 자신이 진행을 맡은 청룡상을 두고 이런 평을 남긴다. 


자신이 상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 청룡의 공정성을 높이 평가하는 김혜수의 대인배 면모가 돋보인 멘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혜수가 남긴 한마디는 36회 청룡 영화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 명언으로 남을 수 있었다. 역대 최악의 파행을 빚은 대종상 덕분에 얻은 반사이익도 어부지리도 아니었다. 지금의 대종상은 흉내조차 내지도 않는, 보다 공정성있는 영화상으로 발돋움하고자하는 청룡이 행한 일련의 노력들이 오늘날 스타 배우들이 알아서 잘 참석하고, 상도 잘 주는 영화상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오래된 역사와 물리적 힘을 앞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닌, 권위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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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남(이정현 분)은 항상 꿈을 꾼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엘리트가 되는 꿈, 청각장애인인 남편 규정(이해영 분)이 수술을 잘 받아 귀가 잘 들리는 꿈,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남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평소 그의 꿈인 집을 장만하는 꿈, 자살을 기도하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이 다시 의식을 회복하는 꿈, 그리고 재개발이 이뤄져 집을 보다 높은 가격에 팔아 남편 병원비에 보태는 꿈. 





하지만 이상하게도 간절히 바라던 꿈이 하나씩 이뤄질 수록 수남이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과 불행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제작과정 출신의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참으로 기괴하고도 끔찍한 영화다. 내용 전개가 지나치게 엉뚱하고 극단적으로 치닿는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엔딩 크레딧이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극 중 이정현이 맡은 수남은 다양한 면모를 가진 야누스 같은 인물이다. 우선 그녀는 굉장히 순수하고도 순진하다. 자기만 열심히 하면 남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수남은 뼈빠지게 일만 한다. 이미 회복 불능 단계에 접어든 남편도 자신이 열심히 수술비만 대면 깨어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그러나 수남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죽어라 일을 할 수록 늘어나는 것은 빚뿐이다. 


개미처럼 묵묵히 일만 해서는 잘 살 수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지독할 정도로 순진했던 수남은 왜 그녀가 열심히 일을 해도 더 가난해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대신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는 맹목성만 존재할 뿐이다. 착하게만 살아서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수남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자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잔인하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 안가리는 괴물이 된 것이다. 





그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했던 수남을 마녀로 만든 것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다. 수남 혼자 장애인 남편을 혼자 부양하면서 힘들게 살아감에도 불구, 그들에게 제공되는 복지는 지극히 형식적이다. 수남의 주변인 대다수가 수남의 어려운 형편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목적을 이루려고만 하지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는 하나 없다. 


생존을 위한 각개 전투에 나설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속수무책 쓰러지건 말건,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만 존재하는 사회. ‘성실한 나라’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구현하는 세상은 냉혹하고도 비정하다. 하지만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 언정, 2015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이토록 실감나고 섬뜩하게 그려낸 영화가 또 있을까. 





한 개인을 넉넉하게 감싸주는 넉넉한 배경이 없다면, 꿈이 이뤄지는 세상이 아닌, 꿈을 꿀수록 불행해지는 세상. 여전히 자기만 잘하면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수남과 달리, 일찌감치 현실을 깨닫고 많은 것을 포기한 현 청년 세대를 위한 잔혹동화. 순수와 광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정현의 폭발적인 명열연과 더불어 이 황당할 정도로 등골 오싹하게 하는 이야기가 엔딩 크레딧이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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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