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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2015년 한국 영화 여배우 실종? 그래도 다양성 영화에 길이 있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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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 영화계는 전체 관객수만 놓고 보면 풍년이었다. <암살>, <베테랑> 등 천만 영화가 올 여름에만 2편이나 나왔고, 최근에는 <내부자들>이 19금이라는 한계에도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오는 31일 감독판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양적인 성공에도 불구, 중박 영화가 사라지고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점,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스크린 독점 현상 등 한국 영화계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 중에서 지난해에 이어 꾸준히 거론되는 지적은 여배우 기근,실종이다. 





송강호, 황정민, 김윤석, 김명민, 오달수, 이정재, 하정우, 강동원, 유아인 등 남자 배우의 활약이 눈에 띄던 현상과 대조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에서 여배우의 활약이 돋보인 영화는 전지현 주연의 <암살>이다. 하지만 <암살>도 오롯이 전지현 혼자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정재, 하정우 등 남자 톱배우의 비중도 상당했다는 점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영화로 보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히말라야>, <대호>로 대표되는 12월 한국 영화에는 더더욱 여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두 영화 모두 출연하며 여배우의 자존심을 지킨 이는 라미란 뿐이다. 그런데 이 두 영화에서 라미란은 철저히 조연이다. 극에 없어서는 안될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지만, 메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은 아니다. <히말라야> 같은 경우에는 극중 박무택(정우 분)의 아내로 등장하는 정유미의 비중이 후반부로 갈 수록 중요해 진다고 하나, 그녀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보다, 주인공 박무택을 둘러싼 비극을 마무리짓는 역할에 그친다. 


2010년대 들어서 유독 한국 영화에 여배우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한국 영화 시장이 선호하는 장르가 멜로에서 액션,범죄물,스릴러로 전환한 이유가 가장 크겠다. 그렇다고 한국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드라마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국제시장>, <사도>, <히말라야>같이 남성 중심의 서사로 이뤄진다. 보통 여배우들보다 남자 배우들이 가진 티켓파워가 더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최근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의 연인, 혹은 눈요기감으로 전락하거나, 주인공의 각성을 촉구하는 부차적인 캐릭터로 소모되기 일수다. 





멜로와 여성 중심 드라마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 여배우가 설 자리는 딱 세 가지다. 김혜수, 전도연, 엄정화, 전지현처럼 압도적인 인지도를 앞세워 주연을 맡는 스타가 되던가, 라미란, 장영남, 진경처럼 어떤 역할로 같다놔도 맞춤옷을 입은 것 같이 독보적인 연기력을 갖춘 명품 조연이 되거나 아니면 <간신> 임지연, <내부자들>의 이엘처럼 카메라 앞에 속살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한다. 그래도 벗지 않아도, 자신이 가진 독보적인 역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던 <검은 사제들>의 박소담은 요즘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행운아에 가깝다. <베테랑>에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하기 전에, 이미 톱모델로 유명세를 떨쳤던 장윤주는 예외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그렇다고 2015년 한국 영화계에 여배우들의 활약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에 이어, 상업 영화에서 자꾸만 설 자리를 잃어가는 여배우들이 찾은 곳은 흔히 ‘독립영화’라고 부르는 다양성 영화다. 작년 한국 다양성 영화에 <한공주>의 천우희, <도희야>의 배두나, 김새론이 있었다면 올해 다양성 영화를 빛낸 여배우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김민희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보적이고도 독특한 색채를 가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홍상수 감독은 언제나 여자 캐릭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영화를 만드는 몇 안되는 연출가다. 지금까지 문소리, 정유미, 예지원 등과 주로 작업해온 홍상수 감독은 이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김민희와 처음으로 작업하는 변화를 꾀한다. 


데뷔 이후 줄곧 상업 영화만 찍어온 김민희에게도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촬영 당일에 주기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은 그녀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리고 홍상수와 김민희의 만남은 홍상수 감독에게 있어서는 매번 비슷하게 흘러가는 홍상수의 영화가 조금 색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김민희에게는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여성스럽고도 사랑스러운 면모가 잘 드러났던 걸작으로 이어졌다. 





이정현은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그것도 노개런티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상업 영화와 달리 최대한 예산을 아껴야하는 독립 영화의 어려운 상황을 배려한 통큰 결정인 셈이다. 하지만 이정현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선보인 연기는 수억원의 개린터를 줘도 아깝지 않은 명품이었다. 이정현의 열연에 힘입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으로, 벤쿠버, 상하이 등 국제영화제에도 연이어 초청되었다. 또한 이정현이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경사를 누렸다. 청룡영화상이 다양성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시상한 것은 지난해 <한공주> 천우희에 이어 두번째다. 


그 외에도 상업 영화로 제작 되었지만, 비교적 적은 제작비를 들인 <차이나타운>도 김혜수, 김고은 등 여배우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로 꼽을 만하다. 개봉 당시 많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광국 감독의 <꿈보다 해몽>,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 박석영 감독의 <들꽃> 또한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마돈나>에서 서영희와 함께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신예 권소현은 이 영화로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들꽃>의 조수향, 정하담은 <검은 사제들>에서 짧지만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비록 상업 영화에서는 주요 캐릭터로 활약하는 여배우들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독립 영화에서는 여전히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어 가는 영화가 살아 있었고, 영화에 등장한 여배우들 또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철저히 남성 캐릭터 중심의 거친 액션, 스릴러 위주로 제작되는 터라,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한국 영화계에서 그래도 여성 캐릭터가 극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저예산, 다양성 영화는 여배우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기회다. 또한 독립 영화는 변요한, 안재홍, 류준열, 류혜영, 이민지 등 최근 <미생>, <응답하라 1988> 등 인기 드라마 출연으로 각광받는 재능있는 신인배우들을 미리 만날 수 있는 발굴의 장이기도 하다. 


해가 갈 수록 점점 정형화 되어가는 상업 영화와 다르게 말 그대로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성 영화는 한국 영화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영화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한국 영화 속에서 여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내는 요즘. 배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성 영화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여배우들도 더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있고, 한국 영화계도 발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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