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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히말라야. 신파와 익숙함의 덫이 보여준 장점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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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 등정 중 조난사고를 당한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산악인 엄홍길이 2005년 꾸린 ‘휴먼원정대’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이미 2005년 MBC 다큐멘터리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 10년 전 일어난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 내기 위해, <히말라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엄홍길과 동료 산악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남짓가량 엄홍길(황정민 분)과 박무택(정우 분)의 첫 만남부터, 박무택이 엄홍길 원정대에 합류하고, 엄홍길과 남다른 친분을 쌓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히말라야>는 한국 관객들에게 꽤 친숙한 방식으로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극 초반 <히말라야>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대부분의 한국 상업 영화가 그렇듯이, 유머러스함이다. 평온한 일상에서 연이어 펼쳐지는 유머 코드는 극 중반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한 등장 인물들의 비극을 고조시키는 효과적인 극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초반까지만 해도 등장 인물들의 끊임없는 개그와 농담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장면의 공기가 달라져버리는 <히말라야>가 의도한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해운대>, <국제시장>를 성공시킨 윤제균의 진두지휘하에  CJ 엔터테인먼트 공동제작으로 이루어진 <히말라야>는 철저히 상업적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기획 영화다. 시나리오 작법 부터, 장면 전환, 개그, 감동 코드 심지어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까지 다수의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 계산된 듯한 영화는, 그래서 의도한 부분에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데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다. 





전형적인 한국 상업 영화 흥행 코드를 보여주는 이 영화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은 의외로 등장 인물들이 끊임없이 흘리는 눈물에 있었다. 부상으로 인해, 산악인으로서 은퇴 선언까지 한 엄홍길이 등반 도중 조난을 당한 후배들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산에 올라간다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만큼, <히말라야>가 지향하는 흐름은 다분히 신파적이다. <히말라야> 제작을 맡은 윤제균의 연출작 <국제시장>과 비교해봐도, 많은 양의 눈물을 쏟아내는 <히말라야>는 그런 점에 있어서 2015년형 신파의 완벽한 부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까지도 신파 영화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미워도 다시한번>(1968)과 비교해 볼 때, <히말라야>는 상당히 다른 결의 신파를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극적인 상황 앞에서 무기력한 자세로 일관하는 <미워도 다시한번>의 주인공들과 달리, <히말라야>의 등장 인물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산악인으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는 수순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절망을 이겨내고자 하는 <히말라야> 주인공들을 정의하는 삶의 태도는 ‘휴머니즘’이다. 동료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전 세계 산악 역사상 유례없는 원정대를 꾸린 이들의 ‘휴머니즘’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동료들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숭고한 희생 정신을 울림있는 감동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엄홍길의 ‘휴먼원정대’ 사연만 들어도 충분히 감동적인 스토리를 영화라는 매체로 옮기기 위해서는 책이나, 인터넷 뉴스 혹은 방송 프로그램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새로운 지점, 즉 거대한 제작비의 위력을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스펙타클이나 관객들의 뇌릿 속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 등을 보여주어야한다. 하지만 이미 공중파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이야기를 다시 영화로 전달하고자 하는 <히말라야>의 전략은 다수의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드라마에 기대어 최대한 많은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산악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산에서 찍은 남성 멜로 드라마 무드가 물씬 풍기는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고, 개봉 이후 줄곧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제치고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최대한 많은 관객수를 끌어들이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상업 영화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 소재의 독특성을 제외하곤, 감동 코드를 앞세운 기존의 한국 영화들과 별다른 차별점을 보이지 못한 <히말라야>는 한국 상업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장점과 한계가 동시에 갖추어져 있는 드라마이다. 


눈 덮인 산에서 찍었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함의 덫이 가득하고, 그렇기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담보하는 이 영화에 대한 선택은 오롯이 관객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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