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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다시피 로커 임재범의 아버지는 60년대 명 아나운서로 이름을 떨친 임택근입니다. 90년대 최고 청춘스타에서 최근 성공적인 사업가로 변신한 탤런트 손지창이 그의 이복동생이구요. 듣기만 해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사입니다. 그리고 임재범 본인에게는 큰 상처이지만, 그는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져 할머니 손에 자라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 말씀 잘 듣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잠깐 화제가 되기도 하였지만 중학교 때는 말끔한 외모에 전교부회장까지 지냈었기도 하지요. 그러나 집안 사람들은 애써 쉬쉬하지만 한창 감수성이 민감하고 예민할 사춘기 때 접했던 또다른 동생의 존재. 결국 그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 보통 사람들은 쉽게 이해해버릴 수 없는 헐크 임재범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아픈 나날들. 그래서 임재범은 늘 불안하고 괴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점잖고 조용하다가도 조금만 자기 신경을 거스르거나, 화가 나면 바로 야수처럼 돌변해버려서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 큰 상처를 안겨버리는.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임재범이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매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히스테리적 성향을 보이는 임재범을 아예 피해버리거나, 손가락질 하는 것 그게 다 였습니다. 한번이라도 그의 관점에서 그를 이해해보려고 하기보다,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기준에서 임재범을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아픈 아내 때문에 <나는가수다>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고,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바람에 실려> 촬영 도중에서 무려 세번의 돌출 잠적을 하는 철부지 임재범이 다시 한번 부각된 시기. 역시 임재범은 안되는 가 하는 회의론이 고개를 올리려고 하는 위기상황에서 임재범의 살아왔던 아픈 기억들을 짚어보며, 그의 관점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승승장구>는 임재범을 이해하고 다시 대중들이 임재범을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따뜻하게 끌어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임재범 생애 최고 토크쇼라는 거창한 타이틀 이전에, 무엇보다도 평소 방송출연을 꺼리는 임재범 스스로가 <승승장구> 출연을 요청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만큼 임재범은 그동안 자기 스스로 자신을 가두어왔던 어두운 틀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열망이 컸습니다. 

 




과거 아픔들을 뒤로하고 이제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임재범입니다. 예전같이 기인으로 살기에는, 극도의 우울증과 조울증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만 되풀이하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린 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달게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아내는 암 학회에서도 처음으로 발견되는 4개의 암이 동시에 전이되면서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남편을 생각해서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형편입니다. 

 



결국 그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오랜 우울증을 벗어버리고 다시 세상의 밖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가수들끼리의 극도의 경쟁욕구를 부추기는 <나는가수다>에 자진출연 요청을 하였고, 그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제는 어딜 가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져 예전처럼 자기 마음대로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어렵게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기보다, 사람들을 기피하기보다, 남들처럼 하기 싫은 것도 하고, 힘든 일도 하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결코 가족들 때문에 변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 때문입니다. 자신이 변해야 가족들도, 다른 이들도 평온하고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한 고비 넘으면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는 험준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그동안 오래 간직해왔던 자신을 깎고,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부단한 노력을 행하고 있는 동안 이제는 쉽게 아물 수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증오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늘 임재범과 손지창에 대한 아버지의 아픔과 미안함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정작 마음은 쉽게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기나긴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와의 쌓였던 오랜 벽을 허물고, 아버지의 남은 여생동안 행복하게 지내는 가정을 꿈꾸는 조심스러운 소망도 내비치게 될 정도입니다.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다고 하나,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온전치 못한 가정과, 배다른 동생의 존재. 그리고 그토록 하고 싶어했던 록을 버렸다는 죄책감 이 모든 슬픔과 분노가 결합되어 오늘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야수 임재범을 만들어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이전에 그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따스한 보호자같은 존재가 그의 눈높이에서 임재범의 여리고도 깊은 마음을 보듬아주었다면, 임재범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세상 속에 뛰어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나는가수다> 무대 못지 않게 삭막하고 치열한 세상에서 매일매일 결전을 치루는 사람들인터라 오히려 그걸 하지 못하는 임재범이 안타깝기보다, 그저 이해불가능, 손가락질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더욱더 임재범의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분노만 더 키웠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임재범은 가족에게 받았던 아픔과 상처를, 자기 스스로가 일구어냈던 또다른 소중한 존재 가족에 의해서 스스로 훌훌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한단계 더 나아가 이제는 자기 최고의 아킬레스건인 가족과 히스테리적인 괴팍한 성격까지 고스란히 고백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닌, 먼저 세상 사람들에 맞춰 자신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동안 연이은 잠적과 오랜 방송활동 중단으로 온갖 루머에 시달려온 '신비주의'로 알려진 임재범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나는가수다> '여러분'처럼 어느 무대에서나 혼신의 힘을 다한 열창을 보여주었고, 늘 자기 하고 싶은대로 꺼리낌없이 살아왔을 뿐입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도 솔직하게 살아온 임재범이터라, 더 큰 오해를 불러온 것뿐이죠. 그래도 솔직하고 진솔하기에 자신이 그동안 벌이면서 본의아니게 타인에게 상처주었던 모든 과오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오랜 임재범의 팬으로서, 나름 임재범을 이해하고자 했다고하나, 이번 <승승장구>의 출연을 통해서 저나 다른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임재범의 또다른 모습과 심각한 아픔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승승장구> 출연을 통해서 수십년동안 살아온 임재범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여전히 임재범의 또다른 야수적인 기질에 상처받은 이들은 그를 이해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기는 어려울 것이구요. 하지만 먼저 <승승장구> 출연을 요청하여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진지하고도 온화한 눈빛과 덤덤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그동안 자기 혼자만의 꿈으로 간직했던 '그래미상'을 노리는 야심만만한 승부사 기질도 드러낸 솔직한 임재범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변화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승승장구>에서 자신의 아픈 과거를 통해 그동안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면죄부만 받고자하고,  잘못한거 사과한다. 달라지겠다,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는 말로만 끝내면, 곤란하겠죠. 그 이후에도 계속 달라지겠다는 변화의 다짐을 산산히 부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지금까지도 그를 응원하던 팬들도 힘겹게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픈 아내와 딸을 위해 힘겹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고 치유하면서 이제 겨우 조금씩 한발자국씩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시베리안 호랑이입니다. 비록 그 태동의 과정에서 실수도 있고, 오랫동안 사람들과 격리된 굴 안에서만 산터라 대중들의 뜻과 어긋나서 더 큰 오해로 번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죠.

허나 지금은 잘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따끔하게 지적할 것은 하면서도,  웬만하면 그의 관점에서 그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따스하게 다독거리면서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가수 임재범이 되도록 큰 박수를 보내야하는 시점인 듯 합니다. 부디 그가 조심스럽게 내비추던 소망대로, 험준한 세상에 잘 적응하여 몇 년 뒤에는 그래미상도 타고, 가족들과도 행복하게 지내면서 평생 진실된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소리꾼 임재범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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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일밤의 새로운 코너 바람을 싣고MC로 선정된 가수 임재범의 공항 패션이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하긴 나는가수다 출연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공항패션 또한 당연히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겠죠.


프로그램 촬영 차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국하는 임재범은 짙은 회색 카우보이형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흰색 상의와 베이지색 반바지에 노란색 운동화를 코디한 절정의 패션감각을 선보입니다
. 임재범이 입고 있는 옷들이 대강봐도 좋은 재질으로 만들어진 듯 하나, 필자같은 일반 서민 입장에서는 임재범이 어떤 브랜드를 입고 있는지 친절한 설명이 추가되지 않는 이상, 착용하고 있는 브랜드가 어떻게 명품인지까지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임재범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국할 당시 입고 있던 의상이 명품이라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불과 몇 달전만 해도 암투병 중인 부인의 병간호를 하면서 생활고로 힘들게 살았던 임재범이 반짝이는 명품패션으로 치장하여 대중들 앞에 나타났으니까요.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으며, 저작권은 스포츠서울닷컴에 있습니다)  
 
보통 연예인들의 공항패션을 소개할 경우에는 그들이 어떤 브랜드를 착용하였고, 그래서 명품이라는 친절한 소개가 따라붙기도 합니다. 어쩔 때는 연예인들의 아찔한 패션감각을 소개하기보다, 그냥 명품 브랜드 홍보 기사를 보는 느낌까지 물씬 풍길 정도입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명품으로 휘둘렸다는 임재범에게는 그가 어떤 브랜드의 의상을 걸쳤다는 간단한 설명구 조차 없이 임재범이 '명품패션'을 선보이며 인천국제공항에 나타났다는 짤막한 글귀뿐입니다.



평소 연예인들의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물불 안가리는 심층 취재로 많은 네티즌들에게 박수를 받았던 전설의 언론사가 왜 정작 임재범의 명품패션에 대해서는 그가 명품패션을 두르고 나왔다는 글 하나만 보냈는지 한편으로는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하긴 그분들은 분명 임재범이 어떤 브랜드를 입고 나타났는지 알았기에 자신있게 '명품패션' 한 단어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였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임재범이 어떤 모 브랜드를 입고 왔네 하면 되레 그 브랜드를 홍보하는 기사로 보여질 우려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임재범이 명품 의상으로 치장하고 왔다 그 기사가 없어도, 일부 네티즌들은 임재범의 출국 사진에 입었던 의상만 봐도 어떤 브랜드인지 세심하게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갖추었습니다.                                   (저작권은 스포츠서울닷컴에 있습니다)
굳이 4줄도 채 안되는 글귀로 저 옷이 명품인것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 상대로 저건 명품인데, 왜 명품인지는 설명하지 않겠다라고 외치는 상황이  더 아리쏭할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침 임재범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국할 당시 장윤주도 같은 날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나봅니다. 장윤주는  현재 그녀가 진행하는 케이블채녈 온스타일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시즌2'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였습니다. 그녀의 최종 행선지는 오는 10일에 있을 미국 뉴욕패션위크에 있을 런웨이 현장이였고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미국을 돌아다니는 임재범과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겹쳤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목만 보면 마치 장윤주가 임재범과 함께 동행하여 미국으로 가는 듯한 뉘앙스입니다. 단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만 같을 뿐인데, 그렇게 따지면 9월 7일 UA 892편을 타고 미국으로 간 탑승객 모두 임재범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와 가는 방향도 전혀 다른데도 임재범과 함께 미국행을 한 사람들이 되어버리는군요. 

왜 이렇게 임재범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줄을 잇는것일까요? 아무래도 임재범이 갑작스레 신드롬격의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된 것이 주 요인 같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폭행사건과 경찰조사도 한몫하였습니다. 그러나 임재범 측은 당사자와 협의를 마쳤고 둘 사이에서 오해가 있었지만 풀었다면서 대중들에게 사과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만약에 경찰조사에서 임재범이 폭행을 휘둘렸다는 정황이 밝혀지면 그 때 그 사건으로 질타를 가하면 족할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얼마전 까지만해도 생활비가 없어서 허덕이던 임재범이 우리같은 서민들은 이름모를 명품 브랜드로 휘감고 다닌다고해도 딱히 비난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가수로서 울림있는 노래로서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였고, 그에 따른 인기로 수많은 돈을 번 것 뿐입니다. 이왕이면 돈을 많이 벌어도 검소한 옷차림을 하면 더더욱 많은 이들에게 아직까지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갑자기 스타가 된 연예인들 중에 유독 임재범만 돈 좀 만졌다고 명품을 두른 것도 아니고 왜 유독 어떤 브랜드인지도 알 수 없는 임재범의 명품 패션에 그리들 집착하는지요.

또한 연예인들은 의상 협찬이 꽤 많은 편입니다. 최근 30~40대 남자들의 우상이 되어버린 임재범을 웬만한 유명 브랜드에서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임재범은 여행을 테마로 하는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로까지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번 임재범의 명품패션 화제로 인해,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아닌 임재범이 출국할 당시 임재범이 착용하였던 의상 브랜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공식적으로 임재범이 착용하고 있던 임재범의 명품패션 브랜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몇몇 네티즌들은 임재범이 어떤 브랜드를 입고 있었다는 것까지 대충 알 수 있는 능력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 명품 브랜드를 빛내줄 수 있는 옷걸이까지 좋으니, 그 패션 브랜드에게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의상을 빛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이 언급되어왔는데, 임재범만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던 공항패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연예인들이 입, 출국 당시 착용했던 의상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였는데, 유독 임재범의 이름모를 명품패션이 다른 이들보다 큰 화제가 되는 것도 역시 다 임재범에 대한 엄청난 관심의 방증인 것 같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인물이다보니 당연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게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지만, 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임재범이라는 가수를 보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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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2011년 3월 말 임재범이 음악을 다루는 주말 예능 버라이어티에 서게 되었을 때, 분명 저 사람은 임재범이지만, 앞에 두고도 과연 그가 임재범이 맞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대중들에게 임재범은 음반만 내기만 하면 잠적하는 가수,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가수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가 실력파 가수들을 재조명한다는 취지의 '나는가수다'에 출연을 하겠다고 했을 때 만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음반으로만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라이브를 들어서 영광 그 자체에 설레인다는 기분이 앞섰지만, 오죽하면 그 양반이 '나는가수다'에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였습니다. 하긴 그건 임재범뿐만이 아니라 임재범과 함께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들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들 대한민국 가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전설들이고 아직 현역들인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예능을 통해서 다시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된다는 개탄스러운 현실에 일조한 대중으로서 미안함이 앞섰을 뿐입니다. 

거기에다가 임재범이 자기가 '나는가수다'에 출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듣고 잠시 목이 메여지더군요. 그는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처절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암투병을 하고 있는 아내, 난방비가 없어서 어린 딸과 함께 추위와 사투를 벌어야하는 생활고. 게다가 임재범의 아버지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아나운서 출신이시기에 그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1986년 그룹 시나위로 데뷔하자마자 한국에서는 전혀 나올 수 없는 목소리, 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보컬 수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단지 락커로서 자존심을 지켜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주류 가요계의 질서 지키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점점 잊혀져가는 한국 락의 전설로만 기억되는가 하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나는가수다' 단 한회 출연 만에 엄청난 관심을 받으면서 단숨에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별이 되어버립니다. 세상은 임재범에 대한 열광을 '임재범 신드롬'이라고 명명하였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조리 다 뉴스거리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병 또한 많이 호전되었구요. 그렇게 임재범은 자신의 엄청난 외도로 자신이 가족이 행복을 찾았다면서 애써 위안지으면서 씁쓸한 미소를 애써 감추고자 합니다. 



한 때 임재범도 86년에는 그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록그룹의 보컬로서 어깨를 겨누던 이승철, 유현상처럼 머리를 자르고 락이 아닌 발라드를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1986년 시나위, 부활, 백두산이 큰 위세를 떨치던 시기가 지나고 락의 위기가 다가왔을 때, 백두산의 기타리스트인 김도균과 손을 잡고 락의 본고장이자 산실인 영국에도 진출하여 그곳에서  'sarang'이라는 그룹도 결성하고 1990년에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지향하는 '아시아나'를 결성하였지만 참패를 당하고 울며겨자먹기로 선택한 일이였습니다. 그가 락을 버리고 '이밤을 지나면'이란 곡으로 주류 가요계로 편입했을 때 그 반응은 먼저 발라드 가수로 전향한 이승철 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얻게 되었지만 한 때 동고동락했던 락커들의 싸늘한 시선에 괴로워해야했습니다. 아니 자기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은 락이 아닌 다른 음악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 뒤 그는 음반을 내자마자 잠적을 하고 그런 임재범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 세상은 그에게 '기인'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점점 임재범은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 자존심을 지킬 수 밖에 없었던 김태원의 상황 또한 심각하기는 매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컬 이승철이 떠나고 배고품과 추위보다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없다는 자괴감이 빠진 김태원은 더욱더 나락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할 일도 하였고, 더욱더 그의 삶은 위태위태해져가만 갔습니다. 절치부심으로 2002년 한 때 부활의 보컬이였던 이승철과 다시 손을 잡고 스테티셀러인 '네버앤딩스토리'를 내놓으며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는가 했더니 그 뿐이였습니다. 결국 김태원은 사석에서 자신의 독특함 입담을 눈여겨보던 김구라의 권유로 예능 출연 몇번으로 망가집니다. 그리고 천부적인 기타, 작곡 실력과는 달리 국민 약골 이윤석 못지 않게 약하고 골골거리는 그에게 '국민 할매'라는 새로운 예명이 붙어지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데뷔 첫 이래 cf를 찍는 등 대중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스타로 거듭나게 되었고 최근에는 대국민 오디션 '위대한탄생'에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멘토로 국민 할매가 아닌 또다른 모습으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지켜온 락커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국민할매로까지 변신한 것은 단순히 돈때문만은 아니였습니다. 그에게는 김태원 부부보다 하루 더 먼저 죽길 바라는 마음이 아픈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두고 '나는 락커다' 하면서 손가락만 빨 수만은 없는 현실이였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아픈 가족도 없이 48년동안 내내 싱글생활을 유지해온 김도균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꽤 오랫동안 기타만 치고 살아온 김도균 또한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와 결혼 이후 야들야들한 트로트 가수로 대한민국 가요사에 가장 가혹한 변신을 꾀한 이후 다시 락커로 돌아온 유현상과 함께 예능 '세바퀴'를 통해서 일생일대 최고의 외도를 감행하게 됩니다. 덕분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다시 늘었습니다. 어떤 이는 한 때 백두산을 좋아했다면서 그에게 정중히 악수를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26년전 대한민국 땅에서 정통 헤비메탈을 추구했던 백두산에게 열광하였으나 그 뒤 백두산을 너무나도 빨리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백두산의 재결합, 그리고 꿋꿋이 이어가는 그들의 활동은 오랫동안 잠자코 살아오던 사람들의 마음의 강렬한 불씨를 피어오르게 합니다. 

김태원 역시 예능 출연을 통해 흔히 말하는 락커로서의 지조는 잃었지만, 그 때문에 김태원, 그리고 락을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시 부활 노래를 듣게 하고 전반적으로 락에 대한 관심을 불러모으는데 큰 성공을 하게 됩니다. 오랜 은둔 생활을 뒤로하고 가족들 때문에 다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임재범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그가 활동했던 '시나위', '아시아나'에게까지 큰 관심을 가지게되었고 이 여세를 모아 절판되었던 '아시아나' 음반이 다시 재발매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특히나 시나위, 부활, 백두산, 아시아나 등으로 대변되던 전성기 시절 갓난 아이이거나 그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10대, 20대들의 상당수가 그들의 음악을 받아들이고 열광한다는 점은 더할 나위 없는 수확입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대변되던 락이 수면 위에 떠오르게된 것은 순전히 그들의 음악을 듣고 열광을 하던 청춘들 때문입니다. 서슬 파란 독재시절 점점 억누리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대변하여 이 부조리한 세상에 사우팅을 하던 락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자꾸만 커져가는 그들이 두려웠던 기성 세대들은 어떻게든 그들을 잠재우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진압하고자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들 중의 일부는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락커들은 반지하 단칸방과 굶주림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더이상 그들의 음악에 열광해주는 팬과 음악을 할 수 밖에 없는 무대가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결국 락커로서 맞지 않다면서 그들에게 들어오는 모든 대외활동을 거절할 정도로 꿋꿋하고 살아오던 그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능에서 어설픈 몸짓으로 망가지고 노래를 부르다가 대중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있어도, 결코 자신들의 음악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연습과 공연이 아닌 다른 일에 참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계속 손에 기타를 놓지 않으며 락을 잘 모르는 대중들 앞에서 '락'만이 가지는 고유의 매력과 즐거움을 알려는데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락을 위해 신성처럼 여겨왔던 락커로서의 자존심을 버린 대가는 어마어마하였습니다. 이제는 공중파 다큐멘터리에서 대한민국 락을 다시 재조명하고, 많은 이들이 그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가요계를 넘어 이 시대의 거물이 되어버린 임재범과 김태원입니다. 한 때 그들의 외도를 두고 울분을 토하고 비이냥을 거리던 시선들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 덕분에 다시 '락'이라는 장르가 주목을 받고 락커들이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쾌거입니다.

몇 십년 동안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락을 버리지 않고 락의 발전에 가족을 뒤로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뮤지션들입니다. 이제는 우리 대중들이 가족과 락을 위해 망가짐까지 자처하는 그들의 열정과 희생에 화답을 해야할 시기입니다. 단순히 임재범,김태원 개인과 그들의 사생활에만 주목하는 일시적인 신드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발판으로 그들의 음악은 물론이고 락이란 장르 자체에 전반적으로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한 평생을 락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임재범과 김태원을 존경하고 위하는 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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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