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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영화 베를린 류승완 감독님 인터뷰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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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엿 3년 반에 접어든 연예 블로거 생활이지만,  인터뷰는 2010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공동 인터뷰 외엔 상당히 오랜만이다. 게다가 문화연예에 종사하는 분 인터뷰는 지난 12일 <베를린> 류승완 감독님이 처음이였다. 


인터뷰를 어떻게하는지도 몰라, 나름 걱정이 되고, 다른 분들에게 어떻게 묻혀갈까 고민도 되었다. 하지만 인터뷰 분위기가 너무 화기애애했던 나머지,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더 초과되었다. 무엇보다도 예상대로 류승완 감독님이 참 좋으신 분이고, 같이 인터뷰를 했던 블로거분들 덕분에 첫 인터뷰의 스타트를 기분 좋게 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음하하하


개인적으로 <베를린> 기대도 많이 했고, 또 나름 의미있게 본 영화였다. 원래 영화 보는게 취미이자 유일한 인생의 낙이자 제 전공하고도 관련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베를린>은 그 어느 영화보다도 좀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했디. 드디어 우리나라 영화도 이러한 고퀄리티의 첩보물을 만들 수 있구나. 또 영화 소재상 남북 관계를 다루면서도, 이데올로기 관점이 아닌, 철저히 인물과 인물 간의 갈등으로 스토리를 그려내는 것도 인상깊었다. 


여하튼 운 좋게, 류승완 감독님과 즐거운 인터뷰를 나눈 결과, 제가 <베를린>을 보면서 약간 간과했던 부분, 그리고 영화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게되며, <베를린>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영화 볼 때도 좋았지만, 감독님의 부연 설명을 들으니 더 의미있는 영화 <베를린> 인터뷰를 시작하겠다. 앞서 말하는데...인터뷰 내용이 참으로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길다....그만큼 버릴 게 없을 정도로 꽉꽉 알찼던 1시간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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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의 도시 속 소외된 남자들 이야기 


Q: 스파이 영화 제작에 돌입하시면서 여러 나라, 장소 중에 독일 베를린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류승완 감독님(이하 류 감독님): 스파이를 다룬 이야기를 결정하면서, 여러 장소를 생각하긴 하였죠. 그런데 냉전 시대 독일 베를린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어서 동백림 사건, 송두율 교수 사건이 떠올리기도 하였고, 또 70년대 북한에 납북된 신상옥 감독, 최은희 부부가 북에서 탈출한 경로가 다름아닌 베를린 영화제 참석이었죠. 


또 베를린을 조사하면서 놀라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베를린 홀로코스트 공원과 또 하나가 난생 처음 본 북한 대사관이었죠. 알고보니 독일 베를린에 있는 북한 대사관이 해외에 있는 북한 대사관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더군요.딱히 스파이 장르 영화로 구체화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차츰 진행을 하다보니 인물의 직업, 산업스파이, 용병, 냉전시대, 실제 국제 스파이들의 주 무대 등 종합적인 이유를 고려하여 결국 베를린을 택하게 되었어요. 


Q: 영화 <베를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사인 주진우 기자와 함께 MBC 다큐멘터리 <간첩>에 참여하셨는데 영화 제작의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나요? 


류 감독님: 그 당시에는 이미 영화 제작이 구체화된 상황이었죠. 마침 MBC 측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의뢰가 들어왔고, 어차피 해야하 취재, MBC가 주는 제작비로 해보자하는 취지에서 OK 하였죠. (웃음)그런데 정작 다큐멘터리에 등장하지 않은 분들이 영화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신분을 드러내면 안되는 중요한 분들 말이죠. 





Q: <베를린>에 대한 평가 중 <본 시리즈>와 비교하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베를린> 제작 당시 기존 할리우드 첩보영화랑 비교될 수 있다는 부담감은 없으셨는지요?


류 감독님: 예상은 하였죠. 그 스트레스가 엄청 났어요. 액션 구성할 때도 원래 핸드레일(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는 것) 안하는데 이번에 <베를린> 찍을 때도 정두홍 무술감독과 핸드레일 안하려고 고생했어요. 아마 제 영화가 <본 시리즈>와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결말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뒤늦게 영화를 본 김지운 감독도 그런 말을 했거든요. 그런데 전 <본 시리즈>보다도 미드 <24>가 현대 액션 플롯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개인적으로는 <본시리즈> 1탄 <본 아이덴티티>가 후속편에 비해 상당히 빛을 못봤다고 생각해요. 


Q; 영화 완성본을 편집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으셨나요?


류 감독님: 편집 과정에서 삭제 된 부분 중에 북한 대사(이경영 분)과 여비서(김서형 분)의 관계가 있었는데, 전체 리듬을 고려하여 삭제하였죠. 찍을 때 너무 타이트하게 찍어서 영화 호흡을 따라가지 못하는 분들이 더러 계시더군요. 저는 그 호흡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초반부터 상당한 외국어 대사가 나오니까. 모니터 시사회 도중 제가 놀라웠던 사실이 뭐나면, 젊은층 관객들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자드를 몰라요.(저도 몰라요 ㅡ.,ㅡ) 그래서 정말 냉전 이후구나 절실히 느꼈죠. 전 어릴 때부터 수많은 첩보, 전쟁영화를 섭렵해서 그런가요. 그런데 오히려 나이 드신 분들의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더군요. 그런 점에 있어서 너무 내 중심으로 영화를 생각했나 싶기도 하구요.


Q: 남한 국정원 요원으로 등장하는 정진수(한석규 분)은 말끝마다 '빨갱이'를 외치지만, 정작 국가에 대한 애국심보다 자기가 맡은 임무에 충실한 인간으로만 보여질 뿐입니다.


류 감독님: 학창 시절, 교련 선생님을 보면 그런 분들 꼭 있죠. (참고로 1986년 출생 이후는 아예 교련을 배우지 않았습니다만, 그리고 1985년생들에게도 교련은 그냥 점수안들어가는 교양과목이었습니다만) 학교에서는 엄격한데 사적으로 만나면 학생들에게 담배도 주고(웃음) 그런 형님들 많죠. 


영화 <부당거래> 제작 당시 형사분들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강력반에 근무하시는 형사분들 외향을 보면 건달 같아요.(웃음) 형사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정의'라는 단어를 쓰시곤 해요. 그런데 이 '정의'라는 단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의에 대한 가치 기준이 달라요. 정의라는 것이 맹목적으로 가면 무서울 수도 있는데 종교적 신념으로 잘못 번지면 사이비가 될 수 있고. 예를 들면, 자신을 괴롭혔던 군대 상사가 전라도 출신이라 전라도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부분을 전체로 확대해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종종 있구요. 



 


저 또한 제 나름대로 신념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 하면서 상당한 혼란이 왔던 것 같아요. 신념이라는게 뒤집어 질 수도 있고, 사람이라는게 그 신념으로 누군가를 위협할 수도 있고.  그런데 영화 속 표종성(하정우 분)과 정진수는 나름 자기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데, 정작 상대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거나 언급조차 안해요. 오히려 정진수는 두 사람이 진정으로 합할 수 있는 지점에서, 자신의 일 핑계를 대곤 하지요. 그들은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일 뿐이지, 자신이 주도하여서 일을 하는 위치는 아니니까요.


정진수를 접근할 때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로 봤어요. 조직의 끈이 떨어졌을 때 가지는 소외감과 상실감을 두려워하고, 조직 생활을 위해 어떻게든 버텨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존재를 증명하고픈 진짜 보편적인 남자 말이죠. 정진수가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은, 자신의 생일에 스스로에게 미역국 사주는 것 밖에 없어요. 아마 이 남자는 마지막에 표종성 보낼 때, 분명 보내놓고 100% 자신의 욱한 행동에 땅치고 후회할거에요. 사표 써놓고 매일 서랍문 여닫는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이라고 할까요. 





Q: 영화 <첩혈쌍웅>처럼 표종성과 정진수가 함께 손을 잡는 과정에서 소통을 하거나 연민을 가질 법도 한데요. 


류감독님: 취재하는 과정에서 남측, 북측 정보요원을 만나보았는데, 그런 식으로 나가면 실제 그 세계의 리얼리티를 완전히 흔드는 격이에요. 표종성과 정진수는 끝까지 서로 자기 입장만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대한민국 내 정치인들도 TV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대화가 안되는데, 평생 다른 세계,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대화가 되겠어요. 


아마 정진수가 표종성에게 연민을 가지게 된 포인트라면, 임신한 표종성 아내가 죽어가는 과정 정도는 봐줘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제가 예전에 감명깊게 본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대치와 여옥의 비극을 바라보는 하림의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한석규씨가 출연한 영화 <쉬리> 유중원의 연장선상에서도 바라볼 수도 있겠네요. 형도 10여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너 사고치려 갈거 뻔히 알면서도 보내주지만, 나도 해보니까 그렇더라. 그러니까 속 비워라. 이런식? (웃음)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그리고 류승완 작품 속 배우들..


Q: 한석규씨가 맡은 정진수 역 같은 경우에는  영화 <쉬리> 유중원 연장 캐릭터로도 비춰질 수도 있겠던데요. 


류 감독님: 원래 한석규씨가 국정요원 캐릭터에 관심이 많으세요. <베를린> 대본 보시고 이틀 후에 하겠다고 하셨죠. 승락하신 이유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자기가 해외 로케이션 배경 대본을 참 많이 받아 봤는데 이거는 반드시 베를린에서 해야하는 이야기로 판단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쉬리>나 <본시리즈>보다는 '경계도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표종성도 경계도시의 이미지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셨죠. 





저는 배우들에게 연기 변신을 요구하지 않아요.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말론 브란드 등 시대의 대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그 분들은 평생 자기 스타일의 연기를 다른 상황에서 펼쳐보였을 뿐이에요. 기존 작품 캐릭터와 겹친다는 기시감은 오히려 한석규씨가 더 많은 고민을 하셨던 것 같아요. 반대로 전 영화 <쉬리>에서 사고 치고 변방으로 돌아다니는 요원이 외연확장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Q: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캐스팅만으로도 화제였습니다. 


류 감독님: 제가 배우복은 참 많은 것 같아요. 배우들이 예상치 못한 뒤통수를 칠 때, 참 기분이 좋아요. "아 영화 찍는구나.." 이번 <베를린>의 흥행도 배우들의 힘이 컸던 것 같아요. 또한 제공, 배급을 맡은 CJ 엔터테인먼트의 배급력과 설연휴 특수까지...온전히 영화의 힘으로 가게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아니 그리 겸손한 말씀을 ㅠㅠ)


Q: 영화 초반, 정진수의 동료 요원으로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감독,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등 유명 감독들이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감독들을 출연시키는 이유라도?


류 감독님: 단역 캐스팅 같은 경우에는 빈도와 밀도가 달라요. 단역이라도 뭔가 임팩트있게 해줘야하는 역할은 개런티가 비싸요. 예컨데 친분있는 스타들에게 "카메오 해주세요." 요청하면 괜찮은데요, 조, 단역을 많이 하신 분들은 자신의 존재감 증명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뭘 더 하려고 하시는 경향이 있어요. 


반면 감독들 같은 경우에는 자신들도 영화를 만들고 디렉션을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이 감독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명확히 캐치하죠. 그리고 여타 배우들에 비해 얼굴도 덜 알려지고...윤종빈 같은 경우에는 <부당거래>에도 출연했던 황병국 감독으로 할 것하고 후회가 들기도 했죠(웃음) 농담이구요. 윤종빈 감독도 굉장히 훌륭한 연기력을 가진 감독이죠. 다만 <용서받지 못한 자>류 식으로 연기가 특화되어있긴 하지만요(웃음)


류승완. 나는 액션 감독이다.. 


Q: 기존 류승완 감독님이 추구하였던 액션과 다르다는 평이 있던데요. 표종성의 와이어 연기는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합니다. 


류 감독님: 아마 유럽을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있는 것 같아요. <피도 눈물도 없이> 같은 경우도 그 당시 세트 배경이었던 투견장 집게들 다 쓰고 액션 촬영에 임했죠. 액션 자체의 콘티 구성을 보면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단적인 예로 영화 <와호장룡>과 <매트리스> 액션의 합의 구성이 같아요. 하지만 각각 영화의 의상과 배경의 차이, 인물 캐릭터의 차이가 완전히 다른 합으로 보이게 할 뿐이죠. 





저는 <짝패>를 만들 때에도 이야기있는 영화를 만든 것뿐이에요. 애초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관객 하나하나의 관점에서 들어갔을 때 각자 판단에 따라 보는 기준도 다르고, 해석도 다르고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이번 영화 찍으면서 <짝패> 할 땐 돈이 없어서 못한 것들에 대한 한풀이를 한 적은 있지요. 


Q: 이전 영화보다 액션의 양을 줄인 것 같은데..


류 감독님: 오히려 <짝패> 액션 시퀀스가 <베를린>보다 더 적어요. 복싱 액션 장면만 치자면 <주먹이 운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 액션 양이 비슷하구요. 오히려 액션 양이 지금보다 더 많았다면 영화가 더 이상해졌을 것 같기도 하구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액션씬은: 중반 이후 펼쳐지는 모든 장면들...정말 우열을 가릴 수 없지요(웃음)


표종성과 련정희. 류승완 최초 본격적 멜로 드라마


Q: 처음부터 오픈 결말을 생각하셨나요?


류 감독님: 처음에는 표종성, 련정희(전지현 분) 모두 살아남아 제3국으로 떠나고,  정진수가 두 사람을 죽은 것으로 위장하는 결말로 갈려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가면 마지막 장면에 두 사람이 계속 생존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에 가득차보이는게 힘들어 보일 것 같아..


또 하나는  일단 사건이 다 해결되고 표종성이 남측으로 향하는 결말이 있었어요. 망명을 위해 기차로 이동 중, 갑자기 표종성이 메시지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져요. 아 난 평생 북조선의 감시를 못벗어나는구나 하고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가면 너무 <본 시리즈> 인거라.(웃음) 그래서 그럴거면 그냥 다 죽입시다라는 말도 있었어요. 련정희는 살고 먼저 남한측의 안가로 대피하여 있고, 표종성은 련정희가 있는 남측 안가로 오는 과정에서 갑자기 북한과 남한 사이에 뒷거래가 생겨서 표종성을 죽이는 결말도 염두에 두었죠. 마치 <여명의 눈동자>처럼 말이죠. 


결말에 대해서 참 고민이 많았어요. 냉혹한 국가간의 부당거래로 갈거나, 진짜 첩보물 특유의 장르의 클레셰로 쿨하게 끝낼 것이나, 아니면 쓸쓸한 휴머니티로 갈거나 말이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물의 잔상이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Q: 극 중 련정희가 표종성의 몸에 붕대를 감아주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류 감독님: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저기서 한번 했어야해."(웃음) . 그런데 전 그런 장면 처음 찍어봐서 말이죠. 그런데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래, 거기서 아무것도 안하니까 부부가 맞다고요."(웃음) 





Q: 류승완 감독 최초 멜로드라마라는 평이 있습니다. 


류 감독님: 후반 작업을 하다보니, 그제서야 멜로 드라마로 보여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처음 련정희 캐릭터를 국가, 남편에게 상처받고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설정으로 가닥을 잡았는데...편집을 하다보니 뒤늦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잘 하지 못해 후회하는 남자의 정서가 잡히더군요. 뭐 영화라는게 늘 찍는 과정에서 이야기, 캐릭터가 변하곤 하니까 말이죠. 


저는 스파이나 장르에 대한 것보다, 인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신념이 아니라, 사람과 살아간다는 중요한 점을 뒤늦게 알며 타이밍을 놓친 남자 이야기 말이죠. 왜 그런게 있잖아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너는 나한테 그러면 안된다 말이죠. 세상은 다 나를 의심해도 당신은 나를 의심하지 말아야지. 원래 사람이라는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상처받기 마련이잖아요. 





아마 련정희는 동명수(류승범 분)에 의해 반역자로 몰리는 과정에서도 반역자로 몰리는 것보다, 남편이 잠시나마 자신을 의심했다는 것이 더 상처받았을거에요. 마찬가지로 표종성 또한 자신을 버린 국가나 조직보다도 자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더 컸을거에요. 그게 더 사실적인 접근이라고봐요. 만일 자신을 왜 버린 상부에게 찾아가면 그건 <달콤한 인생>이구요.(웃음). 이건 당에 대한 충성심, 배신감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의 문제라고 봐요.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더 크다고 하잖아요. 


Q: <베를린> 제작자이기도 한 아내 강혜정씨가 영화에 어떤 도움을 주셨는지요.


류 감독님: 힘들었을 때, 밥 먹여주는것?(웃음)


형 류승완, 동생 류승범 and 감독 류승완, 배우 류승범


Q: 동명수 캐릭터는 류승범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 하셨나요?


류 감독님: 류승범 같은 경우에는 <주먹이 운다>에서 약한 상태에 몰렸을 때 상태를 얼핏 봤잖아요. 동명수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순수한 악을 가진 인물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진짜 성악설에 딱 들어맞고 스스로에 대한 컴플렉스가 단단히 뭉쳐있고,, 상당히 무섭고 살벌한 캐릭터죠.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뉘우치지 않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찌질해지기까지. 그래서 영화 초반 제작진들은 동명수 캐릭터가 끝까지 가는 것에 상당히 두려워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동명수를 보고 웃더군요...웃기라고 만든 캐릭터가 아닌데 말이죠. 아마 류승범이 기존에 가진 코믹한 이미지가 한몫한것 같기도 하구요..





Q: 실제 류승범에게도 컴플렉스가 있나요


류 감독님: 아니 전혀요. 배우 류승범은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이지요(웃음). 


Q: 전작에 비해 류승범의 액션씬이 줄어들었습니다. 


류 감독님: 동명수는 슬그머니 침투하여 예상치못한 난장판을 꾸미는 인물이죠. 동명수가 꾸미는 음모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여주기보다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최대한 절제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동명수라는 캐릭터가 강력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구요. 


Q: 그래도 류승범 입장에서는 비교적 적은 액션 분량에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요. 


류 감독님: 불만보다도, 한동안 이 친구도 액션을 안했으니까, 액션을 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워했죠. 정두홍 무술감독이 좋아하는 액션 배우가 최민식, 유오성, 정우성, 이병헌, 그리고 류승범이 있는데...류승범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액션 분량을 스턴트맨보다 빨리 익혀서...몸은 힘들었다고 하는데 신나게 촬영에 임했던 것 같아요. 총쏘는 영화를 처음으로 해보니까요(웃음)


Q: 각각 영화 감독과 배우로서 서로를 보는 시각 차이가 있나요


류 감독님: 이제는 가족이니까 매번 함께 일한다는 일종의 시선때문에 같은 작품찍는 것 자체가 두려워질 정도에요. 만약 배우로서 류승범이 연기를 못한다면 감독으로서 이 친구와 계속 일할 수 있겠어요. 류승범은 결코 즉흥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에요.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대한 치밀한 준비는 물론, 일을 할 때는 참으로 무섭게 일해요. 현장에서도 모니터 쪽은 잘 안가고, 계속 현장에서 캐릭터에 몰두하고 있지요.





자연인 류승범은 굉장히 좋은 쪽으로 성장해하고 있어요. 우리 형제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 중에 자유, 행복이 있는데 저보다 류승범이 조금 더 도달한 것 같아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동생이고를 떠나 같은 남자로서 멋있죠. 


<베를린> 한국 첩보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


Q: <베를린>은 평론가 평점이 높고, 반면 네티즌 평점은 기대 이하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류 감독님: 점수 잘 주신 분들은 고맙죠(웃음) 영화 자체에 대한 오해도 많았고, 또한 대단한 배우분들이 모이다보니, 제 스스로가 기록 경신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가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동명수의 대사 중에 그런게 있죠. "배고픈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참는다." 이런식?. 애초 제 영화 자체가 호불호가 갈렸으니까요. 


Q: 영화계 안팎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첩보 영화 <베를린>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류 감독님: 저로서는 부담스럽죠. 사실 우리나라 첩보 영화의 분기점을 일컷는다면 <쉬리>죠. 또한 <태풍> 시도도 있었구요. 다만 해외 로케이션 촬영에 여타 첩보물과 달리 북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영화 <철십자훈장>을 보고 놀라웠던 게, 보통 2차 세계 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 주인공은 미국, 영국군 혹은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철십자훈장> 같은 경우에는 독일군이 주인공이에요. 확실히 북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가면 영화 느낌이 많이 달라지긴 해요. 영화에도 그런 대사가 있었죠. "니네와 우리와 쓰는 말이 많이 다르네." 





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거창한 이데올로기니 통일 이야기가 아닌, 왜 우리는 육로로 유럽을 가지 못할까하는 의문이 앞섰어요. 왜 내가 평양에서 영화를 찍지 못하지 화가 나기도 하구요. 북한 대사관에 갔을 때 북한 외교관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데 혹시 국보법 위반인가 스스로 검열에 들어가기도 하구(국보법 위반 맞아요 끄덕) 


사실 저는 우파 정서에 가까워요. 사형제 찬성하고, 가족 공동체 애착도 남다르고요. 그런데 베를린가니까 로케이션 매니저가 하는 말이, 독일에선 공공 장소에서 히틀러는 나치 쓰면 벌금형이래요. 그리고 유태인 마을도 있는데, 굉장히 깨끗하고 통제, 보존이 잘 되어 있어요. 마을 내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보이는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흔적이라고 하더군요. 독일 사람들은 그렇게 과거 흔적을 있는 그대로 두더군요. 만약에 또다시 스파이 이야기를 하겠다면, 근현대사와 관련된 소재를 담고 싶어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에 있다고 보거든요. 


Q: 결말을 보면 시리즈화를 염두에 둔 것 같기도 합니다. 속편 계획은 없으신지요. 


류 감독님: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정말 없어요. 일단 <베를린> 취재 과정이 힘들었기에, 이 쪽 세계에 발을 디디기도 싫어요. 하지만 취재하면서 못쓴 괜찮은 아이디어가 상당히 있었고, 인물들을 버리기가 아깝긴 해요. 사람의 앞날이라는 것을 모르는거니까요. 하지만 현재 상태는 아무 계획이 없어요. 


감독 류승완, 자연인 류승완


Q: 흥행을 예상하셨나요? 


류 감독님: 아니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 예상이 맞은 적이 없었어요.(웃음)


Q: 천만관객  영화 욕심이 있을 법도 한데.


류 감독님: 만약 이 영화 천만 관객 가잖아요. 그럼 저는 향후 영화를 안하게 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사람의 욕심이라는게 자신이 정해놓은 수치 도달을 향해 달려가는 건데....


사실 천만관객이라는게 두번 이상 기록하기 힘든 숫자죠. 지난 10년동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싸웠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천만이란 숫자가 결코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을 것 같아요. 하긴 천만 간다면, 다음 영화 제작상황은 좋아지겠죠. 그런데 그게 정말 좋을까요. 저는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이 정말로 대단한 것 같아요. <공동경비구역JSA > 흥행 이후에도 복수 3부작 등 자기만의 훌륭한 스타일을 밀고 가시잖아요. <박쥐> 인터넷 평점은 여전히 비밀리에 부쳤지만요(웃음) 





Q: 이름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는 감독 중의 하나이십니다. 


류 감독님: 전 유명해지는 것이 싫어요. 제 작품에 대한 상대적 기대감이 높아지니까요. 저를 두고 폭넓은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 마니아층도 배신했고, 저도 배신했고, 서로 배신해요.(웃음) 엄밀히 말하면 제 스스로는 마니아층<다찌마와리>를 좋아하는 분과 <주먹이 운다> 그리고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좋아하는 분들의 취향이 각각 달라요. 다수의 요구를 맞추는 과정이 힘든 것 같아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초월을 하려고 노력은 한다만요. 





Q: 요즘 한국 영화의 연이은 돌풍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류 감독님: 저야 모르죠...(웃음). 제 영화만 잘 되면 되죠.하하하하(웃음) 그걸 알면 한국 영화가 전반적으로 침체될 땐 영화 안내놓고, 분위기 좋으면 내놓게요.(웃음) 살다보니 오늘 그 자체 삶에 충실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Q: 여담이지만, <베를린> 외에도 향후 <주먹이 운다>와 같은 작품을 만들 계획이 있나요


류 감독님: <베를린> 찍으면서 장르에 대한 피로감이 컸어요. 특히 권총 둔기 아이디어 구상이 힘들었죠.  당시 정두홍 무술 감독이 <지아이조2> 촬영차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피가 마를 정도였다니까요. 무엇보다도 액션 문법 배치가 힘들었어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시감, 두려움, 그리고 피로 누적.


<주먹이 운다>는 애초 인물로 시작한 드라마이기에, 만일 매력적인 인물을 만나면 안할 이유는 없어요. 아쉬운 점은 최민식 실제 모델을 개봉 이후 만난게 천추의 한이라는거죠. 


Q: 영화를 만들면서 참 힘들었다는 기사를 접했는데요


류 감독님: 이 영화를 만들면서 우울증을 잠시 앓기도 했었죠. 쌓이는 피로도고 극심했구요. 무엇보다도 상대할 사람이 많았잖아요. 요즘은 무서워서 인터넷도 안해요. 


Q: 아까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로 자유와 행복을 언급하셨던데 향후 영화에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실련지요. 


류 감독님: 영화와 삶은 다르죠. 저는 그것도 자꾸 분리해 가려고 해요. 예전에는 일과 삶을 동일시하곤 했는데 그러다보면 삶 자체가 너무 피폐해져요. 영화는 영화고 일은 일이구요. 위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은 있는데 가능할 지도 의문이구요. 위대한 영화를 경험하지 않아도 잘 사는 분들도 많잖아요. 하하. (지금 이순간도 위대한 영화를 경험하고 계십니다..류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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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이전 류승완 감독이 구축한 영화적 세계관은 B급 정서 물씬 풍기는 남자들의 거친 액션 활극이었다. 그리고 몇몇 분들은, 그 시절 구사했던 류승완 감독표 액션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글쓴이가 직접 만나뵈었던 류승완 감독은 단순히 몇 마디, 몇 줄로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움이 있었다. 단순한 첩보 영화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영화 <베를린>처럼, 하나의 장르와 시선에 국한시키기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친절한 류승완 감독님 덕분에, 무려 한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 진정으로 푹 빠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사람을 직접 만나다보면, 기대했던 것과 달리 다른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만큼은 예상했던대로 건강한 소신으로 가득 찬 좋은 감독이였음을 눈으로 마음으로 재확인하면서 부푼 설렘을 품을 수 있었던 하루.  이번 <베를린>도 <베를린>이지만, 향후 <베를린> 이후 류승완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사뭇 기대되어진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 절실히 느낀 건데...난 사진을 참으로 못찍는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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