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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어나더 라운드' 술로 빚은 달콤씁쓸한 인생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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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6세부터 술을 구매해서 마실 수 있고 전국민의 알코올 소비량이 상당한 덴마크에서 마르틴(매즈 미켈슨 분)은 술 한 방울에도 입에 대지 않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다. 비단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런건 아니겠지만 무기력으로 일관된 마르틴의 일상은 그의 직장인 학교는 물론, 가족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로 고립되어 간다. 

 

 

그렇게 어느 누구의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마르틴은 동료 교사인 니콜라이의 생일파티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듣게 되고 곧바로 실험에 들어간다. 술을 마시게 된 마르틴의 삶은 가설처럼 놀라운 활력을 얻게되고 이에 자극받은 동료 교사이자 친구인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는 점점 더 알코올 농도의 수치를 높이기 시작하는데, 지독하게 술을 많이 마신 결과는 역시나 썩 좋지 못하다. 

 

 

집단 공동체의 마녀 사냥을 주제로 호평받은 <더 헌트>(2012) 이후 오랜만에 매즈 미켈슨과 다시 협업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2020년작 <어나더 라운드>의 원제는 <Druk>으로 덴마크어로 '술에 취한'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다시피 술에 거하게 취해버린 덴마크 중년 남성들의 삶과 우정, 사랑 등을 다룬 영화는 복지국가로 소문난 덴마크에서 남부럽지 않은 직업과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왜 술에 의존하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한다. 

 

술의 나라 덴마크 답게 애초 음주에 대한 예찬을 다루고자 했던 영화는 첫 촬영에 들어간지 며칠 뒤 <어나더 라운드> 시놉시스 및 기획에 있어 많은 영감을 주었던 감독의 딸 아이다가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기존 시나리오가 아닌 현재의 방향으로 수정하게 된다. 때문에 영화는 술을 통해 인생의 활력을 찾고자하는 중년 남성들의 고군분투와 함께 지나친 알코올의 섭취로 이들의 일상이 서서히 파괴되는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한다. 

 

 

나름 술을 절제하고 살았던 주인공들이 점점 더 술을 찾고 그에 의존하고 싶은 건 매너리즘과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상황에서 어떻게해서든지 현재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보고자 하는 그들의 적극적인 의지였다. 실제로 어느 학자의 가설대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를 유지했을 때 주인공들의 일상은 그럴싸한 균형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술에 대한 자제력을 잃어버린 그들이 얻은 대가는 예상대로 혹독했다. 

 

 

그러나 영화는 술로 인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을 예시로 제기하며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술은 해롭다' 등의 도덕적 메시지를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 술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다시 술을 마시며 활력을 되찾고자 하는 마르틴의 모습을 조명하며 의외의 가능성을 돌파해낸다. 꼭 술이 나쁜 것인가에 대한 반문보다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아픔을 겪었던 마르틴이 술을 빌려 스스로 삶의 의지를 건강하게 다독이는 엔딩씬은 젊은 시절 댄서였다는 매즈 미켈슨의 아름다운 춤사위와 함께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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